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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故) 이효순 할머니는 숨을 거두기 직전 흘린 눈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살아생전 '훨훨 날아가고 싶다'며 유골을 산하에 뿌려달라고 했던 이효순 할머니는 이제 천안 망향의 동산에 안치되어 있다.

살아 계실 때 이 할머니를 돌보시고, 지난 27일 숨을 거둔 할머니 장례식에서 호상(護喪, 초상 치르는 모든 일을 관장하는 사람)을 맡았던 이경희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함께 하는 마산창원시민모임' 대표가 장례를 치른 뒤, 31일 소감을 밝혔다.

냇가에서 빨래하다 붙들려 간 이효순 할머니

27일 저녁에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의 빈소가 창원 파티마병원에 마련되어 있다.
 27일 저녁에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의 빈소가 창원 파티마병원에 마련되어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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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의령에서 태어났던 이효순 할머니는 나이 17세(1941년) 때 마을 냇가에서 빨래하다 일본군에 붙들려 부산과 일본을 거쳐 위안부로 강제 동원되었고, 광복이 될 때까지 대만, 싱가폴, 베트남 등에서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했다.

이 할머니는 해방되어 귀국했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보지 못했고, 부산과 마산, 서울에서 생활하다 2007년 여동생이 사는 창원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할머니는 2009년 2월 천식과 혈전증 등으로 요양병원에 입원했고, 지난해 11월 창원 파티마병원에 입원했다.

이 할머니는 지난 27일 오후 7시 50분 숨을 거두었다. 올해 연세는 91세. 창원지역 시민사회단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효순 할머니 시민장례위원회'를 꾸리고, '시민사회장(葬)'을 치렀다. 시민장례위는 29일 저녁 추모제에 이어, 30일 아침 영결식을 치렀다.

이 할머니의 별세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 정의화 국회의장,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박종훈 경남교육감, 홍준표 경남지사, 김현숙·박성호·진선미·강기윤 국회의원, 박인환 대일항쟁기피해조사위원장, 김학준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대한 불교 조계종 나눔의집 송월주 원장 등이 조화를 보냈다.

창원 파티마병원은 빈소 사용료를 지원해 주었고, 한겨레두레협동조합은 상조비를 지원했으며, 별빛가족과 장순향 교수, 김유철 시인, 최수정 학생(밀양 동명대)이 추모제 때 재능기부를 했다.

이경희 "구십 평생의 원통함, 분노, 한이 담긴 눈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시민장례위원회'는 30일 창원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 고인의 유골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시민장례위원회'는 30일 창원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 고인의 유골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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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희 대표는 이효순 할머니의 마지막 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 대표는 지난 27일 오후 5시 30분경부터 이 할머니가 입원해 있었던 파티마병원 중환자실을 지켰다. 이 대표는 '어머니'라 불렀다.

"어머니는 6개월 전부터 목에 인공호흡기를 꽂고 계셨다. 그 전에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때부터 말을 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정신은 또렷하셨다. 보름 전에는 간헐적으로 눈을 뜨기도 하셨는데, 옆에 있다가 손으로 만지면서 '가려우세요'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셨다. 그런데 보름 전부터인가 눈을 뜨지 못하셨다.

임종 10여분 전부터 맥박이 뚝뚝 떨어졌다. 그 때 어머니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지난 보름 동안 전혀 그러지 않으셨는데 말이다. 눈물을 보면서, 어머니께서 우리가 하는 말을 다 듣고 계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숨을 거두면서까지 정신은 맑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경희 대표는 "어머니의 그 마지막 눈물은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어머니는 구십 평생이 원통함과 분노, 한으로 점철되었다. 그것을 안고 가려고 하니까 말도 못하는 상황에서 답답함으로 읽혔다"고 풀이했다.

"올해 몇 분이 더 가실지 모르는데...아무 성과 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시민장례위원회'는 30일 창원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 고인의 유골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했다. 사진은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가 유골 안치에 앞서 제사를 지내면서 술을 따라 올리는 모습.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시민장례위원회'는 30일 창원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 고인의 유골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했다. 사진은 이경희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마산창원진해시민모임 대표가 유골 안치에 앞서 제사를 지내면서 술을 따라 올리는 모습.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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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표는 감사 인사도 전했다. 그는 "시민사회장을 무사히 치를 수 있도록 해준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며 "2013년부터 창원에서 일본군위안부 추모조형물을 만들자는 운동을 추진하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시민들이 같은 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래서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또 그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관심이 이전보다 확실하게 달라졌다. 올해가 광복 70년이라서 그런지, 정부와 언론의 관심도 컸다"며 "이전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조화만 보내는 정도였는데, 이번에는 장관이 직접 문상을 오고, 국회 상임위원장도 다녀갔다"고 말했다.

이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정부의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외형적으로 보여 주기 식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전의 소극적인 자세에서 이번에는 인식이 훨씬 높아졌다고 본다"며 "이런 관심이 앞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천과 행동으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경희 대표는 우리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지금 일본이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되고, 호시탐탐 군사대국으로 가면서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중국과 미국도 그렇다.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그 시기와 비슷한 양상이다. 우리는 강대국 사이에 눈치를 보고 있다. 우리 정부는 정치·경제 조건 때문에 위안부 문제에 당당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할머니들이 살아 계실 때 해야 한다. 지금 할머니들은 52명이 생존해 계신데, 평균연령이 89세다. 올해 몇 분이 더 가실지 모른다. 시간이 없다. 눈치를 보고 미룰 게 아니다.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가 외교 실무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아는데, 몇 달이 지나도 아무런 성과가 없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이니까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기본적인 실마리라도 풀 수 있는 단초를 만들어야 한다."

생전의 한 "그놈들 만나면 뜯어먹었으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시민장례위원회'는 30일 창원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 고인의 유골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고 이효순 할머니 시민장례위원회'는 30일 창원시립화장장에서 화장한 고인의 유골을 천안 망향의동산에 안치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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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순 할머니가 가시는 길에 특히 청소년들이 함께 했다. 태봉고 학생들은 국화 꽃다발을 만들어 조문하기도 했고, 밀양 동명고 최수정 학생은 편지를 써 왔으며, 한 대학생은 뉴스를 듣고 빈소를 찾아와 조문하며 울기도 했다.

이경희 대표는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찾아 왔다. 이효순 어머니가 못다 푼 한을 풀 수 있다는 희망을 학생들이 준 것 같다"며 "우리 세대는 일제 잔재 청산도 못하고 위안부 문제도 풀지 못했는데, 자라나는 청소년들한테 올바른 역사교육을 통해 문제를 풀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8·15 때 창원 마산오동동 문화의 거리 입구에 일본군 위안부 추모조형물이 세워진다. 추모조형물 건립을 위해 시민 성금이 모아졌고, 디자인을 확정했으며, 조만간 건립작업에 들어간다.

이경희 대표는 이효순 할머니가 살아생전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그놈들 아니면 이렇게 힘들게 안 살았다. 그놈들 만나면 뜯어먹었으면 좋겠다. 원망스럽지만 지금 어떻게 할 수 있나."

○ 편집ㅣ이준호 기자



태그:#이효순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망향의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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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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