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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 스미스가 주연으로 출연했던 좀비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2007년 12월에 개봉한 이 영화는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의 작품이다. 그는 2005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콘스탄틴>에서 천사와 악마, 그 사이에 끼어버린 인간의 대결을 묵직한 메시지와 액션으로 승화시킨 바 있다. 그는 이어서 개봉한 <나는 전설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헝거게임> 시리즈를 통해서 영화팬들로부터 그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원작으로 들여다 본 <나는 전설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는 출중한 액션이 살아있는 영화보다는, 영화의 원작에 더 주목하려고 한다. 원작인 소설과 영화가 시사하는 점이 다소 다르기 때문이다.

동명의 원작소설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는 1954년에 작가 리처드 매드슨이 발표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지난 2005년에 출간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유명한 작가 스티븐 킹도 "이 책을 읽고 나서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발언할 만큼 다른 작가들의 작품세계에도 큰 영향을 미친 소설이기도 하다.

'좀비'라는 개념이 흔하지 않던 당시에 이를 소설에서 소재로 썼던 <나는 전설이다>는 그런 이유로 '좀비 공포물의 원조'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새벽의 저주>와 <레지던트 이블> 등 지금까지 이어진 수 많은 좀비영화와 소설들이 이 작품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먼저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인류가 멸망의 길을 걸은 뒤, 한 사람이 홀로 살아남아 괴물들과 맞서 싸우게 된다는 것. 이 부분에서 아마도 영화를 본 관객들이라면 다소 의아한 점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원작에서는 주인공 '네빌 박사'가 맞서 싸우는 기괴한 생명체들이 우리가 흔히 알던 '좀비'가 아니라 그보다는 '흡혈귀', 즉 뱀파이어에 가깝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소설 속에서 그들은 인간과 똑같은 언어를 사용해서 말을 하고, 그들만의 사회를 나름대로 구성하고 살아간다.

영화와 원작소설의 차이점은 바로 여기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한 장면. 좀비가 가득한 도시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처절한 외로움을 비좁은 욕조에 누운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한 장면. 좀비가 가득한 도시에 홀로 남은 주인공의 처절한 외로움을 비좁은 욕조에 누운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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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억 인류 중에서 59억이 넘는 대다수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궤멸하고, 그 중 1억이 넘는 사람들은 바이러스로 인한 변이 때문에 흡혈귀가 되어버린 세상. 그 안에서 항체를 가진 덕분에 살아남은 극소수의 인류가 생존을 위해 발버둥친다.

영화에서 그러하듯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혼자 남은 환경에서 자신과 다른 존재들을 상대하면서 살아야 하는 네빌 박사의 모습을 묘사한다. 외로움과 이질감,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공포의 근원이라는 듯이.

흡혈귀가 활동하는 밤에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혀서 지내고, 반대로 흡혈귀가 잠든 낮에는 폐허가 된 듯한 마을을 돌아다니며 흡혈귀를 사냥하는 네빌 박사. 처절하게 외로운 그 싸움에서 네빌 박사는 금방이라도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듯한 흡혈귀들과 아슬아슬한 대결을 이어간다. 무엇보다도 상대는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고, 그는 혼자다.

영화와 소설의 차이점은 '인간이 변한 존재가 좀비냐 흡혈귀냐' 뿐만이 아니다. 영화에서는 '좀비 바이러스'의 치료법이자 백신을 개발하는 네빌 박사의 숭고함과 희생정신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리하여 그는 전설이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다르다. 본문의 네빌박사는 바이러스를 박멸하는 일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다. 소설은 시종일관 '치료'와 '구원'의 메시지를 향해 아무런 전개를 끌어내지 않는다.

그보다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가 기대하거나 평소에 자연스럽게 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시선이다. 그것은 곧 정상과 비정상, 혹은 다수와 소수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통째로 뒤엎는 일이다.

"정상이란 다수의 개념이자 다수를 위한 개념이다. 단 하나의 존재를 위한 개념이 될 수는 없다. 그러한 깨달음은 그들의 표정에 나타난 감정과 오버랩 되었다. 경외, 두려움, 형언할 수 없는 공포. 그렇다. 그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천벌이었다. 자신들이 끼고 살아가야 하는 질병보다도 더 흉측한 존재였던 것이다." (본문 221쪽 중에서)

다수와 소수가 뒤바뀐 세상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 굳어버린 생각에 리처드 매드슨은 의문을 던진다. 무엇이든 더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이유만으로 간단하게 '정상'으로 분류하는 우리의 발상에 대해서, 작가는 전혀 다른 세계를 펼쳐내는 방식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그 관점이란 이야기의 절정으로 본문이 독자를 데리고 가는 어느 지점의 대사에서 스스로를 확연하게 드러낸다. 소설 속 흡혈귀들이 주류가 된 사회에서, 단 한 명의 인간인 네빌 박사에게 흡혈귀들이 뱉어낸 절규와 외침은 "저 괴물을 죽여라!"였던 것이다.

그 대사를 읽는 순간, 미처 거기 있는지도 인지하지 못했던, 머릿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그렇다. '1억의 흡혈귀'에게 있어서 '1명의 인간'은 그야말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자신들과 전혀 다른 존재이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네빌 박사가 끊임없이 자신들을 죽이려 해가 뜨면 사냥을 해대니, 그 두려움은 오죽했겠는가. 관점을 바꾸는 순간, <나는 전설이다>의 네빌 박사는 흡혈귀들에게 있어서 '괴물'이었고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법한 '전설'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리처드 매드슨이 자신의 소설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과연 올바른가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인식전환의 매개체는 '다수와 소수가 뒤바뀐 세상'이었던 셈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소수인 존재들이 절대적인 다수를 차지하게 되고, "우리는 정상"이라며 안도감을 느끼던 순간이 '홀로 남은 막막함'으로 대체되는 순간의 공포. 사람들이 쉽고 흔하게 느끼던 우월감의 밑바탕이 사실은 그저 수적 우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을 때, 소설은 '흡혈귀와의 대결'이 그려내는 공포를 넘어서 더 넓은 생각으로 열린 문으로 독자를 인도한다.

15회 '성소수자 축제'에 다녀와서

2014년 6월 7일 신촌에서 열린 15차 성소수자 축제 '퀴어 페스티벌'의 깃발.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LOVE CONQUERS HATE)'라고 쓰여있다.
 2014년 6월 7일 신촌에서 열린 15차 성소수자 축제 '퀴어 페스티벌'의 깃발. '사랑은 혐오를 이긴다(LOVE CONQUERS HATE)'라고 쓰여있다.
ⓒ 김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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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서울 신촌에서 열린 '제15회 성소수자 축제(이하 퀴어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지만, 성적 지향이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폭력을 겪는 이들을 지지하는 심정으로 참가했다. 그리고 내가 본 풍경들은, 씁쓸함과 흐뭇함의 상반되는 감정을 자아내는 것들이었다.

축하행사를 위한 무대가 설치된 장소를 둘러싸고 종교단체는 확성기로 "동성애는 죄악이다", "너희들은 지옥에 갈 것이다"를 외쳐댔다. 이를 거들면서 보수단체를 자칭한 사람들이 "동성애는 한국을 망치는 주범"이라며 고함을 질렀다.

그럼에도 행사는 꿋꿋하게 진행되었고, 신촌로를 기점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목소리를 냈다. 퀴어 페스티벌이 무거운 분위기의 시위라기보다 모두가 웃고 즐기는 축제의 분위기가 더 컸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도 많이 참여했고, 구글과 미국·독일 대사관 등을 비롯한 기관에서도 행사장 내에 부스를 마련하여 지지의사를 드러냈다. 계속된 방해에도 웃으면서 축제를 이어가려는 많은 사람들의 협동의식과 긍정적인 태도는 군중을 끊임없이 미소짓게 했다.

보수기독교 단체가 길에 드러누워 퀴어문화축제 거리퍼레이드를 막고 있다.
 보수기독교 단체가 길에 드러누워 퀴어문화축제 거리퍼레이드를 막고 있다.
ⓒ 박혜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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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할 퍼레이드가 시작될 무렵, 보수종교단체는 "동성애를 전염시키지 마라"는 구호와 함께 차량의 앞에 단체로 드러누웠다. 심지어 "대~ 한민국!"을 외치거나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다.

이는 동성애자가 '한국인'이자 전염되지 않은 '정상'인 사람들과 다른 대상, 즉 비정상이고 타자화된 존재들이라고 주장하는 뜻으로 해석될 법 했다. 짐작하건대, 아마도 '우리와 다른 누군가가 크게 목소리를 내고 한국을 지배하려고 한다'는 깊은 공포심이 그러한 행동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방해집회로 인해 퍼레이드는 5시간 가량 미루어진 오후 10시경이 되어서야 원래 예정된 코스대로 진행될 수 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번 <나는 전설이다>를 떠올려보자. '이성애자가 한국 사회의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이성애적인 성향만이 정상이며 '동성애는 잘못된 것'이라고 쉽게 말해도 괜찮은걸까?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소수에 대한 폭력적인 발언과 행동을 해도 과연 정당한 것일까?

7일 오후 신촌 연세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7일 오후 신촌 연세로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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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라는 성향이 한국을 위협한다며 '반대'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9년에 '6월은 성소수자의 달'이라 지정했고 반기문 UN사무총장과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성애자 지지선언을 했다는 것을 굳이 설명해야 할까.

1973년에 미국 의사협회가 "동성애는 치료대상인 질병이 아니다"라고 발표한 것을 인용하면 '전염' 운운하던 사람들이 그제서야 주의깊게 들어줄까. 모르겠다. 다만, 아마도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동성애 혐오론자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다.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폭력이 정당화되지는 않으며, 그것이 '나는 정상'이라는 자기합리화를 위한 것일 경우에는 그저 추한 태도일 뿐이라고.

편견에 기반한 차별을 지금 당장 멈추지 않는다면, 먼 훗날의 후손들은 당신들을 '그들은 꼴사나운 전설이다'라고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150년 전에 흑인을 동급의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100년 전 여성에겐 권리가 주어지지 말아야 한다며 비하했던 부류와 동급으로 말이다.

덧붙이는 글 |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 (리처드 매드슨 씀 |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5.06. | 1만1천원)



나는 전설이다

리처드 매드슨 지음, 조영학 옮김, 황금가지(2005)


태그:#나는 전설이다, #성소수자, #퀴어 축제, #혐오범죄, #소수 차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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