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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작년 5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가져온 영정사진을 품은 채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작년 5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가져온 영정사진을 품은 채 박근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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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자로 배치된 지 1년 8개월, 그중 1년 동안 세월호를 취재했다. 희생자만 295명에 바닷속 실종자가 9명. 생전엔 몰랐던 희생자들이지만 이제는 일부 얼굴과 이름을 외운다. 세월호 참사를 제대로 조사해 달라며 거리로 나선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부모, 그들이 목에 걸고 나온 아이들의 학생증 사진 덕분이다.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지날 때마다 본 영정 덕분이다.

지난해 5월 8일 오후에도 나는 안산 합동분향소에 있었다. 그날 밤 유족들은 가슴에 카네이션 대신 아들·딸의 영정사진을 품었다.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 희생자는 연간 교통사고에 비하면 많지 않다'고 말한 게 알려지면서, 분노한 유족 200여 명이 영정을 들고 여의도 KBS로 향한 것이다. 그날 부모들은 온몸이 떨릴 정도로 울며 죽은 자식의 영정을 떼어냈고, 분향소 안은 오열과 비명으로 가득 찼다.    

KBS가 사과를 거부하자 유족들은 결국 청와대 앞에서 밤을 새우며 박근혜 대통령에게 '만나달라'고 하소연했다. 하지만 '최종책임자'라던 대통령은 유족들의 요청을 끝내 거절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제, 어버이날인 8일 단원고 희생 학생의 아버지 권아무개(58)씨가 자택에서 홀로 목매 숨진 채 발견됐다. 이날은 마침 권씨의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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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4일 한 세월호 유가족이 경기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단원고 희생자들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 영정 바라보는 유가족 지난달 4일 한 세월호 유가족이 경기 안산 합동 분향소에서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 폐기와 선체 인양을 촉구하는 도보행진에 앞서 단원고 희생자들의 영정을 바라보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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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엄마랑 바꾸자. 그게 맞잖아" 어버이날, 자식 봉안당 찾은 부모 

세월호 사고 후 1년, 모두가 참사 전후는 달라야 한다고 외치지만 변한 것은 없어 보인다. 그때도 강아무개(53) 단원고 교감이 "혼자만 살아 미안하다"며 목매 숨졌다. 지난해 이맘때 KBS 기자들이 "원칙 없는 속보로 유가족 가슴에 못을 박았다"며 반성했지만, 1년 후 어제도 채널A 보도국 기자 60명이 "상식 이하의 보도를 못 걸러냈다"며 유족들에게 사죄했다.

진상조사는 어떤가. "참사 발생원인·과정·후속조치 등 사실관계와 책임소재를 밝히고(…) 대응방안을 수립해 안전 사회를 건설·확립하는 것이 목적"인 특별법 제정 후 반년이 다 돼가지만, 조사는 시작조차 못했다. 유족들은 애초 요구했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포기했지만, 이제 정부는 특별법 세부규정인 시행령을 일방적으로 정하며 조사권마저 침해하고 있다. 

"어버이날인 오늘 예은이 방에 작은 꽃 하나 달아주고 왔다. 어버이날이라 추모공원(봉안당)을 찾은 자녀들이 엄마를 찾으며 대성통곡을 하는 걸 보자니 왜 난 거꾸로인가 하는 생각이…. 예은아, 엄마랑 바꾸자. 그게 맞잖아…."

8일 한 유족 어머니가 본인 SNS에 올린 글이다. 지난달 23일, 실종자 조은화양의 어머니도 "내 딸이 거기(바다에) 있는 게 너무 속상하다, 나랑 바꿨으면 좋겠다"며 기자들 앞에서 통곡했다. 참사 실종희생자 304명, 단원고 학생들(250명)의 부모와 일반인 희생자 가족을 2명씩만 계산해도 유족들이 무려 608명이다.

정부는 '유족과 특별조사위원회의 의견을 대폭 수용해 시행령을 고쳤다(해양수산부)'면서도 정작 특조위와는 만나지 않고, '정부 시행령을 받아들여야 한다(기획재정부)'면서 6개월째 예산조차 주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는 한 세월호 참사는 반드시 반복될 것이다. 세월호가 모양을 바꿔 다른 참사로 나타나는 그때, 피해자는 누가 될지 모른다. 당신 혹은 나, 어쩌면 우리 모두일 수도.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오른쪽)을 비롯한 특조위 위원들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없었다. 이들은 "통과한 정부 시행령안으로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없다"며 개정안을 낼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 대통령 결단 요구하는 세월호 특조위 이석태 세월호 특조위원장(오른쪽)을 비롯한 특조위 위원들이 지난달 30일 청와대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없었다. 이들은 "통과한 정부 시행령안으로는 제대로 된 진상조사를 할 수 없다"며 개정안을 낼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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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세월호 유족 자살, #세월호 시행령, #정부 시행령, #유가족 시행령, #세월호 특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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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플러스 에디터. 여성·정치·언론·장애 분야, 목소리 작은 이들에 마음이 기웁니다. 성실히 묻고, 세심히 듣고, 정확히 쓰겠습니다. Mainly interested in stories of women, politics, media, and people with small voice. Let's find ho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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