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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다룬 수필 같은 이야기다. 과감하고 솔직하다. 나 자신이라면 감추고 싶은 일이었을 것을 다 쏟아냈다. 타인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의 작은 상처라도 보여주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일반 사람이라면 감추고 싶을 법한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동화처럼 써내려간다.

산속 집에서의 외롭고 무서웠던 어린 시절. 자신과 함께한 부모님, 이웃들... 똥만이(동만이)를 스쳐 지나간 외롭고 소외된 어른들의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들려준다. 누구나 지나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그 곁에 함께한 부모님에 대한 기억을 잔잔하게 담고서.

 <똥만이> 책표지
<똥만이> 책표지 ⓒ 웃는돌고래
저자와 비슷하게 나의 어린 시절 집도 동네 외지 산가에 있었다. 어린 나는 혼자 부모님과 형제들을 기다리며 지냈다. 그래서인지 산속의 오작교에서 엄마와 아빠를 기다렸을 지은이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도 '검둥이'라는 강아지를 키우며 의지했고, 집 근처엔 '싸롱'을 나가는 누나들의 숙소가 있었기에 더욱 이 책에 몰입이 됐는지도 모른다. 산속에서 여동생 삼은 강아지 '동미'와 함께 똘망똘망한 두 눈으로 누군가를 기다렸을 똥만이. 동만이는 어린 시절의 나를 데자뷔하게 해줬다.

몇 시간 만에 마지막 장을 덮었다. 현실로 돌아온 나는 무언가 다른 감성을 느꼈다. 잔잔하게 내재되어있던 감사함과 그리움. 어린 시절의 나약하고 안쓰럽던 나의 모습까지 아름답게 포장해서 돌아왔다. 그렇게 이 책은 나를 과거로 돌아가게 해준 '성인 동화'였다. 눈으로 글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망각했던 고마운 기억들을 오롯이 떠오르게 만드는 치유 동화.

지은이는 오랜 시간 글을 쓰는 기자 생활을 했음에도 자신의 필력을 자랑하지 않는다. 그저 담담히 써내려간다. 저자의 치밀한 의도였는지 그런 부분이 오히려 스토리에 더욱 집중하게 해준다. 얼마 전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종영했던 드라마 <유나의 거리>. 그 드라마처럼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를 다루듯 이 책도 저자의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와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담담히 담아냈다.

주변의 상처 치유하는 이야기

마음이 아팠다. 아니 살짝 저린 듯 했다. 하지만 저린 가슴 뒤로 읽는 내내 지긋이 미소가 지어졌다. 저자는 감추고 싶을 만한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감추고 싶은 가정사부터 어린 시절 나약함으로 벌벌 떨던 순간들까지. 그런 진솔함 때문인지 어린 똥만을 보며 동만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어느새 그의 과감하고 솔직한 이야기 뒤로 나의 똥만이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무서운 게 많고, 신기하고, 궁금한 게 많았던 시절. 왠지 누군가에게 고맙고 미안했던 시간들.

어슴푸레 잘 기억나지 않지만 똥만이를 사랑해주고 예뻐 해준 등장인물들처럼 나를 아끼고 귀여워해 준 사람들. 삶에 치이며 소외되고 외로웠던 주변의 어른들. 이 책은 그런 고맙고도 안쓰러웠던 내 주변의 그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를 어린 시절로 돌려보내 그 갚을 수 없는 감사함을 기억하도록 해준 똥만이. 잊었던 고마움이 떠오르는 순간, 삶에 치여 소외되고 외롭던 그들이 걱정된다. 따뜻한 걱정과 부드러운 고마움이 교차한다. 이제는 내가 받은 사랑만큼 주변에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 속에 직선으로 꽂힌다.

똥만이에 등장하는 남영이 누나와 소영이 누나를 보면서 에디트 피아프를 다룬 '라비앙로즈(장밋빛 인생)'가 떠올랐다면 지나친 것일까? 프랑스의 전설적 샹송 가수인 에디트 피아프. 작은 체구의 에디트 피아프는 어머니에게 버림받고, 아버지조차 그녀에게 관심 두지 않았다. 그녀의 가장 외롭고 소외된 시절, 유곽의 한 매춘부가 그를 지극 정성으로 돌본다. 엄마 이상의 엄마 노릇을 하며 보살펴준다. 자신도 가장 약하고 외롭고 소외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똥만이도 비슷한 감성의 줄기를 지나간다. 그도 주변의 외롭고 소외된 어른들의 사랑을 받는다. 얼굴이 예뻐도 부끄러워 고향에 가지 못 하는 '현살롱'의 소영 누나, '다리병신' 놀림을 피해 고향을 떠난 남영 누나.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뻥튀기 아저씨 준구. 결국 새엄마라고 부르지 못한 고씨 아줌마까지.

"가슴 속에 슬픔이 있는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긴다"

어린 동만은 자신이 가장 약하고 외로우면서도, 늘 주변을 살핀다. 술과 도박에 찌든 아버지를 챙기고, 청계산 속 오작교에서 함께 희망이 돼주기도 한다. 외로움의 틈을 보았기 때문일까?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따뜻한 사랑이라는 감성이 전해진다.

탐욕스럽게 보이지 않는 눈물도 있다. 어려운 시절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던 부모님 세대에 대한 추억들도 함께 풀어놓았다. 똥만이, 그가 술 취한 아버지의 오토바이 뒤에서 벌벌 떨고 있을 때, 우리도 다른 똥만이의 모습으로 존재하던 시절이 있지 않았던가 상기해본다.

가장 외롭고 나약한 존재면서도 오히려 외로워하는 아버지를 챙기고, 주변 사람을 걱정하던 똥만이의 모습. 그 모습의 얼굴은 우리들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다. 오작교에서 아버지를 기다린던 동만이처럼.

"가슴 속에 슬픔이 있는 사람이라야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길 줄 알거든. 상처받지 않게 아껴 주기도 하고, 내가 아프고 슬프니까, 저 사람도 그렇겠구나 하면서 말이야."

남영이 누나는 동만에게 말한다. 이 소외되고, 약하디 약한 외로운 사람들은 이렇게 자신이 아닌 남을 바라본다. 그렇게 타인의 슬픔을 공감하는 것이 내재되어있던 시절. 그 시절에는 차갑고 살벌한 현실에도 현재의 각박함이 없었다. 먹을 게 없어도, 입을 게 없어도.

먹고 입을 것이 넘쳐나도 정반대가 돼버린 현재. 자신의 상처와 슬픔은 오히려 은폐해야 하는 약점이 된 세상. 산 속에서 혼자 아버지를, 어머니를 기다리던 어린 동만보다 더 무서운 상황에 처해있는 현재의 우리들.

작가가 써내려갈 치유의 '장밋빛 인생'을 기대한다

"자기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앞으로 계속 외로운 사람 곁을 지켜 주면서 살라고."

아버지, 어머니 없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을 동만이. 그 무서운 밤. 뻥튀기 아저씨는 말해준다. 저자는 자신들의 삶에 이리저리 치이던 어른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동화처럼 기억하고 기록했다. 더불어 가끔 그들 생각에 눈이 붉어진다는 지은이.

우리 삶에 외롭고 소외된 순간은 늘 존재한다. 동만이의 어린 시절처럼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끼리 함께 하고 공존한다면 그 시간은 사랑으로 변할 수 있을까? 지난 시간 뒤에 왜곡되지 않은 추억을 지니게 되는 시간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삶에 치이고 소외된 사람들의 슬픈 '라비앙로즈(장밋빛 인생)'가 잠시 들리는 것 같다. 그들의 노래는 잠시 슬펐지만, 모순되게도 이 글은 유쾌하다. 이 책은 밝고 수다스럽던 동만이처럼 유쾌하게 삶을 치유하는 글을 보여준다. 상처는 아물고 시간은 흐른다. 자신의 상처로 주변의 소외되고 외로운 이들과 함께한 똥만이와 그의 주변인들을 바라보라.

삶의 치유와 구제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똥만이와 남영 누나, 소영 누나, 뻥튀기 아저씨 준구, 고씨 아줌마, 똥만이 아버지, 어머니. 그들의 발걸음 뒤에 이 책이 우리들의 삶의 치유를 알려주는 슬프지않은 작은 '라비앙로즈'가 되길 기대한다.

포근한 눈바람 뒤에 기온이 뚝 떨어졌다. 날씨만큼 주변의 살림살이 또한 팍팍함이 보인다. 바쁜 경쟁 사회에서 칼바람 맞으며 정신없이 사는 삶. 이게 바로 현재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도 없이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기조차 벅찬 상황. 따스한 공존을 말하던 단어들은 눈으로 보기조차 희미해진 시대.

이런 잔혹한 상황에서 살벌한 욕망만이 떠다니고 있는 현실. 이럴수록 자신만의 '똥만이 시절'을 기억하시길. 그 소외되고 외로웠던 사람들의 사랑과 고마움을 상기하시길 고대한다. 배려 받았던 사랑을 기억하며 감사한 겨울이 되길 희망한다. 지난 시절 서로 다른 똥만이의 모습을 했을 여러분께.

덧붙이는 글 | 미디어 리포트 에도 송고됩니다.



똥만이

박상규 지음, 장경혜 그림, 웃는돌고래(2014)


#똥만이#박상규#어린시절#성인 동화#치유 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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