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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노동위원회에서 뵈었던 ○○○입니다.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만나 뵌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년 4월 부천시 산하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시설관리 소장으로 일하기 시작해 2014년 8월 말로 해고된 조일우(가명, 51세)씨. 2년 4개월 동안 조씨는 6개 업체와 채용-계약해지를 반복하였다. 여섯 번째 업체였던 한국종합경비와 부천시의 6개월 계약이 8월 말 종료되면서, 새로운 업체인 에스캅시큐리티(이하 에스캅)는 그를 재고용하지 않았다. 에스캅시큐리티는 부천시와 3개월 용역계약을 맺은 상황.

2년 4개월 동안 거친 업체 6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경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전경
ⓒ 콩나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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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지방노동위원회에 조씨가 낸 부당해고구제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화해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 조씨는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했다. 직업군인이었던 조씨는 전역 후 줄곧 시설관리 직종에서 일해왔지만 해고된 것은 처음이다. 더군다나 이렇게 아무런 이유도 통보받지 못한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에스캅 사장에게 해고된 이유를 물었어요. 그랬더니 위에서 그러라고 했다는 거예요. 자기가 나를 언제 본적이 있어서 판단을 하겠냐고 하면서요."

이유는 단순했다. "해고가 아니다. 고용을 승계해야할 의무가 없기 때문에 재고용의 권한은 전적으로 업체가 갖고 있다"는 것이다. 에스캅은 전체 20명 직원 중 3명을 제외한 17명의 고용을 승계했다.

하지만 한국만화영상진흥원과 용역업체 계약의 조건이 되는 '표준규격서'를 보면 "계약 상대자는 현재 근무하고 있는 종사원에 대하여 가능한 고용승계를 하도록 한다(단, 용역업무 수행능력이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경우 예외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여섯 번 업체가 바뀌면서도 조씨가 2년 4개월 동안 고용이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규격서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용역업체와 일반적으로 길게는 6개월, 짧게는 2개월 단위로 용역계약을 맺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 "부천시가 예산을 1년 단위가 아닌 개월 단위로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콩나물신문 9월 30일자 <3개월 시한부 인생,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시설관리 근로자들>) 당연히 이곳에 고용된 시설관리 노동자들은 극심한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1년도 '파리 목숨'이라는데 아닌 하물며 2개월, 3개월이라니.

부천 지역신문인 <콩나물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계약담당자는 "2015년에는 예산확보에 노력해 1년 단위 계약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이는 전적으로 예산권한을 갖고 있는 부천시의 몫이다. "노력했지만 되지 않았다"면 그만인 것이다.

조씨 해고사건의 열쇠는 부천시가 갖고 있음에도 노동위원회와 신청인 조씨는 직접사용자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천시와 영상진흥원에게 출석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쉬운 부분이다.
부천시와 9월부터 11월 말일까지 3개월 계약을 체결한 에스캅 사용자는 "우리는 조씨를 채용한 그 어떤 의무도 책임도 갖고 있지 않다"고 앵무새처럼 만복할 뿐이었고 부천시와 용역업체간의 무책임한 태도로 인해 조씨와 같은 억울한 피해자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부천시가 예산을 개월 단위로 준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한국만화영상진흥원
ⓒ 콩나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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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피한 얘기지만 앞으로 부천시민으로만 고용을 한다고 해서 부천으로 이사를 올까 생각도 했지만, 제가 사는 곳이 임대아파트라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고1, 고3 아이를 키우고 있는데, 이 나이에 막막하다. 우리 같은 사람들이 어디가서 하소연을 해야하는 것이냐…"

조씨는 최후진술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다. 말끝이 그의 속울음에 묻혔다.

심판회의가 끝나고 대기실에서 만난 그에게 난 "위원들의 질문내용이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잘 될 것 같다. 잘 되지 않더라도 꼭 중노위에 가시라. 이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고 명함을 건넸다.

그는 "제가 돈이 없어서 노무사나 변호사를 쓰지 못했다. 노조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울먹였다. 하지만 경기지노위는 "양 당사자가 계약을 체결한 바가 없으므로 사건을 각하한다"는 판결을 하였다.

다음 날 "감사하다"는 메시지가 왔다고 난 "꼭 중노위를 가셔라"고 답신을 남겼지만 이미 해고로 상처받고, 노동위원회 판결에 좌절한 조씨가 어떤 선택을 할까 알 수는 없다. 부천시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의 기형적인 초단기간 계약으로 인해 또 한 사람의 가장이 거리에 버려졌다.


태그:#부천시,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시설관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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