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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을 찾는 사람이라면 돈을 내지 않고도 양질의 미술전시 두 개를 볼 수 있다. 하나는 오는 28일까지 전시되는 <윤석남 ♥ 심장>(아래 <심장>)이고 다른 하나는 서울시립미술관 상설전인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다.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미술가 윤석남과 천경자의 전시가 한 공간에서 열린다는 점만으로도 여성미술에 관심이 있는 방문객의 발길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심장>은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삼색전(블루, 골드, 그린)> 가운데 원로 작가를 초청하는 <그린(Green)>의 두 번째 전시이다. 첫 번째는 지난 2013년 열린 1세대 전위미술가 김구림의 <잘 알지도 못하면서>전이었다. 강한 개성이 엿보이는 독창적인 전시로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윤석남 ♥ 심장>, 공중에 매달린 여인의 굴레

2015 SeMA Green : 윤석남 ♥ 심장 포스터
▲ 2015 SeMA Green : 윤석남 ♥ 심장 포스터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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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심장>은 모두 50편 가량의 독립된 작품과 160점의 드로잉을 함께 배치했다. 윤석남의 작품 활동 과정과 작가의 서사 등을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전시였다. 이번 전시는 전형적인 회고전 형식에서 탈피했다. 어머니, 자연, 여성사, 문학의 네 개 주제로 분류되어 과거의 작품과 최근작이 서로 공명하도록 기획되었다는 점에서 특색이 있다. 허난설헌, 이매창, 김만덕 등 역사 속 여성을 모티브로 삼은 신작도 여러 점 공개돼 눈길을 끈다.

불혹이 넘어 처음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고, 십 년이 더 흐른 뒤 본격적으로 나무를 다루기 시작한 윤석남의 다양한 작품들은 넉넉한 공간에 서로 얽혀있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색다른 감상을 자아낸다. 미니목각 999개로 이뤄진 1997년 작 '빛의 파종'과 유기견 수백 마리의 모습을 각기 널빤지 위에 표현한 2008년 작 '1025 : 사람과 사람 없이'가 전시장 중심부의 널찍한 공간을 차지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곁에는 1999년부터 2003년까지 색연필로 그리고 메모를 적은 드로잉 작품과 처음 공개되는 신작들이 자리하고 있다.

<심장>은 페미니즘 미술가로 불리는 윤석남의 정체성이 확연히 드러나는 전시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자면 한국의 현대를 살아온 여성이 모두 이와 같을 것인지 의문이 절로 들 정도다. "예술가는 지면으로부터 20cm쯤 떠 있는 사람"이라거나 "여인은 부모의 집도, 남편의 집도, 아들의 집도 자기 집일 수 없는 신세"라는 작가 자신의 글처럼 부유하고 방황하는 정서가 짙게 배어나온다.

무엇보다 공중에 매달린 채 땅에 대한 관심을 거두지 못하는 여인의 정서가 작품마다 보인다. 초기 드로잉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작가의 어머니 모습에서도 비슷한 정서가 읽힌다. 전시장을 나오는 길에 볼 수 있는 나무판자 안에 갇힌 여성의 모습은, 여전히 유·무형의 억압으로부터 온전히 벗어나지 못한 여인의 정서를 상징하는 것 같다.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전 세계를 방황하는 여인의 공허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포스터
▲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 포스터
ⓒ 서울시립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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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서소문본관에서 만나볼 수 있는 상설전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전에서도 비슷한 감상을 느낄 수 있다. 이 전시는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인 천경자 화백이 "내 그림들이 흩어지지 않고 시민들에게 영원히 남겨지길 바란다"며 지난 1998년 기증한 93점의 작품을 대중에 공개한 상설전이다. 그녀는 꽃과 뱀, 이국의 풍경을 독특한 필치와 다채로운 색채로 그려왔는데 화려한 인상 가운데 지울 수 없는 외로움이 엿보인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공중에 매달린 채 지상을 향해 손을 내뻗는 여인의 이미지에 자기를 투영해온 윤석남과 달리, 천경자는 세계 각국을 여행하며 만난 이국의 여인들과 환상 속 여인들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곳에 전시된 그녀의 작품은 대체로 자전적인 인상이 강하다. 일찍이 그 스스로도 "그것이 사람의 모습이거나 동·식물로 표현되거나 상관없이, 그림은 나의 분신"이라 말한 바 있다. 한 나라, 한 남자에게서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신의 공허함을 드러낸 천경자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세상 어느 곳에도 나의 집이 없다던 윤석남의 작품이 보이는 듯 하다.

미술관을 비롯해 연극, 뮤지컬, 오페라 등 공연 분야부터 영화 및 스포츠까지... 문화 분야 전반이 메르스 여파로 인해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다. 때문에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는 입구에 열 감지기와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도슨트 프로그램 운영을 잠정 중단하는 등 감염을 막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윤석남 ♥ 심장>을 <영원한 나르시시스트, 천경자>와 함께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인만큼, 시간을 내 나들이를 떠나 보는 건 어떨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서울시립미술관, #윤석남, #천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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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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