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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
▲ <역적전> 겉표지
ⓒ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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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아홉 살의 나이로 사망한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을 중심으로 정복전쟁을 벌인 것으로 유명하다.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정복왕으로 불리기도 한다.

광개토대왕은 북쪽으로만 영토를 넓힌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도 내려왔다. 백제와 가야의 연합군을 남쪽에서 물리치기도 했다.

고구려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신들의 국력을 과시한 것일 테지만, 패배한 백제와 가야의 백성들에게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은 악몽과도 같았을 것이다. 많은 남녀들이 고구려로 끌려갔고, 재산과 가족을 잃고 떠돌이가 된 사람들도 많았다.

곽재식은 자신의 장편 <역적전>에서 바로 이 패배자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말하지만, 그 뒷면에는 무수한 패자들의 이야기 역시 남아있는 법이다.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백성들은 그 후에 어떤 삶을 살아갔을까?

가야연맹의 관리에 잡혀온 두 남녀

<역적전>의 배경은 서기 400년경이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정복전쟁으로 남쪽의 나라들이 시달릴 무렵에, 가야연맹의 한 나라인 다라(多羅)국의 관리 '하한기'에게 한 젊은 남녀가 살인을 했다는 죄로 잡혀온다.

남자는 백제 출신의 사가노, 여자는 가락국 태생의 출랑랑이다. 이들은 가락국의 고위 관리를 살해했다는 이유로 잡혀왔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무슨 이유로, 어떤 무기를 사용해서 살인했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동시에 자신들은 도둑질, 강도질, 싸움질, 역적질까지 저질렀다고 고백하고 있다.

백제와 가락국은 모두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패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들도 패한 국가의 난민일 가능성이 많다. 전쟁에서 진 나라의 백성이라면 자신이 살기 위해서, 또한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온갖 궂은 일을 했을 것이다. 도둑질이건 강도질이건 흔히 말하는 생계형 범죄였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역적질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단순히 먹고 살기 위해서 역적질을 하지는 않았을테고 뭔가 특별한 사연이 있었을 것. 다라국의 관리는 결국 이 둘을 따로 가두고 심문을 시작한다. 패배자로서 이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고구려의 정복전쟁이 만들어낸 풍경

작가 곽재식은 책의 뒷부분에서 많은 분량의 주석을 통해 삼국시대의 역사적인 기록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역적전>에서 묘사하고 있는 인물이나 사건은 당시의 기록인 <일본서기>, <삼국사기>, <가락국기> 등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서기 400년 경에 광개토대왕은 백제와 가야 연합군을 격파했고, 서기 404년에도 백제와 싸워서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패한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곽재식 작가는 작품에서 당시의 풍경을 상세히 묘사하고 있다. 백제 사람들 중에서 재물이 좀 있는 사람들은, 고구려의 공격을 피해서 일본으로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백제와 가까운 나라인 가야로 향한다.

거기에서도 이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다. 가야의 거리는 백제에서 피난온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들은 모두 밥을 달라고 구걸하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신구와 밥 한그릇을 바꾼다. 광개토대왕이 위대한 왕으로 평가받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삶으로 내몰렸던 사람들도 있다. 영웅의 이야기보다 때로는 패자의 이야기가 더욱 흥미롭다.

덧붙이는 글 | <역적전> 곽재식 지음. 알에이치코리아 펴냄.



역적전

곽재식 지음, 알에이치코리아(RHK)(2014)


태그:#역적전, #곽재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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