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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대문호 톨스토이는 동명의 소설에서 그 답을 '사랑'이라 했다. 그러나 여기 강동완(46)씨는 '놀이'라고 말한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 터전을 두고 있는 '세상놀이연구소' 소장 강씨는 사람은 '놀이'를 하며 자라고, 소통을 하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믿는다. 그가 만든 연구소는 1인 기업이다. 2년 전 그는 "마흔네 살이 되기까지 살아온 모든 시간들이 '놀이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는 결론을 얻는다.

강동완 소장이 아이들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너는 최고야’를 외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강동완 소장이 아이들과 함께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우며 ‘너는 최고야’를 외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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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때 아버지를, 고2때 어머니를 여읜 청소년가장 강씨는 공부만 하던 모범생에서 방황하는 청춘으로 신산한 시간을 보낸다. 그 시간은 사람을 이해하는 자양분이 됐고, 대학 시절의 방송반 활동까지 더해 그는 내향적 성격 깊숙이에 있던 자신의 외향성을 발견한다.

1996년 대산건설 마지막 공채기수, 논산 출신인 그를 예산으로 보낸 인연이다. 입사 2년 뒤, 전국 건설업계의 일대 사건이었던 대산건설 1차 부도, 회사는 직원들의 열정에 힘입어 여러 해를 더 버텼다. 그러나 2차 최종 부도로 회사가 문을 닫을 때까지 강씨는 기업의 회생을 위해 젊음을 바친 대산인 중 한 사람으로 남는다. 동종업체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그는 입찰 업무를 담당하는, 잘 나가는 샐러리맨이었다.

어느날, 업무상 술자리를 끝내고 귀가해 본 TV다큐멘터리 한 편이 그의 삶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 치매로 고생하는 할머니를 모시고,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고, 결혼해서 두 아이의 아빠(지금은 세 아이)가 되기까지 숨차게 달려오느라 묻어뒀던 질문들이 요동쳤다.

꿈 노트를 내민 아내

"마흔 살 되던 해였어요. 어느날 제 모습을 보니 매일 술자리에, 가족들 잠든 모습만 보며 살고 있더라구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아내가 꿈 노트를 주면서 '무얼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써 보라'고 하더군요. 적다보니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그런 제게 아내는 또 '가능하면 이타적인 일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권했죠. 그 뒤로 5년 동안 여러 번 직업을 바꾸면서 머뭇대지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은 온전히 아내 덕분입니다."

부인 최윤미(37)씨는 이후 남편이 사회복지사로, 노인요양원장으로, 유머동기부여강사로 일하는 동안 회사에 다닐 때보다 수입이 1/3로 뚝 떨어졌지만, 늘 든든한 지지자가 돼 줬다. 부부는 이 시기를 거치며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니 돈이 없어도 살만하구나'.

"오빠(강동완씨)는 하나에 꽂히면 끊임없이 파고들어 생각해요. 대강하는 법이 없죠. 그러니 정말 아무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어요?"

놀이강사가 되는 과정만 봐도 그가 '들이대기 정신'이라고 말하는 남다른 적극성이 놀랍다. 시작은 사회복지사 일을 그만두고 인기강사로 발돋움할 무렵, 우연히 시작한 지역아동센터 재능기부였다.

"아이들을 초등학교 때만이라도 사교육에서 떼어놓고 싶어 4년 전 예산 아파트에서 신양의 농가주택으로 이사를 했어요. 거처만 옮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더군요. 디지털 기기는 시골 아이들의 놀이문화도 모두 뺏어버린 상태였어요. 저희 아이들이 다니는 신양지역 아동센터에서 제가 어릴 적 했던 놀이를 알려주면서 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40년 비석치기 놀이했는데 나만한 전문가가 있겠는가? 하면서. 하하."

그는 바로 '놀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모두 사서 읽고, 전래놀이연구에 빠졌다. 그리고 책의 저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만남을 청하니 진정성 있는 그의 청에 편해문, 이상호(전래놀이 101가지 저자)씨와 같은 놀이전문가들이 화답해줬다. '놀이강사'는 그 시간들이 모두 더해져 다가온 그의 현재다.

놀이 속에 스미는 교육

6일, 광시침례교회 교육관. 광시지역아동센터 아이들 20여명이 강씨를 만나는 날이다. 오늘 처음 나온 친구들을 소개하는 방식부터 남다르다. 모두가 함께 보내는 큰 동작과 함께 "넌 최고야"를 외치면, 당사자는 가장 높이 뛰어올랐다가 착지하면서 "앗싸"를 외친다. 이 시간, 여러 아이들에게 수시로 전하는 강동완식 선물이다.

강동완식 주문도 있다. 놀이를 하다가 울음이 터지는 것은 다반사. 정색을 하고 달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답이 아닌 상황, 그가 마법의 주문을 외자고 하면 모든 아이들이 목청껏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외친다. 울던 아이는 다시 놀이에 집중한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수십명 아이들과 소리 높여 웃고, 함성을 지르고, 몸으로 노느라 땀이 범벅인데도 재미있어서 힘든 줄 모르겠다고 한다.
 수십명 아이들과 소리 높여 웃고, 함성을 지르고, 몸으로 노느라 땀이 범벅인데도 재미있어서 힘든 줄 모르겠다고 한다.
ⓒ 장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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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프로그램 1시간 동안 현장은 쩌렁쩌렁한 외침과 높은 웃음소리, 온몸을 움직이고 부딪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아이들의 신명은 최고조에 오르고, 아는 새 모르는 새 강동완식 철학이 스며든다.

놀이에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줘서 몰입하게 한다든가, 게임 벌칙으로 '나는 반드시 ~을 할 것이다'라고 새해 결심을 외치면 친구들은 '반드시 된다'는 한목소리로 응원하게 한다거나, 내향적인 성격으로 쭈뼛거리면 강사가 나서 같이 망가져 준다거나 하는 식이다.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집단과 사회를 알아가고, 자신감과 연대의식을 갖고, 위로와 소통을 배운다.

굳이 의미를 전달하거나 교육적인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정신없이 노는 와중에 그런 가치들을 슬며시 끼워넣는 기술(?)이 과연 놀이전문가다. 1~2분 정도 마무리 발언은 한다. 오늘은 "세상에 재미없는 놀이는 없다. 놀이를 재미없게 하는 건 우리다. 놀이는 규칙을 지켜야 재미있는데 규칙을 안 지켰기 때문이다. 규칙은 왜 지켜야 하나? 우리가 함께 만든 약속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 행여 슬픈 일이 있을 때 마음의 상처가 있을 때 기억하자. 아무것도 아니야. 괜찮아"라는 이야기다.

미처 지루하다거나, 잔소리라고 느낄 겨를도 없이 아주 짧게 끝이 난다. 열기 가득한 얼굴로 돌아가는 아이들 등 뒤로 그와 아이들이 외친 방학 동안 지킬 3가지 약속이 떠오른다.

사라지는 놀이 복원할 터

최강유랑단 가족. 큰아들 대현, 아빠 강동완, 딸 민경, 작은아들 주안, 엄마 최윤미. 웃는 얼굴과 건강한 기운이 꼭 닮았다.
 최강유랑단 가족. 큰아들 대현, 아빠 강동완, 딸 민경, 작은아들 주안, 엄마 최윤미. 웃는 얼굴과 건강한 기운이 꼭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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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생긴 것과 다르게(?) 참 여린 사람이다. 3시간여 동안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여러 번 눈시울을 붉혔다. 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호흡한 시간, 부인과의 결혼스토리, 치매를 앓던 할머니 이야기…. 아홉 살이나 아래인 부인 최씨가 웃으며 놀린다. "오빠, 또 울지?" 가족은 그가 늦은 나이에 결코 늦지 않은 선택을 하게 해 준 가장 큰 힘이다.

강씨 가족은 매년 '최강유랑단'이라는 이름으로 예산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2013년에는 예당저수지 둘레길 24.1㎞ 도보여행을 마쳤다. 2014년에는 응봉면을 출발해 대중교통과 도보로만 예산군 12개 읍면을 모두 돌았다. 맹목적으로 도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미션도 준다. 예를 들면 '면장님 만나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곳 알아오기' 같은 거다. 11살 대현이와 9살 민경이는 임무를 완수했고, 최강유랑단의 예산군 일주 지도가 만들어졌다.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조건 재미입니다. 저는 그저 재미있게 놀아줄 뿐, 아이들이 스스로 규칙을 만들고, 의미도 스스로 찾습니다. 그걸 정리하면 좋은 놀이프로그램이 탄생되죠. 놀이의 가장 강력한 힘은 진 뒤에도 또 하면 된다는 겁니다. 많이 놀면서 큰 사람들을 보면 단단하게 살아가잖아요? 놀이강사로서 제 목표는 지도자가 아닌 지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제가 빠져도 아이들끼리 스스로 놀 수 있어야 진정한 놀이니까요."

놀이의 복원은 아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남녀노소 모든 계층에서 진짜 놀이가 사라졌다. 그는 지난해 예산군다문화센터에서 진행했던 놀이프로그램을 통해 귀한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 전래놀이를 소개하니 여러 나라 출신 여성들이 다들 어려서 해본 놀이라고 하는 거예요. 더 놀라운 건 그 뒤 유럽권 나라의 놀이책을 찾아봤더니 비슷한 놀이들이 그곳에도 있더군요. 우리가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면서 다른 문화를 이해하려 노력하는데, 그에 앞서 놀이를 통한 동질성을 확인하는 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말하자면 세상놀이 한바탕 같은 거죠."

'세상놀이연구소'라는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그는 끊임없는 변신과 진보를 꿈꾼다. 이론이 없는 실천은 생명이 짧기 때문에 공부의 필요성을 느낀다고 한다. 열정 덩어리의 그가 말한다.

"공부를 해야 철학이 생기고, 갈 길도 더 잘 보이겠지요. 제 꿈은 신양에 세상놀이터를 만드는 것입니다. 혼자 하는 일이 아니라 뜻과 결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 한 방향으로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 그 중심에 예산이라는 텃밭을 놓고 만들면 뭔가 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놀이, #세상놀이연구소, #강동완,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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