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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포기하지 않았는데요?"

지난 1월 26일 MBC 다큐스페셜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를 보고 난 뒤 장혜정 씨(25, 여)의 말이다. 방송에서는 자기계발을 위해 인간관계까지 유보한 여대생, 대출을 갚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며 자조하는 연인 등 암울한 20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1년 경향신문 기획시리즈 <복지국가를 말한다> 특별취재팀이 '삼포세대'라는 용어를 만든 이래 삼포세대는 불안이 심화되는 현실 때문에 고통 받는 20대와 동일시되어 왔다. 연애-결혼-출산에서 나아가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한 '오포세대'가 나타났다. '오포세대'는 경제적 상황이 악화되면서 포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청년세대의 비관적 인식을 반영한 단어이다. 누리꾼들이 4포(인간관계 포기), 5포(내 집 마련 포기) 등 암울한 현실을 자조하기 시작하며 등장했다.

2014년 하반기부터 각종 학술회와 세미나에서 오포세대를 의제로 다루면서 언론도 앞 다투어 20대가 삼포세대를 넘어 오포세대로 전락했다고 보도했다. ''삼포세대'에서 '오포세대'로, 지금은 모든 것을 포기한 '올포세대'가 되어버렸는데 무슨 수로 재미를 느끼겠는가.(국제신문)', '제대로 된 삶을 포기한 '삶포세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KBS) 등 언론에서 조명한 20대는 청춘이기 때문에 감내해야 하는 아픔을 참고 참다 곪아버린 것만 같다.

20대는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과연 20대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절망적인 세대일까? 주위의 20대 84명에게 물어본 결과, 53%에 해당하는 45명이 20대가 '오포세대'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언론이 삼포세대, 오포세대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20대의 특성을 규정짓는 행태에 대해서도 '불편함을 느낀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의 45%인 38명으로 나타났다. '동의한다'는 의견은 15명, '아무렇지 않다'는 의견은 18명이었다.

대부분의 20대들은 '포기'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느낌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대학생 박소정씨(25, 여)는 "'포기'라는 단어가 꼭 기성세대가 20대가 나약하고 의지가 없어서 포기했다는 측면을 강조하는 것 같아서 불편하다. 꼭 20대만의 잘못으로 표현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포기'라는 단어의 다양한 뜻에 무게를 둔 해석도 있었다. 취업준비생 황소연씨(26, 여)는 "'포기'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환경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포기하게 되는 것과 그럴 여건이 되는데 개인 성향 때문에 선택하지 않은 것까지 포기라는 단어로 뭉뚱그리는 것 같아 불편하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잘못된 인식을 형성할 수 있는 언론의 용어 남발 자제해야

20대가 오포세대라는 것에 동의한 응답자들 중에서도 언론이 20대를 오포세대로 규정하는 담론에 대해서 불편함을 느낀다는 의견이 있었다. 취업준비생 구보라씨(26, 여)는 "연애, 결혼, 출산, 내 집 마련을 취업하고 나서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는데 언론에서 용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언론이 사용하는 단어 하나하나가 파급력을 가진다는 점에서 언론의 잘못된 용어 사용은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은' 20대까지 절망적인 현실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왜곡할 수 있다. 실제로 응답자 중에서 오포세대라는 용어의 탄생 배경에 대해 사회전반적인 분위기에 휩쓸린 면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오포세대에서 특히 논란이 되는 '인간관계 포기'에 대해서도 여러 이견이 존재한다. 언론에서 비추는 인간관계는 약속을 잡지 않고 거의 혼자서 노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금전적 지출에 부담을 느끼더라도 친구들과 안부를 주고받으며 관계를 이어나가려는 노력을 하는 20대들이 있는 만큼 포기라고 단순화할 수는 없다.

이에 대해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박재흥 교수는 "현실의 단면을 포착해서 드러내는 것이 언론의 역할인 만큼 '오포세대'는 현 세대를 드러내는 용어로 볼 수 있다. 다만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단정적이고 과장된 용어 남발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라고 언론의 신중한 태도를 주문했다.


태그:#오포세대, #삼포세대, #MBC다큐스페셜, #연애만 8년째, 결혼할 수 있을까?, #20대 세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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