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새를 보는 소녀

냄새를 보는 소녀 ⓒ sbs


이제 마지막 회만을 남겨둔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다. 지난 20일 방영된 15회는 배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스스로 증명해 낸 회였다. 안타깝게도 그 최대를 증명하기 위해, 그간 드라마적 흥미를 자아내게 했던 기대 요소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조그만 공터에서 형사들이 스스로 연쇄 살인범 권재희(남궁민 분)의 도주로를 찾는 대신, 여주인공인 오초림(신세경 분)의 냄새를 보는 능력에만 의지하다가 비가 와서 여의치 않은 모습을 그리더니 어찌어찌 해서 권재희의 비밀의 방을 찾아냈다. 그리고 최무각 형사(박유천 분)의 활약으로 총상을 입은 채 권재희를 검거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복수가 법률적 수순에 맞춰 성공했지만 반성할 기미조차 없는 권재희에 최무각은 주먹을 날리면서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그런 미진함과 달리 최무각의 무감각은 돌아오고, 오초림의 기억도 되살려진다. 그리고 이것은 <냄새를 보는 소녀>가 애초에 설정했던 권재희의 악행으로 인해 두 주인공의 트라우마가 풀려진 결정적 장면이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 속 최무각의 감각 복귀는 그저 밥을 먹다 배부름을 느끼는 것으로 어이없게 설명된다. 봉인되었던 오초림의 기억도 마찬가지다. 자다가 부모님의 꿈을 꾸다 기억이 돌아오는 것이다. 두 주인공의 무감각와 초감감에 흡인된 시청자들이 기대했던 극적인 감동을 주기엔 한참 미흡한 극적 정점이다. 아마도 여전히 권재희에 대한 미진함을 떨치지 못한 무각의 감정처럼, 그저 흘러가듯 두 주인공들은 감각을 찾고, 기억을 찾아버린다.

오히려 15회에서 공을 들인 것은 <냄새를 보는 소녀>가 그간 장점으로 부각시켜 왔던 두 주인공의 달콤한 데이트씬이다. 기억을 찾는 오초림과 부모님, 그리고 자신의 여동생을 찾은 최무각은 준비한 반지를 전해주려는 고백을 여러 버전으로 상상하는가 하면, 막상 이벤트를 준비하다 실패해 모래 속에 숨은 반지를 찾으려 애쓰는 등 해프닝을 벌인다. 물론, 그 상상의 마지막은 이전의 진부한 자동차 트렁크 풍선이나, 분수대 고백 등의 평범한 이벤트가 아닌, 오로지 <냄새를 보는 소녀>만이 가능한 향수를 이용한 냄새 고백이었다.

이 환상적인 고백은 그 이전에 무각과 초림의 트라우마에 대한 회복이 급조한 듯한 모양새로 후딱 넘어가면서, 시청자들이 충분히 이 두 사람의 행복에 대한 심정적 대비를 하기도 전에 찾아와 버렸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좀 더 두 주인공들의 아픔에 대한 회복에 마음이 가있는 상황에, 제작진은 유머를 잔뜩 친 고백 장면들을 남발해 버린다.

드라마가 어설플수록 빛나는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

어설픈 트라우마 치료와, 장황한 결혼 고백 이벤트라는 어쩐지 균형을 상실한 15회, 그리고 물속에서 경찰 세 명이 죽는 상황에서도 부활하여 결혼식장에서 오초림을 납치하는 전지전능함으로 마지막 회까지 존재감을 떨치는 사이코패스의 압도적인 하지만 지겨운 활약 속에서도 15회를 견디게 만드는 것은 두 주인공의 연기다.

이미 중반부를 넘어가면서 두 주인공의 감정선을 친절하게 풀어내는 대신, 개그 코드가 버무려진 데이트 장면과, 사이코패스의 악행으로 점철된 양 극단을 불안하게 오고가던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흔들리는 극의 흐름 속에서 불친절한 감정 장면마저도 연기도 봉합해 오던 것 역시 박유천, 신세경의 연기였다. 작가인지, 감독인지, 편집인지, 흔들리는 원죄의 발흥처가 심히 의심스러운 상황에서도 단 한 장면 스쳐가듯 주어진 장면에서도 두 주인공은 자신들의 절절한 눈빛만으로 풀어내지 못한 두 주인공의 상처와 고통을 설명해 냈다. 작가는 자신이 풀어낼 설정을 잊은 채 연쇄 살인범의 악행에 몰입하고, 감독은 중심을 흔들리고, 편집은 들뛰는데도, 여전히 드라마는 볼만하게 만드는 것은 두 배우의 연기이다.

15회, 그 마저도 한 장면으로 퉁치고 넘어가 버린 이후의 상황에서 어설퍼져 버린 극의 흐름과 상관없이 박유천은 고백의 하지 말아야 할 예로서 작가가 설정해 넣은 한껏 오글거리는 고백 장면들을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로 메꾸고 설득한다.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의 남자 주인공으로 멋스러움을 접어둔 채, 어설픈 극적 설정들마저 마다하지 않은 채 자신을 던져 가면서 연기로 메꾸어 내는 박유천의 연기는 그저 주인공이 아니라 작가와 감독과 배우라는 삼각 편대에서, 뒤처진 나머지 두 동반자를 이끌어 가며 드라마를 책임지는 주연의 자리를 실감케 한다. 마차가지로 몸을 던져 열연하는 박유천의 개그 코드 앞에서 감동스런 눈물을 흘리는 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 내는 신세경은 이 한 컷만으로도 단순히 예쁘다는 수식어를 넘어 성실한 연기의 자세를 가진 여배우의 자리를 증명해 낸다.

물론, 이런 <냄새를 보는 소녀>의 전략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실제 1회부터 <냄새를 보는 소녀>가 대중적으로 반응을 얻은 것이 바로 이런 '개그스럽게' 두 주인공이 맞부딪치는 장면들이었기에 '촤~'를 남발하여 극의 분위기를 이끌어 가겠다는 의도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드라마로서 극이 풀어가야 할 주인공의 감정적 부분조차 대충 넘어간 채 이런 부분에 치중하다보니 두 주인공에 몰입하여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오히려 몰입을 깨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냄새를 보는 소녀

냄새를 보는 소녀 ⓒ sbs


그런 몰입을 깨는 요소는 그간 스릴러 요소를 가미했던 <냄새를 보는 소녀>가 풀어낸 어설픈 스릴러 코드들에 있다. 초반 '추리'하는 재미를 더했던 모든 설정들마저, 시청자들은 기억하는데 제작진은 '퉁'치고 넘어간다. 초반 두 주인공이 말로 사건을 해결하던 방식을 넘어서지 못하고, 결국은 사이코패스의 도돌이표 악행으로 극적 긴장감을 이끌어 가는 자승자박하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웃프게 비밀의 방을 찾는 상황에서 복수의 딜레마에서 갈등하는 장면들조차 <냄새를 보는 소녀>는 드라마로서 그걸 푸는 대신 온전히 그의 무감각에는 불친절했던 최무각에 의존하고, 박유천은, 단 한 컷으로 그걸 설득해 낸다. 눈물어린 자책의 신세경 역시 극의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만든다.

덕분에 전체적으로 들여다보자면 한없이 어설퍼진 15회의 스토리를 두 주인공들이 극적인 감정을 오가며, 한껏 무너지면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연기로 짊어진다. 그저 그러려니 하고 허리 풀고 앉아서 허허롭게 웃으며 부담 없이 즐기게 되는 드라마로 풀어낸다. 따질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얼굴 근육을 한없이 일그러뜨리고, 목소리를 뒤집어 가며 자신을 던지며 웃기는 장면마저 열연하는 두 주인공으로 인해 팔짱낀 손이 풀어지는 것이다.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드라마의 환경 속에서 이른바 작가가 삽질을 하면, 연출도 같이 산을 타고, 편집은 칼춤을 추고, 출연자의 연기마저도 어색해져 버리는 게 다반사다. 이런 상황에서 진지하게 중심을 잡고 시청자들에게 '볼거리'를 선사해주는 박유천, 신세경 두 배우의 열연은,  이 드라마의 본방을 사수해야 할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배우가 스스로 개척한 신세계다.


냄새를 보는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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