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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스 완치자 송길용 씨는 퇴원하자마자 현수막 확인에 나섰다.
▲ '송혜희를 좀 찾아주세요' 현수막을 걸고 있는 송길용 메르스 완치자 송길용 씨는 퇴원하자마자 현수막 확인에 나섰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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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실종된 딸을 찾아 전국을 헤매고 있는 송길용(62)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평택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그는 몰라도 "실종된 송혜희를 좀 찾아주세요"라는 현수막은 누구나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두 해도 아니고, '16년' 동안 잃어버린 딸을 찾느라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송씨의 단칸방 곳곳에서는 딸아이와 12년 전 세상을 떠난 부인에 대한 애정이 묻어났다. 침대와 식탁이 비좁게 자리하고 있는 방 한 쪽 벽면은 액자에 끼워 넣은 두 사람의 사진과 둘에게 보낸 편지들로 가득했다. 방 입구엔 딸아이를 찾는 전단지가 잔뜩 쌓여 있다.

송씨는 지금도 딸아이가 사라진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1999년 2월 13일. 송탄여고 3학년을 앞두고 있던 딸, 혜희는 도일동 하리부락 자택에서 저녁 5시 반에 친구를 만나러 나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당시 시내버스 기사의 증언에 따르면 친구와 헤어진 혜희는 시내버스 막차를 타고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술 냄새를 풍기는 오리털 파카를 입은 30대 남자가 혜희를 따라 내렸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가로등도 제대로 없던 시골이었다. 딸이 돌아오지 않자, 경찰에 신고하고 버스에서 자택까지 1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며칠 동안 이 잡듯 뒤졌지만 아무런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렇게 16년이 흘렀다.

전단지 900만장, 현수막 6만장 걸었지만...

딸이 사라진 후, 매일 딸을 찾아 헤매느라 녹초가 된 몸은 쓰러질 법도 한데, 도저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로 인해 입에도 못 대던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한 부인은 우울증으로 술과 농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다. 부인과 딸아이의 빈자리는 송씨에게 큰 회한으로 남아 전국을 떠돌게 했다.

그동안 송씨는 혜희를 찾는 현수막을 가까운 송탄출장소부터 서울 도심 여러 곳과 고속도로 휴게소 인근, 목포와 진도, 통영, 속초 등 대한민국 곳곳에 걸어놓았다. 지금까지 A4 크기 전단지는 700만 장, 좀 더 큰 전단지는 200만 장을 전국에 뿌렸고, 현수막은 6만 장 가까이 내걸어 보는 사람들에게 안타까움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관심 갖고 전화 연락이 오는 경우는 많지 않다.

"감기 한 번 안 걸렸다고 자부하던 건강인데, 뇌경색과 허리 디스크가 한꺼번에 왔어요. 그래도 난 쓰러지지 않아요. 딸아이 생각하면... 어디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아 있는데 어딘가에 갇혀서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지, 자신을 찾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하는 건 아닌지..."

혜희를 찾는데 모든 것을 걸었던 송씨는 18일 메르스 완치 환자로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20일부터 28일까지 3년 전 혜희를 찾는 현수막을 걸려고 전신주에 오르다 다친 허리통증이 심해진데다 갑자기 찾아온 뇌경색으로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었다.

메르스 수퍼 전파자로 알려진 14번째 환자와 같은 병동에 입원해 있던 탓에 퇴원 후, 자가 격리되었다가 5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39번 환자로 굿모닝병원 음압병동에서 치료받으면서도 "전단지 못 만드는 것 때문에...내가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데, 그 생각만 했어요"라고 말하는 송씨.

딸아이 향한 집념이 메르스도 이겼다

메르스 완치자 송길용씨가 고2때 실종된 딸아이 앨범을 보고 있다.
▲ 딸아이 앨범을 보고 있는 송길용 씨 메르스 완치자 송길용씨가 고2때 실종된 딸아이 앨범을 보고 있다.
ⓒ 고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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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평택굿모닝병원 음압병실에서 메르스 완치 판정을 받고 퇴원한 송씨는 뼈만 앙상하다. 약간 귀가 어두운 그가 털어놓는 한마디 한마디는 뱃가죽이 등에 붙은 사람처럼 힘이 없다. 하지만 눈동자에 만큼은 자식을 찾겠다는 아빠의 간절함이 여전히 절절하다.

"20일 동안 입원했는데 잠은 안 오고, 이불 뒤집어쓰면 눈물만 나요. 차라리 죽었으면 이런 고통 안 받고 좀 더 편했을 걸 하다가도, 애 찾아야지 하는 생각에 버텼어요."

지병인 허리 통증과 치통에 메르스로 인한 고열과 기침은 송씨의 기력을 다 앗아갔다. 그래도 실종아동전문기관과 딸아이를 찾으러 다니며 인연 맺은 미아찾기, 경찰서 관계자들의 '힘내라'는 격려와 '혜희를 찾기 전엔 눈 못 감는다'는 송씨 자신의 의지는 생명의 끈을 쉽게 놓을 수 없게 했다.

그렇게 스무 날을 버틴 송씨는 뇌경색 약과 진통제를 잔뜩 싸들고 퇴원했다. 사랑하는 딸 혜희를 한 번만이라도 만나보고 죽는 게 소원이라는 송씨는 "혜희가 나를 살렸어요"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을 원망하며 포기했으면 다 잃었겠지요. 아이가 살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메르스를 이겨낸 힘이었어요."

송씨는 퇴원하자마자, 딸아이가 다니던 학교 인근 송탄출장소 앞 현수막이 제대로 붙어 있는지부터 살폈다.

덧붙이는 글 | 평택시민신문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메르스, #메르스 완치자, #송혜희, #실종아동, #송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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