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4월 용혜인(경희대)씨는 청와대자유게시판에 촛불행진을 제안했고 많은 학생들이 '침묵행진'에 동참했다. 용혜인씨의 침묵행진은 대학가에 큰 반향을 일으키며 중간고사라는 방패막이로 사회문제를 외면했던 대학생들을 거리로 나서게 했다.

학생들의 침묵행진은 이틀 연이은 무더기 연행으로 이어졌다. 구속된 학우들에 대한 걱정보다 연행의 두려움이 컸던 걸까? 그 이후 학생들의 움직임은 저조해졌고 그렇게 기말고사와 여름방학을 순차적으로 맞이했다. 4월부터 계속된 주말 집회에 참석하는 학생들의 수는 방학이라고 해서 늘어나지는 않았다.

지방대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세월호에 대한 어떤 문제의식도 없이 무심함으로 대하고 있었다. 지방대 커리큘럼은 무차별적인 직업훈련으로 구성되어 있다. 높은 취업률만이 학생유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학생유치가 교수들의 밥그릇을 지킬 실적이 되는 지방대의 현실에서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는 인문학적 사유는 먼 나라이야기일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런 상황은 서울소재 대학이라고 다를 바 없지만 다만 서울이 좀 더 돌아가는 상황을 알기 쉬운 지리적 이점이 있다는 것이 약간의 차이를 가지게 한다.

인문학의 냄새는 풍기는 사회인문학과들은 게임미학, 문화관광학과 등의 상업적인 이름으로 바뀌고 자연과학 학과들은 치의학,약학,의학전문 대학원을 가기 위한 학점은행으로 전락하고 있다. 학생들의 사회참여도가 줄어드는 세태를 "요즘 애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 마인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사회가 학생들을 철저하게 사회문제를 외면하도록 프로그램밍 하고 있고 그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다시 사회로 진출해 진화된 개인주의와 무관심을 표출하게 된다. 이것은 기득권들이 연출한 각본이고 그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각본을 잘 따랐을 뿐이다.

"가만히 있는 일상에는 '애도'도 '도리'도 없습니다"

왜 우리 학생들은 가만히 있게 된 것일까? 오지선다의 틀에 갇힌 우리는 12년을 정해진 답을 찾아 살아왔다. 남이 정해 놓은 답을 찾고 그 답의 개수로 인생의 희노애락이 정해졌다. 노예12년을 경험한 학생들에게 대학이라는 자유를 던져 줘도 스스로 그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더욱이 자유라고 불리는 대학마져 더 큰 족쇄를 채우는 틀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대학교육은 학문을 통해 사유하는 곳이 아니라 취업만을 위한 디딤돌이 됐고 그 디딤을 단단히 하기 위해서는 사회와 격리되어 외국어와 자격증에 매진해야 했다. 취업후에는 학자금대출을 갚아야 하고 결혼,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앞도 뒤도 돌아볼 수 없는 철저한 개인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 학생들의 조감도이다. 이런 환경을 만들어 준 어른들의 뜻에 따라 학생들은 가만히 있는 일상을 자연스레 택했고 그들의 삶에서'애도'나 '도리'는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악세서리가 된 것이다.

2014.7.24 서울광장
▲ 잊지 않겠습니다 2014.7.24 서울광장
ⓒ 김진희

관련사진보기


이런 환경속에서 고맙게도 학생들이 다시 거리로 돌아왔다. 13일 광화문 집회는 '학생, 교수, 교사'들이 주축이 되는 자리였다. 집회가 끝나고 유가족들과 대학생들의 간담회 시간이 주어졌다. 유가족들과 학생들의 간담회 자리는 강의실의 풍경과 같았다. 선생은 앞에서 떠들고 학생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그 익숙한 모습말이다.

유민이아버지가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제발 앞으로 나와 달라고. 다른 한 아버지 역시 학생들의 참여가 이렇게 저조할지 몰랐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조직적으로 조금씩이라도 참여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시하면서 앞으로도 계속된 연대를 부탁했다.

학생들은 각종 매체들이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는 유가족들을 면전에 두고 왜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을까? 매체들이 보도한 내용외에는 그들이 더 아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이미 매체들이 각종 문제들을 제기했고 그들도 유가족들도 그 답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할 말이 없었다. 유민아버지가 속한 그룹의 대학생들에게 질문했다. "진도에 다녀 오신 분 계십니까?","세월호 문제를 위한 다른 행동사항들을 아십니까","인디고고에서 진행되고 있는 세월호 관련 광고 펀딩은 알고 있습니까?","박근혜 대통령이 오는 21일 유엔에서 기조연설 하는 것은 알고 있습니까?" 어떤 학생에게도 "다녀왔습니다","알고 있습니다"라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한국현대사의 큰 획을 그은 서중석 교수는 퇴임식날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진보일수록 공부를 해야한다. 제대로 된 진보가 되려면 열심히 공부를 해야한다. 그런데 요즘 진보라고 지칭하는 자들은 그와 정반대다라며 얼굴을 붉힐 정도로 열을 내면서 이 시대의 진보라고 지칭하는 이들을 꾸짖었다. 이 꾸짖음은 이 시대의 대학생들도 포함된다. 깃발을 들고 집회에 참석하는 걸로 자신이 속한 단체의 존재감을 드러내려 들지말고 진정 세월호사건의 문제가 무엇인지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

잊지않겠다는 깃발은 단지 깃발일 뿐이다. 잊지 않기 위해서는 행동해야 하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필요하다. 동기부여가 있기 위해서는 "왜"라는 물음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청년들은 왜 세월호사건이 우리 사회의 문제이며, 나는 왜 이 자리에 깃발을 들고 서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태그:#세월호, #촛불문화제, #광화문, #세월호사건, #국정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