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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 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 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을지도 모른다. - 기자 말

저요오드식 4일 차에 먹었던 식단
▲ 저요오드식단 저요오드식 4일차에 먹었던 식단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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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먹고 살아야 될지 몰라 걱정으로 가득했던 저요오드식 기간이 시작되었다. 다이어트 한다는 생각으로 감자, 고구마, 호박이나 삶아 먹으면서 2주를 버티려고 했지만 말처럼 쉬운일은 아니었다. 우연히 서점에서 <갑상선암 완치를 위한 2주밥상>이라는 책을 발견했고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 생각해 구매를 했다.

책에서는 저요오드식에 대한 다양한 요리 레시피가 나와 있었다. 그 레시피를 참고해서 2주를 보낸다면 하나도 힘들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평소에 집에서 먹던 식단보다 더 훌륭한 식단들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식재료다. 저요오드식은 2주간만 하면 되는데 그 책에 나오는 요리들을 해먹기 위해 조금씩 필요한 식재료를 모두 구입했다가는 냉장고에 다 넣지도 못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름 알찬 내용으로 구성된 책이었지만 일반 가정의 현실과는 조금 동 떨어진터라 참고만 해야 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저요오드식' 밥상

멸치 대신 버섯육수와 무요오드 소금으로 심심하게 간을 한 배춧국
▲ 배춧국 멸치 대신 버섯육수와 무요오드 소금으로 심심하게 간을 한 배춧국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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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우려와 달리 저요오드식 기간이 시작되자 어머니가 차려 주신 식단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요리'라는 건 실력도 실력이지만 '정성'이자 '사랑'임에 틀림 없다. 어머니께선 한국사람들의 밥상에 가장 많이 오르는 '장'류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도 맛있는 음식들을 뚝딱 만들어 밥상에 올려 주셨다.

그해 겨울은 배추가 유난히 달고 맛있었다. 저요오드식 하기 전 마지막 만찬도 '배추전'으로 했었다. 아삭하고 달콤한 배추. 평소 배추김치 이외에는 배추를 잘 먹지 않았는데, 그제야 배추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저요오드식이 시작되고도 배추는 나에게 훌륭한 식재료였고 제일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바로 '배춧국'이었다. 신지로이드 중단에 따른 부작용으로 입 맛을 잃어버린 내가 밥 한그릇 뚝딱 먹을 수 있게 만든 음식이다.

보통 국을 끓이려면 '육수'가 필요하다. 다시마나 멸치를 잘 사용하는데 둘다 저요오드식 기간동안은 '금지' 된 식재료다. 대신 버섯을 우려 버섯향이 가득한 육수를 내고, 그 육수에 배추를 넣어 다진 마늘과 무요오드 소금으로 심심하게 간을 한다. 거기에 고춧가루와 땡초로 칼칼한 맛을 더해 끓여내면 맛있는 배춧국이 완성 된다.

천일염이 들어간 김치를 먹지 못해 김치대용으로 만든 겉절이
▲ 겉절이 천일염이 들어간 김치를 먹지 못해 김치대용으로 만든 겉절이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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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는 배춧국뿐만 아니라 겉절이로도 훌륭한데 '김치'를 먹지 못하는 저요오드식 기간동안 김치를 대용할 겉절이를 만드는 데 사용 된다. 배추를 무요오드 소금에 살짝 절여 젓갈을 사용하지 않고 무쳐낸 겉절이. 사과를 함께 넣고 버부린 겉절이를 먹으면서 김치 생각을 이겨낼 수 있었다.

저요오드식 기간이라도 평소와 똑같은 레시피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반찬들이 바로 각종 '나물'들이다. 나는 '무 나물'과 '시금치 나물'을 주로 먹었는데 나물에 간을 할 때만 일반 소금 대신 무요오드 소금을 사용하면 평소와 똑같은 맛의 나물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 물론 각종 나물에 고추장 한스푼 넣고 슥슥 비벼 먹는 비빔밥은 먹을 수 없지만 나물들 역시 2주 동안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음식들이었다.

저요오드식 기간동안 하루 150g 이하의 육류 섭취가 가능하다.
▲ 삼겹살 저요오드식 기간동안 하루 150g 이하의 육류 섭취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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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류를 아주 좋아 한다. 다행히 저요오드식 기간 동안 고기 섭취를 하지 말라고는 하지 않는다. 대신 많이 먹지 말고 하루에 150g 이하의 소량만 섭취하라고 한다. 150g이면 1인분 정도의 양이다. 보통 고깃집에 가면 2명이서 3인분, 3명이서 5인분을 '기본'으로 생각하는 나에게는 적은 양이지만 저요오드식 기간 동안 떨어진 기력을 회복하는 데는 고기가 유용했다.

하지만 고기를 먹을 때 꼭 필요한 '쌈장'은 먹을 수가 없다. 대신 참기름에 후추와 무요오드 소금을 넣은 '기름장'으로만 고기를 먹어야 한다. 이렇게 먹다보니 150g만 먹어도 고기를 충분히 먹은 느낌이 들었다. 역시 고기 먹을 때는 쌈장이 있어야 한다.

저요오드식... 마지막 일주일이 고비

저요오드식을 시작하고 처음 일주일 정도는 평소와 다름 없이 밥 잘 먹고 특별한 이상 증세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테트로닌 복용까지 중단한 게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서 그런것 같다. 저요오드식을 시작하고 마지막 일주일이 남았을 때가 고비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다고들 하는데 나에겐 마지막 일주일을 남겨두고 신지로이드 중단에 따른 부작용이 밀려왔다.

술을 왕창 마신 다음 날 하루 종일 속이 울렁거리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토할 것만 같은 느낌. 그런 상태가 지속된다. 술을 마셔서 속이 안 좋은 거라면 얼큰한 해장국이라도 먹어서 속을 달랠 텐데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는 그럴 수가 없다. 그래서 배고파지는 것조차도 괴로웠다. 배고파서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속이 울렁거리니까.

당시 운영하던 블로그에 저요오드식 식단을 포스팅 했었는데 많은 갑상샘암 환우와 가족들이 찾아와서 나와 똑같은 고민을 털어 놓았다. 20대에 암진단을 받아서 어쩔 줄 몰라 하시던 분, 젊은 새댁이 남편의 갑상샘암으로 저요오드식을 준비해야 하는데 레시피 더 올려 달라고 하시던 분, 나와 마찬가지로 저요오드식을 앞두고 뭘 먹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고 하시던 분들까지 우리 어머니의 레시피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저요오드식이 끝나면 병원에 다시 입원을 해야 한다. 2013년 12월 30일 병원 격리실에 입원해서 2박 3일간 혼자 외로운 싸움을 하고 2014년 1월 1일 퇴원 예정이다. 말끔히 치료된 몸으로 새해를 맞이 할 수 있을 테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아침은 온다고 했던가... 하루 하루가 괴로웠던 저요오드식 기간도 어느새 끝이 나고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에 입원 해야 하는 날이 다가 왔다.


태그:#갑상샘암, #저요오드식, #방사성요오드, #동위원소, #식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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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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