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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씻다가 세면대 앞에 걸린 거울과 눈이 마주쳤다. 거울에 비친 얼굴 뒤로 끝없는 사하라의 모래언덕이 펼쳐졌다. 몸은 서울 한복판에 있는데 모래와의 사투는 아직 끝나지 않은 모양이다.

2010년 10월, 3명이 팀을 꾸려 도전을 감행했던 260km 사하라 레이스 5일째 밤. 잠에 취해 비틀거리는 나를 김지산 기자가 부축했다.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사막의 밤 한가운데 맥없이 주저앉았다. '더 지치기 전에 미쳐야 한다. 미치지 않으면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아무나 갈 수 있지만 누구나 쉽게 건널 수 없는 곳이 바로 사막인가 보다.

지금 몸은 서울에 있는만 모래와의 사투는 끝나지 않았다
▲ 사하라 사막을 레이스 하는 필자 지금 몸은 서울에 있는만 모래와의 사투는 끝나지 않았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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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의 물기를 훔치다 다시 거울을 들여다 봤다. 무덤덤한 표정 뒤에 비친 화장실 벽면의 하얀 타일, 선명했던 사하라의 잔상이 사라지고 배경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누구든 사막과 오지로 뛰어들 때는 자신감으로 넘쳐난다. 거침이 없고 사기충천하다.

하지만 대자연에 묻혀 오지를 넘나드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 체력의 한계에서,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 광기 앞에 초라해지고 무기력해진다. 그러니 사막이나 오지를 온전히 건너고 싶다면 이것만은 명심해야 한다.

사막에서 그늘을 접수하려면 웬만한 불편함은 감수하고 만다
▲ 행복 찾아, 그늘 찾아 사막에서 그늘을 접수하려면 웬만한 불편함은 감수하고 만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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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어 가라 

레이스가 시작되면 대부분의 선수들은 혹독한 대자연에 압도돼 첫날부터 거의 패닉 상태에 빠진다. 호기를 떨거나 자신의 체력을 과신했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2013년 5월, 6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는 빗속을 뚫으며 히말라야 남단의 부탄 서부, 푸나카의 산야 200km를 오르내렸다.

고통을 겪어봐야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 길을 잃어봐야 길을 찾을 수 있다. 수시로 찾아오는 근육 경련이 온몸을 오그라뜨렸다. 기어오르는 길목에서 수없이 개울에 몸을 처박다 다시 일어섰다.

잠시 멈추는 얻는 것이 많습니다
▲ 타이거네스트 사원 배경에 선 필자 잠시 멈추는 얻는 것이 많습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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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에 10~15km 간격으로 CP(Check Point)가 설치돼 있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주로를 이탈한 선수를 확인하고, 부상과 피로에 지친 선수들의 쉼터다. 조금 빨리 가려고 CP를 무시하고 지나치는 건 화를 자초할 뿐이다.

해발 3100m의 파로 계곡 건너편에 주저앉아 거친 호흡을 토해냈다. 앞질러 내달리는 선수들의 뒷모습이 계곡 아래로 멀어져갔다. 목 위까지 찬 숨을 고르자 계곡을 휘감은 물안개가 갈리면서 장엄한 타이거네스트 사원이 위용을 드러냈다. 자신의 체력을 인정해야 한다. 앞서가는 선수에 의기소침할 필요도 없다. 빨리 가면 놓치는 것이 너무 많다.

함께 가라 

사막이 좋은 이유는 홀로 온 밤을 지새우며 절대고독을 체험할 수 때문이다. 절대고독은 나를 성숙시키는 기회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 갈수 있어도 혼자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사막이고 오지다.

위기의 순간을 만날 때, 혼자 견디기보다 동반자를 만나 함께 가라. 힘들 때 누군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고 격려가 된다. 때로는 거인의 어깨에 잠시 머리를 기대는 것이 흠은 아니다. 2009년 나는 그랜드캐니언에서 그 거인을 만났다.

사막이 좋은 건 절대고독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아무나 갈수 있지만 아무나 건널 수 없는 곳, 사막 사막이 좋은 건 절대고독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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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니언에도 엄청난 사막이 있다
▲ 그랜드캐니언을 넘어 시온 캐니언을 향해 그랜드캐니언에도 엄청난 사막이 있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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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니언과 시온 캐니언의 대협곡을 넘나들던 270km G2G 레이스에서 나는 급격한 체력 고갈로 경기를 포기할 뻔했다. 하지만 70세 고령인 이무웅님을 만나 용케 무박 2일의 76km 롱데이 구간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

27시간 동안 그는 나를 재촉하지도 내버려두고 떠나지도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옆을 지켜줄 뿐이었다. 그러니 사막에서 누군가 당신에게 손을 뻗거든 조건 없이 그의 손을 잡아줘라. 그는 당신을 평생 잊을 수 없는 은인으로 기억할 것이다.

포기하지 마라 

사막레이스에서 선수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건 점점 커져가는 발가락 물집과 예측할 수 없는 대자연의 심술이다. 특히 어깨를 찍어 누르는 배낭의 무게다. 배낭의 하중을 견디지 못한 선수는 몰래 자신의 식량을 모래 속에 버리거나가 경기를 포기할 궁리를 찾는다.

포기는 배추를 셀 때 하는 말이다. 위험해서 포기하고 겁이 나서 포기한다. 귀찮아서 포기하고 승산이 없다고 지레 포기한다. 하지만 지구상에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곳은 없다. 더 깊고 더 높은 곳을 향한 인간의 도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캠프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려준 외국 선수들
▲ 시각장애인과 부시맨의 고향 나미브사막 횡단 캠프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려준 외국 선수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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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때론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었다. 2009년 시각장애인 송경태님과 부시맨의 고향, 1년 중 300일 이상 태양이 불타는 나미브사막에서 된서리를 맞았다. 무박 2일 동안 100km를 달리던 구간에서 제한시간에 걸려 탈락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10km당 평균 3~4시간을 기어 80km 지점까지 왔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제 3시간 남짓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그도 포기하지 않았다. 저승사자처럼 그의 손목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땀줄기를 흩날리며 내달렸다. 신은 분명 인간이 극복할 만큼의 고난을 준다. 그러니 포기하지 않으면 못 이룰 것도 없다.

지구상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곳은 없다
▲ 볼리비아 우유니사막을 횡단중인 필자 지구상엔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곳은 없다
ⓒ 김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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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다 보면 가끔 숨 고를 여유가 필요하다. 나무도 해거리를 한다. 멈춤이 결코 안주(安住)는 아니다.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한 도약이다. 불능독성(不能獨成), 세상에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험난한 여정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동반자가 있는 것만으로 든든하다. 훗날 피할 수 없는 위기의 순간과 맞닥뜨릴 때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낸다면 당신은 대범한 모험가로 변신한 자신의 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술기운이었을까. 내 말이 끝나갈 즘 둘러앉은 네 명 젊은이들의 얼굴이 붉게 상기됐다.

10일간 530km 레이스의 끝자락 새벽 주로에서
▲ 호주의 울룰루 배경에 선 필자 10일간 530km 레이스의 끝자락 새벽 주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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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이든 일상이든 살아남는 방법은 매한가지다. 어쩌면 일상이 사막보다 더 가혹할지 모른다. 남의 인생에 곁눈질하기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진짜 퇴보다. 굳이 사막을 건너지 않더라도 이 세 가지 방법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오늘도 내일을 꿈꾼다. 비록 내가 산 술안주는 남겼지만 대전에서 먼 길 마다않고 서울까지 찾아와준 청년들이 고마웠다. 덕분에 한 동안 잊고 살았던 동숭동 대학로의 향취를 다시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신은 인간이 극복할 만큼의 고난을 준다
▲ 중국 서역 투루판 분지 어느 능선에 선 필자 신은 인간이 극복할 만큼의 고난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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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오지레이스 , #사막레이스 , #김경수 , #도전 , #직장인모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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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행을 핑계삼아 지구상 곳곳의 사막과 오지를 넘나드는 조금은 독특한 경험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나를 오지레이서라고 부르지만 나는 직장인모험가로 불리는 것이 좋다. <오마이뉴스>를 통해 지난 19년 넘게 사막과 오지에서 인간의 한계와 사선을 넘나들며 겪었던 인생의 희노애락과 삶의 지혜를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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