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두산 베어스 팬들은 프랜차이즈 스타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불사조' 박철순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전신 OB를 이끌며 24승 4패(22연승 포함) 방어율 1.84로 베어스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잦은 부상과 악재가 겹쳐 다시는 원년에 보여줬던 기량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두산 팬들은 그를 영혼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생각한다. 단순한 기록을 떠나 그가 두산에서 보여준 불굴의 정신력과 팀에 대한 깊은 애정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수생활 말년이 다소 아쉽기는 했지만 김동주 역시 남다른 사랑을 받았던 프랜차이즈 스타다. 선수 생활 내내 고타율, 고장타율을 꾸준히 기록했던 그는 특히 클러치 상황에 강해 접전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타자였다. 덩치와 힘이 남달랐던 두산 타자들 사이에서도 '두목곰'으로 불렸던 것이 이러한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다.

'홍포' 홍성흔은 다소 아쉬운 케이스다. 충분히 박철순, 김동주만큼 '두산의 전설'로 불릴 수 있었지만 2% 아쉬운 행보로 인해 그만큼 인정받기는 어렵게 됐다. 외려 두산 팬들 사이에서도 안티들이 상당할 정도로 좋지 못한 평가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홍성흔의 프로인생은 두산에서의 1차 시절, 롯데로 이적한 2차 시절 그리고 두산으로 다시 돌아온 현재의 3차 시절로 나뉜다. 2008시즌까지의 홍성흔은 두산의 현재와 미래이자 최고의 인기스타였다. 경희대를 졸업하고 1999년 두산 유니폼을 입은 홍성흔은 공수겹장의 포수로 맹활약했고 첫해 타율 0.258 91안타 16홈런 63타점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비록 포지션은 포수였지만 홍성흔은 그 어떤 두산 선수보다도 인기가 좋았다. 잘생긴 외모에 성격까지 쾌활해 경기장 안팎에서 두산 분위기를 이끌었다. 지나친 파이팅으로 '오버맨'으로 불리기도 했지만 그로인해 얻어지는 시너지 효과가 더욱 컸던지라 두산 팬들은 그런 면까지 사랑했다.

두산 전체의 분위기를 쥐락펴락했던 홍성흔은 기록 이상의 가치를 가진 선수로 평가받았다. 그가 있었기에 포수 사관학교로 불리던 두산은 진갑용, 최기문, 이도형 등 걸출한 포수들을 포기할 수 있었다. 진갑용은 아마시절부터 1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는 포수재목으로 꼽혔으며 최기문과 이도형 역시 주전 마스크를 쓰고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있는 선수들이다.

그런 선배들을 제치고 최종적으로 주전이 된것만 봐도 홍성흔의 당시 진가를 예상해볼 수 있다. 홍성흔은 두산의 파이팅맨이었고 덕아웃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항상 에너지가 끓어 넘치는지라 두산은 물론 타 팀 감독들까지 미래의 주장감으로 탐내던 선수였다. 국가대표팀 주전 안방마님 역시 그의 몫이었다.

2004년 시즌에는 포수 최초로 최다안타왕에 오를 정도로 방망이 역시 화끈했다. 존재감에서 김동주를 뛰어넘을 정도였다. 두산 팬들 역시 캡틴을 넘어 차세대 감독감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분위기 일색이었다.

그런 홍성흔이었지만 2008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FA)로 롯데 자이언츠 행을 결정하면서 이미지는 바뀌기 시작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더 이상 포수 포지션을 맡지 못하게 된 그는 지명타자로 역할을 바꿔서 롯데에서 맹활약을 펼친다. 비록 수비공헌도는 없었지만 워낙 불 망망이를 휘둘렀던지라 롯데팬들 사이에서도 FA성공작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문제는 롯데로 팀을 옮기게 되면서 보였던 행보들이다.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 등으로 두산에 쌓인 게 많았던 홍성흔은 다소 많은 말들을 언론에 뱉어냈다. 그 과정에서 두산 팬들을 서운하게 만든 발언들이 있었는데 그로인해 팬심을 잃게 된다. 그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만큼 서운함도 컸던 것이다. 더 이상 두산 팬들은 홍성흔을 '우리 선수'로 생각하지 않았다. 팀에 있었던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김상현을 바라보는 KIA팬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2013년 홍성흔은 친정팀 두산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두산 팬들의 시선은 싸늘했다. 이미 한 번 두산을 등졌다는 이미지가 깊게 박혀 있는데다가 지명타자에 노장인 그로인해 두산의 많은 유망주들이 역풍을 맞을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차세대 거포로 기대를 모았던 윤석민의 트레이드까지 일어나는 등 홍성흔 영입으로 인해 두산 타선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홍성흔은 친정팀으로 돌아와 기쁘다는 소감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두산 팬들은 믿지 않았다. 외려 변명과 립 서비스로 받아들이며 이미지는 더욱 나빠지는 분위기였다. 홍성흔은 컴백 후 두 시즌 동안 준수한 성적을 올렸지만 두산 팬들의 시선을 바꾸는 데는 실패했다. 외려 올 시즌 2할대 중반의 저조한 성적으로 부진하자 들고 일어서며 혹평을 퍼붓고 있다. 돌아선 팬심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물론 모두가 홍성흔의 안티 팬은 아니다. 두산에도 여전히 홍성흔을 응원하는 팬들은 상당하다. 홍성흔은 올 시즌 오른손 타자 최초로 2000안타를 기록하는 등 한국 프로야구사의 한 획을 긋는 굵직한 행보로 많은 박수를 받았다. 그가 얼마나 좋은 선수인지는 그간의 성적이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홍성흔이 롯데로 팀을 옮기지 않은 채 두산에서 계속 뛰며 2000안타를 기록했다면 소속팀 팬들의 응원은 어마어마 했을 것이다. 영구결번 및 그를 박철순 등과 함께 전설로 부르는 목소리 역시 엄청나게 컸을 것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두산의 영혼'으로 불리지 못하는 현재의 모습은 아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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