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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원덕희 지음 / 눈빛 펴냄 / 2014.08 / 1만 5000원)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원덕희 지음 / 눈빛 펴냄 / 2014.08 / 1만 5000원)
ⓒ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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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진은 우리의 삶에 가장 깊숙이 들어온 취미 혹은 예술이 됐다. 디지털카메라의 보급으로 삶의 특별한 순간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사진은 우리와 친근해졌으며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있다.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의 저자는 경북 의성의 어느 산골에서 아내와 7년을 살면서 마을 풍경과 주민의 삶을 찍었다. 그 사진에 자신의 짧은 생각을 담아 책을 냈다. 이 책에는 고가의 사진 장비로 이뤄낸 거창한 풍경이나, 감동이나 성찰을 추동하는 장면, 탄성을 자아내는 결정적인 순간이 없다.

"에이, 이런 사진은 나도 찍겠다!"

처음 책장을 넘길 때는 이런 생각이었다. 하지만 점점 사진마다 눈길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시골생활이라고는 유년시절 외갓집에 놀러 갔을 때뿐인 내 마음속에도 잔잔한 물결이 일렁였다.

숨을 쉬듯 자연스레 묻어나는 사진과 생각들 

"이 산골에 들어와 대문 열어 놓고 산지 벌써 여섯 해, 살면 살수록 자연에 다가가고 싶으니 그래서 나이 듦에 자연이 된다는 말인가 보다." (본문 중에서)

얼핏 보면 아마추어 사진가의 사진 같지만, 저자 원덕희(57)씨는 많은 개인전과 여러 권의 사진책을 낸 전문 사진작가다. 얼마든지 사람들을 '홀리는'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그다. 수년간 살아온 의성 산골의 자연은 그를 '자연스럽게 자연에 동화된' 사진가로 만들었다. 사진 하나하나가 과하지 않아 보기 편하다. 사진은 저자의 마음이 담긴 짧은 이야기와 함께 저마다 다른 풍경을 품고서 계절을 따라 이어진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다들 잘 찍지 않는 풍경, 그래서 오히려 새롭게 다가온다.
 익숙하다는 이유로 다들 잘 찍지 않는 풍경, 그래서 오히려 새롭게 다가온다.
ⓒ 원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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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열어놓고 사는' 동네 사람들이 길을 걷고 밭을 매고 마당에 고추를 널어 말리거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들. 동네 돌담에는 능소화, 조롱박이 달려있고 가을 햇살을 받은 감나무의 감과 벼이삭이 황금빛으로 물든다. 수확해놓은 땀의 결실인 고구마, 호박이 탐스럽다. 시나브로 겨울이 오면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날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 지긋이 도회로 떠난 자식 생각에 잠긴다. 산골 동네에 같이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찍을 수 없는 사진들이다.

'풍경 사진 잘 찍는 법', '여행사진 잘 찍는 법' 어느 유명 사진가의 블로그나 서점에 나오는 사진 관련 책의 제목들이다. 많은 사람이 사진 잘 찍는 법에만 관심이 있다. 촬영 기교와 편집 기술을 배워 '쨍한 사진'을 만드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물론 그것도 사진을 즐기기 위해 중요한 부분이지만, 사진을 오래오래 즐기며 향유하기 위해서는 다른 고민이 필요하다. 사진이란 무엇인지, 사진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왜 사진을 찍고, 사진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등 기본적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진책은 안타깝게도 드물다. 

전문 사진가가 특별한 기교 없이 담아낸, 숨을 쉬듯 자연스레 묻어나는 사진들을 감상하다 보니 문득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점점 난해해져 가는 현대미술을 풍자와 해학을 담아 쉽게 표현한 조영남, 학자들이 복잡하고 골치 아프게 만들어 놓은 경제학을 이해하기 쉬운 '대중을 위한 경제학'으로 풀어쓴 학자 장하준, 학창시절 모두가 어려워하는 과학과목에 관련 인물과 에피소드를 넣어 흥미롭게 설명했던 옛날 물리 선생님 같은 분들이다.
   
마을 사진가, 동네 사진가, 생활 사진가가 되자

"노동과 땀과 눈물이 들어간 삶의 터전은 마음에 안 들면 손 털고 쉽게 나갈 수 있는 곳이 아니기에 더욱 사랑한다." (본문 중에서)

사진은 관찰의 예술이다. 평범한 장소에서 평범하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데는 그곳에서 살고 있는 생활 사진가가 최고다. 저자처럼 생활하는 공간과 주변 사람들을 수년간 사진으로 담아내다 보면, 사진을 잘 찍는 기술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보는 우리의 시선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된다. 고가의 고급 카메라로 사진만 잘 찍으면 될 것 같지만 찍는 기술은 3개월이면 다 배운다. 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와 사람들의 삶과 세상을 보는 눈, 안목 같은 건 사계절을 넘게 배워도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아이에게 열심히 물수제비 시범을 보이는 젊은 아버지, 동네 사진가만이 담을 수 있는 장면이다.
 아이에게 열심히 물수제비 시범을 보이는 젊은 아버지, 동네 사진가만이 담을 수 있는 장면이다.
ⓒ 원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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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 생각을 생활 속에서 꾸준히 사진으로 표현하다 보면 저자처럼 자신을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되는 삶의 기쁨과 활력을 얻게 된다. 혹자는 이것을 '예술의 힘'이라 한다. 일상에서 담아낸 예술이 우리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니 취미 사진가인 내게도 솔깃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의 좋은 점은 반드시 시골이 아니어도 일상에서 나만의 시선과 마음이 담긴 사진을 구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으로 유명한 사진가 앙리 까르띠에 브레송도 파리의 뒷골목을 한두 번 가서 그런 사진을 찍은 게 아니다. 골목길을 셀 수 없이 들락거렸고, 그래서 그 골목들이 익숙해졌고, 자연스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을 게다. 특유의 쓸쓸함과 애잔함으로 도시의 일상을 잘 표현한 화가 에드워드 호퍼처럼 내가 사는 도시를 담아내도 좋고, 일본의 어느 동네 사진가처럼 우리 동네에 사는 고양이 사진만 줄곧 담아도 좋겠다. 그러다 보면 여느 작가보다 더 뚜렷한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생활 사진가'가 될 테다.

이 책에 나오는 평범해 보이는 사진들은 사실 남들이 잘 안 찍는, 오히려 새로운 사진들이다. 사람들은 자기 동네 모습 같은 건 안 찍고 유명 출사지로 향하고, 이국적인 풍경을 찾아 멀리 해외에 가서 찍기 때문이다. 동네 골목을 어슬렁거리는 터줏대감 고양이, 주인에게 버려진 손 때 묻은 가구, 담벼락 돌 틈 사이에 피어난 이름 모를 들꽃, 사람만큼 개성 있는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온 동네 아줌마... 저자는 이런 풍경을 새롭게 보았고, 그런 심미안이 고스란히 사진집에 전해진다.

"놓자, 아름다움을 놓아 버리면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되겠지. 이 세상에는 미도 없고 추도 없다. 놓자." (본문 중에서)

덧붙이는 글 |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원덕희 지음 / 눈빛 펴냄 / 2014.08 / 1만 5000원)



그리운 것은 모두 등 뒤에 있다 - 원덕희의 산골일기

원덕희 지음, 눈빛(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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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아름답다

태그:#원덕희, #사진집, #포토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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