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살인의뢰>에서 형사 태수 역의 배우 김상경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살인의뢰>에서 형사 태수 역의 배우 김상경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에서만 세 번째 형사 역이다. 역할도 배우 따라 나이를 먹나 보다. <살인의 추억> 때 미궁에 빠진 사건을 열심히 쫓고, <몽타주> 때도 성실하게 사건을 추적했던 그가 <살인의뢰>에서는 제법 뻔뻔한 자세를 가진 선임으로 등장한다. 다시는 안 한다고 했던 형사 역할을 맡은 이유를 보니 역시 시나리오 때문이었단다. "단순히 사건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형사 역시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그 전후를 표현하는 게 흥미로웠다"는 이유였다.

지난 12일 개봉한 <살인의뢰>는 노골적인 복수를 보여준다. 반전을 위한 장치를 고민하지 않고 오히려 범인을 잡은 뒤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부녀자연쇄살인범 강천(박성웅 분)을 두고 아내를 잃은 승현(김성균 분)과 여동생을 잃은 태수(김상경 분)가 갈등 관계를 유지하는 게 핵심이다. 영화는 사실상 사형 폐지 국가인 한국에서 사적 복수를 용인할 수 있는지에 대해 관객에게 묻는다.

빈껍데기만 남은 주인공의 모습 "디테일이 중요했다"

 영화<살인의뢰>에서 형사 태수 역의 배우 김상경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편집과정에서 여러 부분에 변화를 주어 지금의 <살인의뢰>가 나왔다. 애초 시나리오와 사뭇 다른 지점도 있었다. 김상경 역시 "기존 스릴러의 틀을 많이 깬 것 같다"면서 "감추려 했던 걸 다 드러냈는데 그게 옳았는지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조만간 다시 극장을 찾아 혼자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애초에 승현 역을 맡은 김성균은 반전 요소를 지닌 캐릭터였으나 내부 시사 결과 관객들이 예상 가능하다는 이유로 수정됐다. 동생을 잃기 전과 그 후의 태수 역시 더욱 극적으로 대비돼야 했다. 

"여동생을 잃은 태수는 죽은 사람과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화할 때마다 디테일하게 인물 설정을 써놓습니다. '부모 없이 여동생과 자랐고, 어렸을 때 놀이터에서 동생이 괴롭힘당할 때 태수가 나서서 어떤 행동을 했다' 등을 적어놓고 그만큼 동생에 대한 애틋함을 갖고 연기하는 거죠. 사실 배우들이 몰입하면서 감정의 수위를 예상하며 연기하잖아요. 근데 실제는 또 다릅니다. 촬영 때 감독님이 커트했는데도 눈물이 안 멈췄어요.

만약 이 영화를 안 했다면 사형제에 대해 굉장히 고민했을 겁니다. 현재는 피해자 쪽의 입장에 쏠릴 수밖에요. 한국이 실질적인 사형폐지국이지만 피해자 가족과 합의된 건 아니잖아요. <살인의뢰>에 대해 종교계나 인권계에서 여러 얘기가 나올 수 있는데 공론화해서 토론하게 된다면 이 영화는 성공이라고 봐요."

그런 의미에서 김상경은 <살인의뢰>를 두고 "범죄 스릴러라는 말은 못 붙일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세련된 편집이 아니라 덜컥거리는 편집인데 스릴러의 교과서 같은 설정을 걷어낸 만큼 나 역시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요즘 젊은 관객들이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는 마음을 드러냈다.

17년 차 배우 김상경이 택하는 작품들...어떤 기준으로?

 영화<살인의뢰>에서 형사 태수 역의 배우 김상경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1999년 MBC 드라마 <왕초>의 김빠 역을 맡으며 주목받기 시작한 후 김상경은 꾸준했다. 보통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기 쉽지 않은데 김상경은 두 영역을 넘나들며 대중의 사랑을 받아왔다. 홍상수 감독의 <생활의 발견> <하하하> 등에선 일상 연기를 보이면서도 최근 종영한 KBS 2TV <가족끼리 왜 이래>에선 철없어 보이는 그룹의 2인자 역을 재치 있게 소화했다.

"특정 직업이 출연 기준은 아니에요. 자연인 김상경으로 살다가 일반인 입장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걸 생각합니다. 홍상수 감독님 영화도 하고, 상업영화도 하고 운 좋게 넘나들고 있는데 전 사람들이 이질감을 안 느꼈으면 좋겠어요. 보통 배우가 현실과 많이 떨어져 살잖아요. 전 어떡하면 배우로서 일반인의 삶을 살아갈까 생각해요. 그분들을 대변하고 싶습니다. 액션 연기를 하더라도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게 아니라 그냥 옆집 아저씨처럼 보이는 거죠. 근데 알고 보니 공수부대 출신이고, 싸움을 진짜 잘해.(웃음)

일상 연기가 제일 어렵지만 제일 재밌어요. 색깔이 없는 연기랄까. 지금도 제가 어느 작품에 나왔는지 헷갈리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 반응이 또 재밌더라고요. 다들 영화는 봤는데 절 기억 못 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조연도 아닌 주인공이었는데!(웃음)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딱 하나의 이미지로 정해진 배우들이 있는데 그게 제 연기관은 아닙니다. 제가 스타성으로 가는 사람은 아니잖아요. 나를 돋보이게 하지 않는 배우로 남고 싶어요. 어떤 배우들은 시나리오 안에서 돋보이려고 서로 싸워요. 힘을 실어줄 땐 싣고 빼줄 땐 빼야 하는데 무조건 안 지려는 배우가 있죠. 가장 안 좋은 유형이라고 생각해요."

평범함의 연기를 추구하지만 역할을 허투루 흘리는 건 절대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 김상경은 디테일을 강조한다. 형사 역을 예로 들었다. 김상경은 "<살인의 추억> 때 자료조사를 굉장히 많이 했고, 실제 형사 기록과 시신 사진까지 다 봤는데 그때 희생당한 학생 얼굴이 지금도 기억난다"면서 "피해자 가족도 여러 번 뵀는데 사실 그게 그분들 입장에선 괴로운 일이다. 그때부터 피해자분들 입장을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화 예술가 아닌 개인 사업자? "관객이 있어야 존재하는 게 배우"

 영화<살인의뢰>에서 형사 태수 역의 배우 김상경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이 지점에서 김상경은 배우에 대해 생각하고 돌아봤던 지난날을 언급했다. "데뷔 때 배우는 개인사업자 등록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는 김상경은 "문화예술자 뭐 이렇게 돼야 할 텐데 서비스업으로 등록하라더라"고 전했다.

"배우를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을 하다보면 타인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배우들이 있는데 관객이 없으면 배우는 존재할 수 없잖아요. 연극의 3요소가 희곡, 배우, 관객이기도 하고요. 전 국민을 상대로 '어서 오십시오!' 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저도 배우로 늙어가겠지만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을 위로하고 웃기면서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죠. 세종대왕이 백성을 하늘처럼 생각하라고 했잖아요. 하물며 왕도 그렇게 마음먹고 살았는데!(웃음)"

연기와 영화에 대한 그의 지식에 주변에선 연출을 종종 권하기도 한단다. 김상경은 단호했다. "배우라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수준 정도"라는 김상경은 "홍상수 감독님 작업실을 가봤는데 깜깜한 곳에서 계속 모니터를 보고 있더라. 재능도 없고 내 성격에 안 맞다!"라고 응수했다.

다만 그에겐 소박한 꿈 하나가 있었다. 말하기 조심스럽다는 단서를 달면서 김상경은 운을 뗐다. 

"나이가 들고 더 이상 주인공을 안 시켜주면 제시간이 더 날 거 아닙니까. 100세 시대라는데 또 다른 일을 찾아야죠. 작품은 작품대로 열심히 소화하되 동사무소든 마을회관이든 좋으니 어려운 환경의 친구들을 대상으로 연기 수업을 해보고 싶어요. 좋은 뜻을 함께하는 동료들이 있다면 같이 하고 싶습니다.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훨씬 낫잖아요. 나이가 있는 분이라도 꿈을 찾아가는 방법에 있어서 제가 도움을 조금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내 시간도 잘 쓰면서 되도록 조용하게 봉사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니 점심시간이었다. 인사를 건네던 김상경이 먹으려던 메뉴는 짬뽕이었다. 관계자들이 "더 좋은 거 드셔도 되는데"라고 겸연쩍어하자 "전 이게 좋아요"라며 웃어 보였다. 그의 스스럼없음이 바로 롱런의 비결이 아닐까.

 영화<살인의뢰>에서 형사 태수 역의 배우 김상경이 10일 오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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