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기녀 가희 역의 배우 강한나가 5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기녀 가희 역의 배우 강한나가 5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역시 사람은 이름을 따라 가는가. '한나'라는 여성스러운 이름에 '강'이란 성이 붙으니 강한나다. 영화 <순수의 시대>로 첫 주연을 맡아 수위 높은 노출도 감내했다. 우려의 소리가 있었지만 "노출을 위한 노출은 없다고 믿고 있다"며 강한나는 작품에 대한 강한 신뢰를 보이고 있었다.

<순수의 시대>를 통해 강한나가 집중한 감정은 한의 정서였다. 그녀가 맡은 역은 조선 건국 초기 혼란했던 시국에 부모를 잃고 어린 나이에 기녀로 팔려간 가희. 만 스물여섯의 강한나는 "분명 20대인 내가 가희의 아픔과 감정을 그대로 이해하기엔 힘들었다"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표현하려 했다"고 운을 뗐다.

"가희는 팜므파탈 아닌 여리고 여린 인물"

사실 <순수의 시대> 가희를 두고 여러 배우가 하마평에 올랐다. 대중에게 많이 노출되지 않은 신선한 배우여야 했고, 동시에 연기력 또한 안정돼야 한다는 게 제작사 측의 주 조건이었다. 마침 오디션 기회를 얻은 강한나는 "시나리오를 읽으며 솔직히 날 비롯해 20대 중반 연기자 중에 가희가 지닌 감정 깊이를 다양하게 풀어낼 배우가 누가 있을까 생각했다"며 "그럼에도 동시에 욕심이 났다. 만약 표현해낼 수 있다면 큰 도전일 거 같다"고 당찬 생각을 드러냈다.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기녀 가희 역의 배우 강한나가 5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디션에서는 가희의 세 가지 모습을 준비해갔어요. 심리적으로 달라지는 가희 모습을 표현하려 했죠. 그땐 즐겁게 임했는데 막상 역할을 맡고 나서부터는 막중한 책임감 속에서 살았습니다. 제가 신인이고 첫 주연이라 눌린 게 아니라 이 어마어마한 여자의 삶을 허투루 보일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어요. 영화가 개봉한 뒤 '신인치고 잘 했네, 애썼네' 이 정도의 말을 듣고 싶진 않았어요. 신인이라는 말로 자기 합리화하긴 싫었습니다.

한의 정서, 슬픈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수집했어요. 관련 책도 읽고, 큰 실례를 무릅쓰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아픔을 겪은 분을 만나기도 했어요. 가희의 마음처럼 느껴지는 음악들, 특히 '월광 소나타'를 비롯해 클래식을 찾아 들었죠. 음악 때문에 울면서 대본을 읽기도 했어요. 또 연기할 때 이미지를 많이 찾아보곤 하는데 에곤쉴레의 '포옹'이라는 작품이 딱 떠올랐어요. 그의 그림을 보면 열정적이지만 또 다른 감정이 담겨 있는 느낌이거든요. 가희와 민재(신하균 분)의 마지막 정사신에 특히 애달픈 포옹의 감정을 담고 싶었어요."

여기에 더해 강한나는 촬영하면서 꼬박꼬박 작업 일지를 적어갔다. 그날의 촬영에서 느낀 점, 인물 분석을 쌓아갔다. 강한나는 "결과적으로 나쁜 여자로 보이는데 난 가희의 행동 하나하나가 불쌍하고 안쓰러웠다"며 "관객들에게 못된 여자로 보이고 싶지 않았고, 그런 의미에서 팜프파탈은 더욱 아니었다"고 해석을 내놓았다.

"연기에 대한 조급함 없지만 평소에 생각은 많아요"

 영화 <순수의 시대>에서 기녀 가희 역의 배우 강한나가 5일 오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중앙대학교 대학원에서 연극학을 공부하고 있다지만 본래 어릴 때부터 꿈이 배우는 아니었다. 발레를 오래 해왔고 그 길로 나갈 것만 같았지만 그만 두게 된 이후 방황하던 그녀에게 오히려 어머니가 연기를 권했다. 등 떠밀려 고등학교 1학년 때 연기학원을 다녔고, 그곳에서 첫 대본을 받고 10분 간 대사를 읽었을 때 본능적으로 느꼈다. "온 몸에 전율이 왔어요. 첫눈에 반한 거죠"

"연기하면서 사람을 관찰하고 심리도 분석하잖아요.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닌 마음으로도 담아야 했고요. 감사하게도 대학교에 합격해 연극을 시작했는데 한 사람의 삶을 진하게 살아보는 것과 공동체 작업이라는 게 제겐 큰 설렘이었어요. 대학교 1학년 때 출연한 <마지막 귀갓길>이란 작품 덕에 지금의 회사에 들어가게 됐고요. 사실 배우의 삶을 살아도 될지 두려움이 있었기에 그냥 공부하러 대학원까지 갔는데 이젠 즐기면서 하고 있네요(웃음).

대학에 다닐 때부터 동기들은 서로 이미 늙었다며 나이를 한탄했는데 이상하게 전 조급하진 않았어요. 삶을 표현하는 게 배우인데, 그렇다면 나이를 먹을수록 더 좋은 연기를 보일 수 있잖아요. 따지고 보면 저도 출발이 늦었는데 평생 배우를 할 거니까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같은 의미로 강한나는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에서의 노출 드레스나 첫 주연작에서의 노출로 자기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에 두려움이 없었다. "주위에선 '파격이다' '강렬하다' 말이 있었지만 나 자신이 노출을 평소에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저 그땐 디자이너 선생님의 철학을 믿고 입었던 것"이라며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는 단계라 그런 모습이 안 좋게 보일 수 있겠지만 언젠가는 진심을 이해해줄 거라 믿는다"고 속내를 밝혔다.

"<순수의 시대> 출연도 편견을 가지실 수도 있어요. 다만 제 입장에서는 인물의 감정선이 살아 있는 만큼 그 부분도 봐 주실 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제가 더 다양한 모습을 보일 거기에 지금 이미지에 갇히고 싶진 않아요."

"신인인 만큼 애정 어린 조언과 지적을 언제든 듣고 싶다"며 강한나는 웃어 보였다. "도움이 되는 얘기는 듣지만 동시에 가치관과 중심은 흔들리지 않으려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여러 모로 이름을 빛내고 있는 강한나였다.

강한나 순수의 시대 강하늘 신하균 장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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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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