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통해 소개한 조선시대 문인 유한준 선생의 경구다. 대부분의 여행 프로그램은 이 경구의 의미를 실현하는 데 충실하고자 한다. 18일 방영된 MBC <7인의 식객>도 다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에티오피아 식 닭요리를 맛본 식객들은 마늘향이 감싸고, 숯불로 잡내를 없앤 닭고기 맛에 감탄한다. 그리고 '세계 어디를 가도 미식에 대한 취향은 통한다'고 공감하며, 여행을 통해 사랑에 빠진 나라 에티오피아에 대해 저마다 한 마디씩 보탠다. 여기에서 등장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은 바로 유한준 선생의 경구와 통한다. 그런데 그들의 감탄사가 과연 시청자들의 공감으로 이어질까? 그건 아직까지 미지수다.

에티오피아 요리 맛본 식객들의 '감탄', '공감'은 못 하는 이유

 MBC <7인의 식객> 에티오피아 편 출연자들

MBC <7인의 식객> 에티오피아 편 출연자들 ⓒ MBC


'한국에서는 접할 수 없는 닭고기 바비큐를 통해 새삼 느끼게 된 에티오피아의 맛'을 전하는 것까진 좋다. 그런데 그게 정말 에티오피아의 진면목일까? 제목에 '식객'을 내세운 이상, 요리를 통해 여행지에 접근할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하지만 어쩐지, 이들의 감탄은 외국인이 한국을 찾아 음식점에서 맛본 김치 맛 하나를 통해 '한국을 알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진다.

<7인의 식객>이 에티오피아에 간다고 할 때만 해도 이번에는 제대로 여행다운 여행을 하려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에티오피아에서 <7인의 식객>이 보여주는 모습은 대표적인 여행 프로그램으로 손꼽히는 EBS <세계 테마 기행>에 비하면 한참 겉핥기식이다. 식객 프로그램의 한국 버전이라 할 수 있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보다도 어설프다.

방송 내용을 보자. 김경식과 손헌수는 소금 사막을 찾아 소금 땅을 캐보기도 하고, 상품화하기 좋게 정사각형으로 소금을 깎아 보기도 하는 등 소금 캐는 사람들의 일을 체험해 본다. 곤다르의 전통 음식점을 찾아간 서경석, 이영아, 신성우 등 나머지 식객들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곳을 찾아 에티오피아 전통 음식을 맛보고, 전통 춤 공연을 보고, 직접 에티오피아 음식들을 만들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딱 그뿐이다. 과연 소금 땅 한번 깨고, 소금 덩어리 한번 맛보는 것으로 하루 종일 사막에서 일하는 에티오피아 인들의 삶을 알 수 있을까? 정말 그들의 삶을 체험하고 싶다면, 적어도 하루라도 그들처럼 소금 사막의 일꾼이 되어 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정말 에티오피아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에티오피아의 잘 알려진 음식점이 아니라 에티오피아 사람들의 집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려 지내야 하지 않을까?

<7인의 식객>이 에티오피아의 대표적인 문물과 음식들을 소개해 주는 것이 공감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 다가오지 않는 건, 여전히 프로그램이 '관광'을 온 여행자의 눈높이 이상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7인의 식객>이 빌려 쓴 이름, 허영만 작가의 <식객>이 장기간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는 거기서 소개한 음식 하나하나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사연과 역사가 담겨 있어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풍광, 맛있는 요리도 좋지만...'현지인의 삶'은 어디에 

 MBC <7인의 식객> 에티오피아 편 스틸컷

MBC <7인의 식객> 에티오피아 편 스틸컷 ⓒ MBC


<7인의 식객>에 등장하는 에티오피아의 풍광은 멋지다. 음식 또한 맛있어 보인다. 하지만 프로그램 속에 정작 지금 에티오피아에 사는 사람들의 숨결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관광지에서 만난 이방인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는 에티오피아 인들을 카메라에 담는 것만으로, 에티오피아 인들을 만났다고 하면 안 된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의 유래가 주인들이 먹다 버린 목과 날개를 먹기 위해 닭을 기름에 튀기기 시작한 흑인 노예들이라는 정보도 물론 고맙지만, '에티오피아에서 닭은 먹기 힘든 귀한 음식'이라는 현실에 조금 더 밀착한 프로그램이 되었으면 어떨까?

현지인이 가기 힘든 비싼 식당에서 '이게 에티오피아 음식이야'라고 말할 게 아니다. 닭고기를 통해 한때는 지중해의 강자였지만 이제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된 에티오피아, 40도가 오르내리는 소금 사막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겨우 일당 몇 푼을 손에 쥘 수 있는 에티오피아의 참모습에 조금 더 다가가면 어땠을까 싶다.

에티오피아의 요리를 맛보면서 '생각 외로 맛있다며 감탄하는' 출연자들의 모습 뒤에는, '에티오피아 음식은 먹기 힘들 것'이라는 '우리 안의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하는 것만 같다. 거기에는 여전히 현지 물가에 비해 비싼 호텔과 식당과 풍광 좋은 여행지를 전전하며, 이방인으로 스쳐 지나가는 여행객이 있을 뿐이다.

비단 <7인의 식객>만이 아니다. <꽃보다> 시리즈를 시작으로 여행 프로그램이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의 여행 프로그램들은 여전히 이국의 문물 앞에서 '나' 중심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국의 문물 앞에서 우리끼리 웃고 떠들고, 감동하고, 감상에 빠지고. 장소만 바뀌었을 뿐, 어쩌면 여전히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7인의 식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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