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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이를 데려오기 위해, 지난해 11월 20일에 서울대공원 반려동물 입양센터를 다시 방문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점점 다가오는데, 그날따라 햇살이 참 포근했다.

새로운 가족을 맞는다는 긴장감에 온몸이 경직됐지만, 그래도 따뜻한 날씨 덕분에 긴장감이 풀리는 것 같았다. 입양센터에 들어서자 강아지들은 여전히 우리를 반겼다. 오늘따라 강아지들 티셔츠에 새겨진 '가족 구함'이라는 문구가 눈에 밟힌다. 그들도 조만간 좋은 가족을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하며.

입양 당시 하양이 몸무게 1.95kg

강아지가 입은 티셔츠에 '가족 구함'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강아지가 입은 티셔츠에 '가족 구함'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 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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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이 몸무게 1.95kg에요."

입양센터 선생님께서 하양의 기록 파일을 건네주며 말했다. 강아지의 몸무게가 어떻게 1.95kg밖에 되지 않을 수 있을까? 하양이 체구만 한 몰티즈를 기른 적이 있었다. 그 강아지는 3kg였는데... 1.95 kg이라니, 강아지가 저렇게 가벼울 수 있구나! 짧은 순간 동안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밥을 잘 안 먹어요. 입이 짧아요."

본래 입이 짧은 것일까? 마음이 아파 음식을 거부한 걸까. 아니면 사료가 입에 맞지 않아서? 센터에 오기 전까지 하양이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오직 그 비밀은 하양이 마음속에 있다. 듣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 데 들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하양이에게 내장칩을 삽입했다고 말해주었다. 다시는 가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센터의 배려이자, 최선의 조치였다. 이제 진짜 입양을 위한 모든 절차가 끝났다. 그리고 하양이는 입고 있었던 초록색 유니폼을 벗었다. 이젠 하양이는 더는 가족을 구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하양이는 매우 운이 좋은 편이다. 매년 대한민국에 쏟아져 나오는 유기견의 수는 약 10만 마리. 일반적으로 유기견은 구조된 후 10일의 공고 기간을 거친 후,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를 집행한다. 하양이는 작년 9월 말,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보호소에서 구조된 후 서울대공원에 있는 반려동물 입양센터로 보내졌다. 그래서 다시 가족을 구할 수 있었다.

"입이 짧다"는 하양이는 우리 집에 온 지 6시간이 지나자, 자기 밥통에 있는 밥에 관심을 보였다. 그런데 밥 한 알을 물고만 있었다. 밥을 먹지 않은 채, 우리 가족들이 어디에 있나 찾아다녔다. 동생과 내가 밥그릇 근처에 앉아 있으니 하양이는 그제야 밥을 순식간에 '뚝딱' 비웠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채워둔 밥그릇...

강아지는 자기 밥그릇에 밥이 비워져 있으면 불안해한다는 말을 들었다. "불안해하지 말라"고 밥통에 사료를 조금 부어두었다. 그 밥을, 어느새 다 먹어 치웠다. 밥그릇에 밥을 채워주면 또 어느새 텅텅 비어 있었다.

"너무 많이 먹는 거 아니냐?"
"강아지들은 밥 양을 스스로 조절할 줄 안대. 괜히 밥그릇 뺏으면 밥만 보면 급하게 먹어 치울 것 같으니까 그냥 두자."

다행히 배탈이 나지는 않았다. 낯선 공간이라 밥이 잘 안 넘어갈 법도 한데, 밥을 참 잘 먹었다. 그동안 먹지 못했던 밥들을 하루 만에 다 먹어 치우는 듯했다. 처음에는 너무 많이 먹어서 걱정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자 적정 식사량을 찾아갔다.

집에 온 지 두 달이 넘은 지금은? 내가 먹는 모든 음식에 관심을 가질 정도다. 이틀 전, 오후였다. 간식으로 엄마와 빵을 먹고 있었다. 어김없이 하양이는 음식을 먹고 있는 내 옆으로 바짝 붙어서 소리를 낸다.

"낑…. 낑…."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나, 좀 주면 안돼?"하며 울기 시작했다. 저렇게 옆에서 자꾸 집적거리면 정이 없는 나도 무정하게 모른 체하며 빵을 먹기가 어렵다. 결국, 미안해서 하양이에게 빵을 조금씩 떼어주었다. "한 번만 주고 안 줘야지"하고 결심했지만, 하양이가 빵을 조금 더 달라고 내 손등을 긁으며 운다.

"에이, 모르겠다. 같이 나누어 먹자"

결국, 빵을 같이 나누어 먹었다. 빵을 다 먹은 후, 두 손을 펼쳐 "이제 다 먹었어"라며 더 달라지 말라고 했다. 내 손을 확인한 하양이가 갑자기 소파 밑을 향해서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소파 밑 틈을 자꾸 보고 있기에 손을 넣어보았더니, 소파 밑에서 작고 말랑말랑한 것들이 손에 집혔다. 바로 전에 우리가 먹었던 빵 조각들이다. 하양이는 빵을 먹는 척만 하고 최대한 많이 얻어먹으려고 빵들을 소파 밑에 숨겨두었다.

집에 온 지 두 달 만에 정상 체중 도달

과자을 얻어 먹고 있는 모습.
 과자을 얻어 먹고 있는 모습.
ⓒ 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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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 참 입 짧다."

하양이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이제는 몸이 제법 단단해졌다. 그리고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1월 말, 동물병원에서 몸무게를 쟀더니 하양이의 몸무게는 2.45 kg. 엄마와 나는 두 달 사이에 0.5kg이 증가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수의사께서 "하양이가 그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나 봐요"라며 웃어주었다.

드디어 정상 체중에 도달했다. 이제는 비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하양이 변화를 보면서, 자난해 12월 28일 SBS <동물농장>에서 본 유기묘 준팔이가 생각났다. 주인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에 수 개월간 음식을 거부해 온 고양이. 가수 배다해가 준팔이를 입양했고, 진심 어린 보살핌과 사랑 덕분에 준팔이의 거식증을 고쳤다.

하양이도 버림받았다는 스트레스로 음식을 잘 못 먹었던 걸까. 다시 밥을 잘 먹고 있으니까,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했다는 신호였으면 좋겠다. 하양이의 입양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준 선배 말이 자꾸 생각난다.

"하양인, 어릴 때 고생했지만 이제 쭉 좋은 일 가득할 거야."

그랬으면 좋겠다. 이제는 힘들었던 과거는 잊고, 우리 가족과 행복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다.

하양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다.
 하양이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 중이다.
ⓒ 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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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서울대공원 반려동물입양센터, #하양이, #유기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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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과거가 궁금한 빙하학자 (Paleoclimatologist/Glaci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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