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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전방 평화의 댐에 비목이 있다. 구멍 뚫인 철모의 주인공은 어디가고 녹슨 구멍뚫인 철모만 있나?
▲ 비목 최전방 평화의 댐에 비목이 있다. 구멍 뚫인 철모의 주인공은 어디가고 녹슨 구멍뚫인 철모만 있나?
ⓒ 이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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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2월 10일, 내가 육군 제2훈련소 26연대 1대대 6소대에서 전반기 교육을 마쳐갈 때 선임하사 육군 병장이 나를 불러 "너의 관물 함에 우비가 없어졌다. 사 놓도록 해라"고 고함을 질렀다.

훈병인 나는 고학생으로 있다가 오갈대가 없어서 군에 자원입대한 몸이어서 주머니에 돈 한 푼 없었다. 도움을 받을 사람도 없는 홀몸이었다. 주머니가 텅 빈 내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내무반에서 다른 훈병의 우비를 훔쳐다 놓을 수도 없지 않은가?

나뿐이 아니고 어떤 친구는 M1소총이 없어졌다고 선임하사가 훈병을 불러서 소총을 돈 주고 사라고 했다. 내 판단으로는 선임하사 육군병장이 어디에다 우비와 소총을 감추어 놓고 훈련병에게 돈을 받고 파는 강도짓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 나의 선택은 다른 군 상급부대에 가서 도움을 청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26연대 위병소에 가서 위병소 소장 육군 특무상사에게 말했다.

"훈련소 내무반 안에서 우비와 소총이 없어졌습니다. 선임하사가 돈 내고 우비와 소총을 사라고 합니다."
"몇 중대 몇 소대냐?"

위병소장이 눈을 크게 뜨고 버럭 화를 내며 물었다.

"이놈의 자식들이 또 도둑질해서 팔아먹는구나! 이 훈병 지금 돌아 가서 너의 소대 선임하사에게 위병소로 빨리 오라고 말해."

이렇게 하여 선임하사가 도둑질하고 팔아먹으려던 우비와 소총이 나에게로, 또 다른 훈병에게로 되돌아 왔다.

나는 훈련소 배치대에서 배치한 대로 포병학교로 가고, 광주 상무대에서 포병 사격지휘 과정을 수료하고 강원도 3보대로 가서 강원도 산골짜기 화천 사방거리 21사단 포병 183대대로 배속 되었다. 신병이여서 신고식 할 때부터 군기를 잡는다고 매를 맞고 매일 고된 사역을 했다.

정신훈화 시간마다 식사 정량을 외웠는데 식당에서 배식은 매우 적어서 어떤 때는 항고 속 뚜껑 반찬그릇에다 꽁보리밥을 살살 펴 담아 주었다. 신병들을 이것을 먹고 살 수 없어서 주보에서 파는 되비지를 사서 날로 씹어 먹었다.

나와 같이 배속된 신병 이희영이는 이 항고 속 뚜껑에 담긴 배식된 꽁보리밥을 가지고 육군본부에 가서 고발을 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돈이 없어서 주보에서 파는 비지조차 사먹지 못하고 들키면 매 맞아 죽을 각오로 식당 부식창고로 남몰래 들어가 날두부 상자 앞에 펄썩 주저앉아 날두부를 두 손에 들고 허겁지겁 숨도 쉬지 않고 먹었다. 돈 주고 사먹는 비지보다 생두부가 얼마나 더 맛있는가?

이때 본포대장 김 대위가 식당 부식창고에 들어와 내가 땅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날두부를 손으로 주워 먹는 모습을 보았다. 나도 김 대위님을 보았지만 일어나 거수경례를 할 염치가 없어 열심히 날두부만 먹고 있었다. 이때는 먹어야 산다는 생각 밖에는 내 머릿속을 장식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매를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먹어야 산다'고 속으로 되뇌면서 날두부를 먹기에 전렴하고 장교를 만나면 거수경례를 해야 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굶주린 육군 이등병은 군인이 아니고 굶주린 동물에 불과했다.

1959년 육군 28사단에서는 대대장이 사단장을 사살하는 하극상이 벌어진 해다. 이 28사단에서도 하급부대에서 군에 배식할 쌀을 상관이 "상납하라"고 하였다. 사병들에게 배식해야 할 쌀을 상납하고, 중상사와 장교들이 퍼가는 일은 두 번 다시없어야 한다.


태그:#비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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