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이힐>의 장진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하이힐>의 장진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희곡 작가에서 시나리오 작가로 다시 영화 연출자와 제작자, TV 프로그램 기획과 뮤지컬 연출까지. 장진 감독의 행보는 현란하다. 스스로야 "이야기를 만들고 말하고자 하는 범주 안에서 다 하나"라지만 그의 넘치는 에너지와 끼는 지금껏 대중들이 지나쳐서는 안 될 주요한 작품을 만들어내는 동력이 됐다.

영화 <하이힐>도 그중 하나다. 코미디 하면 장진이었지만 이번엔 웃음기를 다소 빼놓고 제법 팽팽한 감정선과 분위기로 승부했다. 지난 3일에 개봉한 영화는 흥행 면에서는 아쉬운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일단 관람한 이들 사이에선 호평이 나온다. 누구보다 안타까운 마음일 장진 감독은 "상업영화의 부진은 결국 감독의 탓"이라며 "실망스러울 수는 있지만 이게 게임도 아니고, 영화를 안고 끝까지 가보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여성이 되고 싶었던 강력계 형사 윤지욱(차승원 분)의 이야기. 어쩌면 우리 사회에선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소재일 수 있다. 사회적 금기와 상업영화의 만남을 장진 감독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추진했다. "좋은 영화라면 관객들이 분명 좋은 평가를 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고, 그는 말했다.

왜 이 시점에 '하이힐'?..."비주류에 대한 이야기 끌려"

 영화 <하이힐>의 장진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분야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변주해온 장진 감독이 <하이힐>을 들고 나왔다는 점에 의아하다는 시선도 물론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장진이었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나도 왜 이런 이야기가 생각났고 윤지욱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는지 정확히 모르겠다"던 장진에게 대체 소재 발굴을 어찌 했는지 물었다. 

"소재를 얻으려 노력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메모도 잘 안 해요. 살면서 재미난 일을 보거나 듣고, 그게 머리에 남아 있으면 하는 거죠. 도중에 까먹는다면 그 이야기의 유효기간이 딱 거기까지인 거예요. 늘 현시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죠. 다만 직업인만큼 부지런을 좀 떤다면 재미난 이야기를 듣고 남에게 그저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써서 보여준다는 거? 쓰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나 요즘 이거 쓰고 있어'라고 얘기도 안 해요. 다 쓴 다음에 얘길 하죠.

<하이힐>이 왜 나왔는지 진짜 모르겠어요. 안 어울리는 조합에서 캐릭터가 나온 거 같은데 강력한 마초가 있고 그 안에 비밀스럽게 여성성이 자라고 있다는 부분에서 시작한 거예요. 여기에 호기심과 유머를 넣으면 코미디 영화가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담으면 또 다른 장르가 되는 거죠. 코미디 영화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작가의 시각을 드러내면 유치해지지만 <하이힐>은 장르 영화로 풀었기에 넣을 수 있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장진의 시각이란 곧 "비주류가 내는 진짜 목소리"였다. 사실 그가 세상에 내놓은 작품 속 인물들이 대부분 그렇지 않았나. 어딘가 온전치 못한 인물들이 사회를 향해 말한다. 마치 억지로 잊고 무시하려는 사람들을 향해 '나 여기 있다!'고 외치는 것처럼 말이다.

"나를 코미디 감독이라 정의해도 불만 없어"

 영화 <하이힐>의 장진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에 대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소재를 얻으려 노력하거나 그런 건 없어요. 메모도 잘 안 해요. 살면서 재미난 일을 보거나 듣고, 그게 머리에 남아 있으면 하는 거죠. 도중에 까먹는다면 그 이야기의 유효기간이 딱 거기까지인 거예요. 늘 현시점에서 새로 시작하는 거죠." ⓒ 이정민


그럼에도 장진에게서 코미디를 빼놓을 순 없다. 느와르라던 <하이힐>도 장진 식의 코미디가 배경처럼 흐르고 있다. 장진 스스로도 "어릴 때 <다이하드> 등의 액션 영화 주인공이 힘든 상황에서 유머를 날리는 모습을 처음 보고 흠모하기 시작했다"며 코미디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눈물보다 웃음이 그 종류가 더 많은 거 같아요. 박장대소나 피식하고 웃을 수도 있고, 집에 가는 길에 생각나서 웃을 수도 있죠. 또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정말 웃기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고요. 또 마냥 웃다가 뭔가 묵직함을 주는 것도 훌륭한 코미디예요.

코미디에도 품격이 있어요. 정점이라는 것도 없고요. 어제 잘 만들었다고 오늘도 잘한다는 보장이 없거든요. 관객의 취향은 과격하게 바뀌는 법이니. 또 요즘같이 양분된 우리 사회에서는 코미디같이 갈등을 봉합하기 좋은 장르는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어렵지만 계속 도전하는 거죠."

코미디라 말했지만 그 바탕은 곧 현실에 대한 냉철한 바라보기다. 마냥 유쾌한 입담꾼으로 보이지만 장진은 "누군가의 생각과 이야기를 절대 맹신하지 않는다"며 "진보와 보수로 나뉜 사회에서 진짜 필요한 거는 서로에 대한 인정"이라고 말했다.

"저희가 그런 세대예요. 어릴 때 광주혁명을 겪고, 군사정권의 종식도 보며 이후 민주 정권이 들어오자 다 잘 될 거 같았는데 그게 아니었죠. 양분된 사회에서 뭐가 진짜 정답인지 생각하려면 피곤해져요. 중도의 삶이 어쩌면 필요한 시대 아닐까요.

예전엔 저도 한쪽 말을 무조건 안 들으려 했지만 사실 55대 45 싸움이잖아요. 55에 자기가 속한다고 기고만장할 필요도 없어요. 45 쪽 역시 절반 가까운 사람들이 믿고 지지하는 부류인 걸 인정해야죠. 영화를 통해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거다'라는 걸 보여 왔어요. 이게 극명한 리얼리즘이거든요. 전 그 힘을 믿습니다. 리얼리즘이 시대를 더 좋게 만들어 줄 거라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대중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게 감독의 운명"

 영화 <하이힐>의 장진 감독이 17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영화 일이 아니었다면 요리사를 했을 거라던 장진 감독. 생각해보면 그 역시 무언가를 창조하는 일이며, 타인의 평가로 자신의 실력을 입증 받아야 하는 일이었다. 두 명 이상의 손님이 오면 장진은 늘 자신이 음식을 준비해 대접했단다. 그나마도 요즘 "(부인이 위기감을 느꼈는지) 주방을 내주려 하지 않아 못하고 있다"며 장진은 "녹록치 않다"고 웃으며 전했다. 

"아이들에게 깜짝 놀랄 볶음밥을 해주겠다며 자랑하거든요. 그러고 보니 영화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첫 시작은 가족에게 창피하지 않을 영화를 만드는 게 목표죠. 제게 맛있는 영화는 좋으면서도 재밌는 작품이에요. 상업 영화 감독이니 쭉 작품을 통해 증명해가는 거죠. 사실 요즘 제 스스로에게 짜증이 좀 나있는데 원래 안 해봤던 영역으로 나서는 걸 좋아하고, 엄한 짓을 좋아하는데 계속 상업 쪽으로만 나가서 그래요. 이러다 진짜 일탈할 수도 있습니다. (웃음)"

일탈을 꿈꾸는 그에게 앞서 언급한, '좋으면서도 재밌는 영화'란 무엇인지 물었다. "익숙함에서 낯설고 새로운 걸 보이는 게 재밌는 영화"란다. 또한 "삶을 돌아보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고 정의했다. 장진 역시 그런 작품을 꿈꾸며 그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재밌고 좋은 영화를 위해 수많은 배우, 작가, 스태프들이 발명가적 심정을 갖고 임해야 해요. 유희에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거든요. 나쁜 유희는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걸 건드려 대중들의 나쁜 경향을 끄집어내죠. 좋은 유희는 대중이 미처 모르고 있던 걸 다시 생각나게 하고 재고하게 하고요.

<하이힐> 역시 상업 영화의 틀 안에서 다양한 소재가 시도될 수 있다는 차원에서 기획한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 다양성이라는 게 가장 필요한 덕목 아닐까요. 감독인 만큼 재밌고 좋으며, 다양성을 인정받는 작품을 추구해가는 것이죠."

▲ [스타영상] 영화<하이힐>의 장진 감독, "느낌이 다른 코미디" 영화<하이힐>의 장진 감독이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작품 속에 스며있는 코미디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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