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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담배
 밭에서 잘 자라고 있는 담배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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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도 많고 탈도 많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백해무익이라더니 작년에는 꼼수증세라는 오명(?)까지 슬쩍 뒤집어 써야 했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은 없어 못 피우고, 싫어하는 사람은 멀찍이서 피어오르는 연기만 봐도 싫어합니다. 

필자 역시 10년쯤 피웠습니다. 많이 피울 때는 하루 2갑 정도까지 피웠습니다. 처음부터 매여 있었던 건 아니지만 피우다보니 어느새 매여 있었습니다. 끊기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끊으라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흡연을 합리화 시키고 있었습니다.

몰래 숨어서 피우다 보니 부르는 이름도 떳떳하지 못했습니다. 구름 과자라고도 했고, 입모양을 동그랗게 그리는 것만으로도 또래끼리는 통했습니다. 10년 동안이지만 곡절도 많고 사연도 많았습니다. 꽁초를 주워 피운 적도 있고, 담배 개비 전체가 불덩이가 될 만큼 한 개비를 여럿이 돌아가며 쭉쭉 빨아 급하게 피우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담배를 끊은 지 28년 됐습니다. 28년 동안, 담배는 입에도 대 본적이 없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의지력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담배를 입에 대지 못한 건 의지력이 대단해서가 아닙니다. 한 번이라도 입에 댔다간 다시 피우게 될까 겁나 미리 피하고 있는 비겁함이라는 게 솔직할 고백입니다.

담배를 피우고 있거나, 피운 경험이 있는 사람치고 이런 이유나 저런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그래도 담배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말은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로 시작되던 옛날이야기 전주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300년 담배사, <담바고 문화사>

<담바고 문화사> (지은이 안대회 / 펴낸곳 문학동네 / 2015년 3월 31일 / 값 3만 원)
 <담바고 문화사> (지은이 안대회 / 펴낸곳 문학동네 / 2015년 3월 31일 / 값 3만 원)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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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바고 문화사>(지은이 안대회, 펴낸곳 문학동네)는 100년 이전까지의 담배사입니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이래 구한말까지 300여 년 동안 담배에 얽힌 사연이자 일화, 정치·경제·사회·문화에 스며들어 있던 시대적 담론이자 가치입니다.

담배는 아주 먼 옛날, 삼국시대 훨씬 이전인 태고(太古)부터 있었던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 담배가 들어온 건 400여 년 전인 1609년, 일본인들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아동의 흡연도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다. 1653년 조선에 표류해온 네덜란드 선원 하멜은<하멜표류기>에서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되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다"라고 아동 흡연을 거론하였다. - <담바고 문화사> 279쪽

책에서는 담배가 도입된 과정, 담배라는 이름의 유래, 사회 전반에 반영된 영향까지를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흡연이 일찍부터 지적되고 있었던 것으로 봐 담배에 대한 호불호, 흡연권과 혐연권과 관련한 논쟁은 이미 담배가 도입되면서부터 시작된 무한궤도형 논쟁인가 봅니다.

4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흡연 이유

흡연자들도 담배가 건강에 좋지 않다는 데는 거의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흡연자들이 흡연을 주장하는 논리도 만만치 않은 게 사실입니다. 그러한 주장은 이미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첫째, 밥 한 사발 배불리 먹은 뒤에는 입에 마늘냄새와 비린내가 남아 있다. 그때 바로 한 대 피우면 위胃가 편해지고 비위가 회복된다.
둘째, 아침 일찍 일어나 미처 양치질을 하지 않아서 목에 가래가 끓고 침이 텁텁하다. 그때 바로 한 대 피우면 씻은 듯 가신다.
셋째, 시름은 많고 생각은 어지러우며, 할 일 없어 무료하다. 그때 천천히 한 대 피우면 술을 마셔 가슴을 씻은 듯하다. (후략) -<담바고 문화사> 112쪽-

정조 임금 대에 연경(煙經)을 쓴 담배 전문가 이옥(李鈺)이 담배의 쓰임새를 정리한 일곱 가지 중 일부입니다. 금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구구절절한 핑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담배 문화도 많이 달라졌건만 그때 문제가 됐던 문제는 지금도 문제가 되고, 그때 핑계 거리가 됐던 이유는 지금도 핑계 거리로 등장합니다. 한시와 회화에 등장하는 흡연 장면은 그 시대의 흡연문화를 가늠하게 하는 창이 됩니다.

어린아이가 한 길이나 되는 긴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서서 피운다. 또 가끔씩 이빨 사이로 침을 찍 뱉는다. 미워 죽겠다.
다홍치마를 입은 규방의 부인이 낭군을 마주한 채 유유자적 담배를 피운다. 부끄럽기 짝이 없다!
젊은 계집종이 부뚜막에 걸터앉아 안개를 뿜듯이 담배를 피워댄다. 호되게 야단쳐야겠다.  - <담바고 문화사> 271쪽

담배와 관련한 이야기는 삼천리 방방곡곡,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계층에서 읽을 수 있는 시대적 문화이자 사회적 문제를 에두르고 있는 사는 이야기입니다.

담배의 상징 곰방대
 담배의 상징 곰방대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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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가 감당하고 있는 담배와 관련한 논쟁은 어쩜 담배가 처음 들어오던 1609년부터 시작된 400년 묵은 문제라 해도 과언은 아니라 생각됩니다. 이쯤에서 400년 넘게 유지된 담배 문제를 한방에 해결할 수 있는 키워드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됩니다.

한 때 담배를 피웠거나, 어차피 담배를 피울 거라면 한 개비의 담배에 다른 형태의 니코틴으로 배여 있을 담배에 얽힌 역사, <담바고 문화사>의 일독을 추천합니다. 모르고 내뿜는 담배 연기는 마냥 해롭기만 한 발암물질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담바고 문화사>를 통해 새긴 시 한수 읊으며 뿜어내는 담배 연기는 님이 금연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좀 더 그럴싸하게 장식해 주는 멋진 포장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중요한 건, <담바고 문화사>를 일독하며 진짜 금연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도 있고, 그동안 하지 못했던 금연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계기의 첫 걸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담바고 문화사> (지은이 안대회 / 펴낸곳 문학동네 / 2015년 3월 31일 / 값 3만 원)



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문학동네(2015)


태그:#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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