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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후아유>라는 학교 드라마를 관심 있게 보고 있다. 드라마를 흥미가 아닌 관심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마도 직업병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현실의 풍경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학교 드라마를 통해 떠난 지 30년 가까이 되는 고교 현장을 목격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남녀 학생들이 보여주는 행동들, 특히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설정, 이성 간의 애정표현 등은 기성세대인 나에겐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드라마에서 작가는 신자유시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투쟁으로 오로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기성세대의 모습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또한 강한 자와 강한 자를 중심으로 하는 집단의 헤게모니로 인한 약자들의 고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죽음으로써 자신의 고통을 끝내려는 약자의 모습은 기성세대의 현실과 너무나 닮았다. 

최근 이 드라마는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한 여학생의 죽음의 전말을 보여주었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자는 줄만 알았던 여학생이 사실은 뇌수막염에 걸려 있었다. 그러나 교사나 친구들 아무도 이 학생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종례 후에 모두가 돌아가지만 이 학생은 그대로 누워 있고 결국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한밤중에 시체로 발견된다.

너무나 충격적이다. 과연 이런 일이 교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가. 다소 억지 설정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강한 메시지를 받았다. 분노와 증오로 가득 찬 죽은 학생의 언니는 누구 한 사람만이라도 관심을 가져 주었다면 동생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부짖는다. 작가가 강조한 것은 관심이었다. 관심이 사람을 죽이고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 간 강의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나만의 철학이 있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워서 불러 주는 것이다. 학생들의 이름을 외워 불러주는 것이 무슨 어려운 철학이냐고 하는 독자들도 있겠지만 직업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 것이다.

몇 년 전 서울의 어느 대학 강의 후 여학생으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당시 대학 3학년 이었던 여학생은 대학교에 입학하여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 준 선생님이 내가 처음이었다며 너무나 감사하다고 하였다.

생각해 보면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는 그래도 담임선생님이 계시기 때문에 최소한 한 명의 선생님으로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듣게 된다. 그런데 대학에선 눈에 띄는 학생이 아니면 전공 교수님들조차 이름을 외우기가 싶지 않다. 이 일이 있고 나서 나는 더욱더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고 가급적이면 자주 불러준다. 특히 강의에 불만이 가득해 보이거나, 늘 피곤해 보이는, 행복하게 보이지 않는, 외모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 학생들을 집중 공격한다.

최근 모 대학 강의에선 한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큰 덩치에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으며 뭔가 불만에 가득 차 보이는 학생이었다. 나의 공격은 첫 시간부터 시작되었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외우는 척하면서 이 학생 저 학생을 지목하다 무서워 보이는 남학생에겐 몇 차례 더 질문을 하였다. 2주 쯤 지났을 때부턴 변화가 시작되었다. 나와 눈을 맞추면서 얇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럴 땐 영락없는 순수한 대학생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수업과 관련된 질문까지 해댔다.

우리가 굳이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말하지 않더라도 상대방과 나와의 관계는 서로가 의사소통을 할 때만 진정한 관계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 관계의 시작은 바로 상대방의 존재를 내가 인식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름 불러주기가 그 첫 걸음일 것이다. 어쩌면 요즘 세상을 공포로 몰아붙이는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게 무관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호남매일 칼럼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후아유, #메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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