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야마무로 신이치,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소명출판
 야마무로 신이치,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소명출판
ⓒ 소명출판

관련사진보기

장춘(長春)의 짧은 봄

7년 전 이맘때 일이다. 대학원생이었던 나는 중국 장춘행 비행기를 탔다. 길림대학교의 무슨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공항에 도착하니 중국인 아저씨 둘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이 아저씨들은 나를 교수님이라고 부르면서 어물쩍 택시 타는 곳으로 데려갔다. 나는 돈이 없었다. '택시비가 없다. 나는 교수 아니다. 마중 나온다더니 차 안 가져 오셨냐. 카드는 안 받죠?' 따위의 하소연을 해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중국어 실력이라는 것이 식당이 어디냐고 물을 줄은 아는데, 답변이 왕치엔저우(쭉 가셔서요)로 시작하지 않으면 전혀 알아듣지를 못하는 수준이라서 그랬는지... 나는 버둥거리면서 대충 뒷좌석에 태워졌고 먼저 도착해있는 진짜 교수님한테 전화해서 택시비를 좀 내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공항에서 길림대학교 캠퍼스까지 가는 동안 그 아저씨 둘은 나를 가운데 끼우고 어디 연행이라도 해가는 폼을 해가지고는 절반 정도는 영어로, 또 절반은 중국어로 끊임없이 수다를 떨었다. 태반을 못 알아들었고 설사 이해했더라도 그걸 다 잊어버리고 남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지만,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둘 있다.

하나는 이 도시의 이름이 봄이 좀 길었으면 하는 만주 사람들의 바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었다. 장춘(長春)의 봄은 짧다. 이 땅에서 봄은 기나긴 혹한이 지난 뒤 습하고 더운 바람이 불기 전에 잠시 다녀가는 손님같은 거라고 했다. 내가 갔을 때는 날씨가 딱 좋았는데 나보고 하도 럭키하다고 하는 통에 택시 뒷자리에서 고맙다고(누구한테...) 수없이 인사치레를 해야 했다.

나머지 하나는 만주국에 대한 이야기였다. 내가 택시 뒷자리에 구겨져 돈도 없이 길림대학교 캠퍼스로 내달리던 그때로부터 76년 전, 장춘의 짧은 봄이 막 시작되던 무렵에 그 땅을 수도 삼은 나라가 세워졌다.

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집정으로 내세운 만주국은 다섯 민족이 사이좋게 지내는 나라(오족협화), 인민들이 편안하게 살고 즐겁게 일하는 나라(안거낙업), 왕도를 좇는 기쁨의 나라(왕도낙토)를 이 땅에 세우겠다는 기치를 건국이념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장춘이라는 이름이 봄이 길어 붙여진 것이 아닌 것처럼, 실제로 만주국에 그 이상들이 현실로 등장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오늘날 많은 이들이 이 나라가 일본의 괴뢰국이었다고 본다. 만주국이 만주사변(1931년) 직후에 탄생했고 태평양전쟁의 종결(1945년)과 함께 소멸했다는 사실은 이 '독립국'이 제국 일본의 야욕이 빚어낸 창조물이었다는 점을 웅변한다. 이 나라는 13년의 짧은 생 중 상당기간을 고로쇠 물 빨아 먹히는 나무줄기 신세가 되어 보내야했다. 만주는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던 제국 일본의 병참기지 내지는 창고 노릇을 했다.

만주국에 대한 '다른' 시각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의 저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그러나 이 단명한 국가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소개하면서 책을 시작하고 있다. 어떤 일본 지식인과 정치인 그룹은 만주국을 이상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고귀한 노력의 결실로 본다. 만주국이 20세기 초 아시아를 뒤덮었던 서양 제국주의에 맞섰던 시도였다거나 왕도 낙토를 건설하기 위한 동아의 희망이었다거나 하는 식이다.

만주국이 무슨 안거낙업의 위대한 이상국가였다는 점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만주국이 왕도낙토가 잠시나마 실현되었던 이상국가였다는 시각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해보자는 야마무로 신이치의 제안은 어떤 면에서 좀 농담 같기도 하다. 저자가 일본의 비판적인 지식인이고 만주국을 돌아보는 것을 일본의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된장인지 고추장인지 꼭 먹어봐야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지만 이 책을 사서 읽을 정도의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만주국의 건국과 운영, 소멸과 관련된 무언가 신비한 점이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싶다.

한편에서 그것은 우리가 만주국을 통해 국가건설의 과정과 그 과정에서 활용된 근대국가 만들기의 여러 '기술'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수백년, 수천년이 걸려 구성되는 여느 나라와는 달리 만주국은 불과 수년에 걸친 논의로 뚝딱 만들어졌다.

13년 만에 망한 터라 운영 기록도 짧다. 마치 실험실에서 나라 하나 만들었다가 뭉갠 느낌이다. 무엇보다 '만몽에 거주하는 각 민족의 낙토'를 세우고자 했던 이 나라의 건국이념과 태평양전쟁에 복무한 일본의 괴뢰국이라는 실제 현실이 극단적인 차이를 보인다는 점은 이 나라를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다.

또 다른 한편에서 만주국에 대한 관심을 자극하는 것은 1920-30년대의 만주가 현대 한국의 정치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는 한국과 일본의 사례를 통해 이 명제를 증명하고자 했다. 와다 하루키의 <북조선>, 권헌익/정병호의 <극장국가 북한>, 그외 민생단 사건에 대한 논의들은 북한의 정치 무대에서도 만주가 정당성의 원천 내지는 주체 노선의 시원 따위를 품은 역사적 장소로 줄곧 소환되고 있음을 논증하고 있다.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은 만주국에 대해 이런 저런 관심을 가진 이들이 첫 책으로 골라 읽을 만하다. 본문의 내용이 아주 충실하다. 만주국의 설립 배경(1장), 설립 과정(2장), 운영(3장), 몰락(4장)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양이 많고 쉽게 쓰여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꿀꺽 삼키기에는 버겁지만 장별로 나눠서 보기에는 괜찮다. 한 장씩 넘겨가며 읽고 나면 만주국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서 대강의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야마무로 신이치의 그림을 머릿속에 넣을 수 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기는 하겠다.

책 체목인 '키메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이라고 한다. 머리가 사자, 몸뚱이는 양, 꼬리는 용이라는데 입에서는 불도 나온단다. 야마무로 신이치는 만주국을 관동군을 머리로 하고 천황제 국가를 몸통, 중국황제 내지는 근대 중국을 꼬리 삼아 세워진 나라로 묘사했다. 관동군이 주도한 장쭤린 폭살사건 및 만주 사변으로 건국의 계기가 마련되었으니 그 머리는 관동군이 될 것이고, 만주 땅에 청의 마지막 황제를 집정으로 내세워 나라를 만들었으니 중국의 정체성이 꼬리를 차지한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건국 10년 만에 나라의 존재 목적부터 운영방식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모조품 신세가 되어버렸으니 부피를 제일 많이 차지하는 몸뚱아리에 천황제 국가가 들어차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저자는 만주국 말년에 이르면 그나마 붙어있던 용꼬리(중국/황제)마저 양몸통(천황제 국가)으로 변했다고 한탄한다. 중국정부로부터의 지방자치를 내세웠던 건국 당시의 일성에 비하면 초라한 결말이다.

만주국을 향한 착각의 쓰나미

만주국은 당대에 많은 팬을 거느렸다. 식민지 조선과 대만의 많은 젊은이들에게 만주는 기회의 땅, 엘도라도였다. 만주는 또한 "일본 경제가 처한 막다른 길을 돌파하는 마지막 탈출구(186)" 노릇을 했다. 물론 실제로 만주가 무슨 황금밭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 지배 하에서 고통받던 사람들, 또는 경제공황의 여파에 시달리던 일본인들에게 새로운 나라의 건설은 일종의 희뿌연 희망을 주지 않았겠나 싶다. 식민지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일본에서도 돈이 없어 딸을 파는 행태가 만연하여 '딸지옥'이라는 조어가 생겼을 정도라고 하니...

지식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루쉰이 중국인보다 중국을 더 잘 안다고 칭송했던 다치바나 시라키는 분권적 자치가 실현되는 왕도국가의 희망을 만주국에 걸었다. "자본주의적 모순에 깊은 회의를 품었던 그에게는 반자본, 반정당의 자세를 뚜렷이 견지하며 신국가 수립을 지향하는 관동군이야말로 자본주의의 한계를 타파하고 근로자 민주주의를 가져올 추진력이라고(129)" 기대했단다.

장쉐량의 브레인 노릇을 했던 위청한이라는 이는 국민당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시작하여 관동군의 새 기획에 마음을 빼앗겼는데, 군대를 폐지하고 국방을 일본에 위임하자고 주장했다. 야마무로 신이치에 따르면 위청한의 이런 의견이야말로 "관동군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반가운(100)" 것이었다. 위청한은 말년에 이르기까지 만주사변의 주역이었던 관동군의 이시하라 간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한편 청 황제 푸이에게는 관동군이 청의 찬란한 유산을 잇도록 도와줄 우군이었다. 푸이를 위시한 복벽파는 만주를 중국으로부터 분리시켜 황조의 부활을 꿈꿨고 그 후원세력으로 일본을 지목했다. 관동군에게도 푸이는 활용가치가 있는 자산이었다. 만주는 청이 후금이던 시절부터 이 중국 마지막 황조의 '나와바리'였고 만주국이 그저 일본의 괴뢰단체가 아니라는 것을 세상에 홍보하기에 마지막 황제 푸이만한 인물이 없었다. 관동군 참모들과 협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은 푸이는 만주국의 황제가 되어 이후 화려하게 베이징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었을지 모르겠다.

먹고 살기 힘들어 만주를 찾았던 사람들, 자본주의의 모순을 견딜 수 없었던 일본 지식인, 만주지역의 지방자치를 간절히 바랐던 중국인 전략가, 황위에 오를 달콤한 꿈을 꿨던 전직 황제의 바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대로 모두 배신당했다. 만주국은 본국의 경제위기를 타개할 어떤 긍정적 계기를 제공하지 못했고 외려 불황에서 피어난 전쟁의 싹을 키우는 거름 따위가 됐다. 지방자치니 안거낙업의 이상이니 자본주의의 극복이니 하는 것도 관동군-본국에서 파견된 테크노크라트-만철/만주중공업 등의 특수회사 경영인의 삼각체제에 휩싸여 없었던 일이 되고 말았다.

1920, 30년대에 몰아닥쳤던 만주국을 향한 이 착각의 쓰나미를 헤매다가 문득 나와 우리는 얼마나 다른가 생각해보게 된다. 잘 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또는 잘 안다고 착각하는 대상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대안은 처음 만나는 인상 좋은 누군가로부터, 또는 바다 건너 존재하는 어떤 이상국가로부터 값없이 주어지는 게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우리가 갑자기 등장한 어떤 이를 지도자로 뽑고 나면 삶이 대단히 나아질 거라고 믿는다. 미국이 구세주이고 선한 친구이며 영원한 우방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중국이야말로 제국과 혁명의 역사를 동시에 가진 위대한 나라이자 자본주의 체제의 대안을 갖고 있는 희망의 곳간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어떻게 만주국에 기대를 걸 수가 있었을까 한심해하다가도 뜨끔한 기분이 드는 것이 나 뿐만은 아닐 것 같다. 야마무로 신이치는 "만주국 초상을 본다는 것은 바로 일본국가의 상을 보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했는데 그것이 꼭 일본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지 모르겠다.

만주국에 대한 덤덤한 밑그림

만주국은 장춘의 봄처럼 짧게 왔다 갔다. 이 도시의 이름을 '긴 봄'으로 짓던 사람들이 결코 장춘에 수개월의 포근한 봄이 올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처럼 왕도낙토를 세우겠다는 만주국의 건국이념은 애초부터 무망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야마무로 신이치의 지적대로 "관동군의 무력에 의해 만들어진 나라가 패권이 아니라 왕도를 건국이념으로 삼은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였다(146)."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의 특징은 만주국의 탄생에서 소멸까지의 과정, 만주국의 건국이념이 불과 13년 만에 바스러지는 전경을 시종일관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는 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신비감을 강조하지 않으니 저 베일 너머에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만주국에 관한 기름기 빠진 밑그림을 그려낼 수는 있을 것 같다. 기시 노부스케, 시이나 에쓰사부로, 박정희, 김일성, 백선엽, 이범석, 장준하, 김해연(김연수 소설 <밤은 노래한다>의 주인공)이 젊은 시절을 보낸 땅, 그곳에 세워져 불과 13년간 존재했지만 그보다 훨씬 오랜기간 동아시아 현대정치사에 그림자를 드리운 만주국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소명출판(2009)


태그:#독서공방, #지상현, #정대훈,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