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바지를 향해 가는 만큼 숨 돌릴 틈도 없는 촬영장에서도, 8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SBS 수목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이하 <냄보소>) 출연진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한 모습이었다.

바코드 연쇄 살인 사건의 진범 권재희 역의 남궁민이 "박유천과 신세경이 정말 자연스럽고 귀여운 커플 연기를 펼치는 바람에 살인마 입장에서도 두 사람을 흐뭇하게 바라보게 된다"고 털어놓고, 박유천이 "남궁민이 살인마의 감정을 표출하는 장면을 보고 다음날 달려가 '멋있다, 부럽다'고 말했다"며 "다음에 권재희 같은 악역에 한 번 도전해 보고 싶다"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릴 정도다.

'좀 많이' 웃긴 형사 최무각 역 박유천 "마지막에 강렬하게 코미디 한 번 더?"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그룹 JYJ 멤버 겸 배우 박유천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그룹 JYJ 멤버 겸 배우 박유천 ⓒ SBS


<냄보소>는 바코드 연쇄 살인으로 각각 동생과 부모를 잃은 형사 최무각(박유천 분)과 오초림(신세경 분)이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는 동시에, 사건의 진실에 접근해 가는 과정을 담은 드라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처음으로 코미디 연기에 도전한 박유천, 그리고 기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밝은 캐릭터로의 변신을 꾀한 신세경의 모습이다.

먼저 박유천은 '아이돌'로서의 모습에서 벗어나 대머리 가발을 쓰고, <웃찾사> '서울의 달' 코너를 재연하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짓는 모습으로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특히 극 초반 부상을 당해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최무각이 오초림의 차에 치인 뒤 빠진 팔을 덜렁거리고, 만담 개그를 하며 '예'도 '체'도 아닌 '췌'에 가까운 소리를 내는 것 등은 그의 아이디어가 반영된 부분이라고.

이를 두고 "그 상황에서 재미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방법을 생각하다 그런 설정들이 나온 것 같다"며 입을 연 박유천은 "'서울의 달' 코너를 할 땐 연기하는 우리뿐만 아니라 보는 시청자도 재밌어야 한다는 생각에 특히 부담이 컸다. 처음 대본엔 '에~'라고 쓰여 있었지만, 아무리 연습해도 재미가 없어 강하게 어필할 수 있는 걸 찾다 보니 지금의 '췌~'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게 많이 터지는 바람에 그 뒤론 부담감이 함께 커지더라고요. 다행히 요즘엔 초림이가 극단을 나와서 보여드릴 기회가 없지만요. (웃음) 앞으로 촬영이 2주 남았는데,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마지막에 강렬하게 '췌~'를 다시 한 번 보여드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박유천)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배우 신세경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배우 신세경 ⓒ SBS


당장이라도 아련한 눈빛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향해 '지금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말을 할 것만 같은 신세경의 얼굴에도 그늘이 걷혔다. "본래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편안하게 연기하는 것을 백수찬 PD님도 좋아한다"며 입을 연 신세경은 "주변 반응이 나에겐 가장 객관적인 척도인데, 좋은 반응을 얻어 흡족했다"며 "내가 감정적으로 힘든 작품을 할 땐 주변에서도 같이 위로하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엔 명랑한 부분이 많아 다 같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됐다"고 말했다.

"중후반부 들어 갈등이 생기고 힘든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연기하기엔 벅차고 신중한 부분도 함께 생기고 있어요. 어서 밝은 초림이로 돌아가 예전처럼 웃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죠. (웃음) 남은 방송에서 처음 <냄보소>가 의도했던 대로 스릴러의 통쾌함과 로맨틱 코미디의 따뜻함과 행복함을 모두 알차게 잡는 드라마가 됐으면 좋겠어요." (신세경)

한편으로는 극중 냄새를 보는 특수한 능력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범인을 족족 잡아내던 오초림이, 극이 전개될수록 '민폐형' 캐릭터가 된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지난 12회에선 오초림이 권재희의 위험성을 알고도 휴대폰을 빠뜨리고, 교신용 이어폰도 착용하지 않는 등의 부주의한 모습으로 '위기를 위한 위기'라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이에 대한 신세경의 답은 현명했다. 그는 "초반엔 오초림이 능력을 많이 드러내면서 흥미롭고 통쾌한 부분이 부각됐지만, 사람의 삶엔 우여곡절이 있고 하강이 있어야 박차고 올라가는 게 재밌는 법"이라며 "오초림이 이렇게 부딪히면서 깨닫는 게 분명히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후 깨달음을 얻은 초림이 능력을 발휘해 사건을 해결하길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살인마' 권재희 역 남궁민 "드라마 속 내 편 아무도 없어 힘들다"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배우 남궁민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배우 남궁민 ⓒ SBS


그런가 하면 "아내를 강간하고 살인하는 역할도 해 봤고, 비열하게 친구를 배신하는 역할도 해 봤다"며 "악역의 포인트랄 것도 없이 그냥 느껴지는 대로 막 하고 있다"는 말로 한껏 자신을 낮춘 남궁민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다. 싱글싱글 환한 웃음을 짓고 있다가도 차갑게 식은 눈빛으로 비릿한 미소를 짓는 그의 모습은 <냄보소> 속 스릴러적 긴장감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하고 있다.

남궁민도 처음 제작발표회서 자신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었던 탓에 꽤나 답답했던 눈치다. "그동안 한 여자를 짝사랑하는 역을 많이 했는데, 자꾸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니까 그런 역할을 많이 하다 보면 질린다. 그런데 권재희 역은 그런 면에 있어선 재미있다"고 운을 뗀 남궁민은 "그런데 러브라인도 없고, 드라마 속에 내 편이 아무도 없다. 그런 점에선 촬영이 힘들기도 하다"며 웃어 보였다.

"사람에겐 누구나 이중적인 면이 있잖아요. 특히 배우로 살아가는 우리들은 기분이 나빠도 앞에서 그런 표시를 못 내요. 그런데 권재희 역으로 누굴 죽이고 싶은 생각이 들거나 기분이 나쁠 때, 표가 나지 않으면서도 또 표가 나는 연기를 해야 하잖아요. 웃다가도 기분 나쁜 모습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배우로서는 쌓였던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긴 해요. (웃음)" (남궁민)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배우 윤진서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 출연 중인 배우 윤진서 ⓒ SBS


드라마 속 그의 색다른 모습에 이날 많은 취재진이 '어떤 마음으로 권재희 역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을 던졌지만, 정작 남궁민은 담담했다. 오히려 그는 "목표나 방향성을 세우는 것이 욕심이고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그래서 거창하게 말할 만한 것이 없다. 그저 편안하게 연기하자는 생각이 가장 크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이날 "MBC <내 마음이 들리니>(2011)에 출연한 뒤 '이제 어떤 캐릭터를 찾고, 어떤 작품에 출연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해 차기작을 신중히 골랐는데 결국 2년을 쉬게 됐다"고 털어놓은 남궁민은 "그러면서 목표 의식을 갖고 좋은 역할을 찾는 건 물론 중요하지만, 특정한 목표를 갖고 연기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며 "다만 꾸준하게 연기하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엔 나를 찾아 준다면 열심히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야겠다는 생각 뿐"이라고 했다.

다만 그는 권재희의 앞날에 대해선 "남궁민의 입장에선 죗값을 치러야 한다 생각하지만, 권재희 입장에선 웬만하면 마지막까지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권재희의 최후는 이희명 작가님의 몫으로 남기겠다"며 조심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꺼냈다.

이어 "권재희가 살인을 하는 이유는 나도 진짜 궁금하다. 그냥 심심해서 사람을 죽인 것 같지는 않다"고 말한 그는 "3살에 외국으로 입양된 뒤 사람들을 그리워했고, 자신이 가질 수 없는 인생을 궁금해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을 쓰게 하고 그것을 책으로 소장함으로써 마치 자신이 그 삶을 산 것처럼 느끼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 편집ㅣ이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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