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영화 <도희야>가 개봉했다. <도희야>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되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도희야>는 가정폭력과 왕따를 당하는 도희, 동성애라는 사생활 문제로 시골로 강등당한 경찰 영남이 만나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내용이다. 무거운 소재와는 달리 상영시간 내내 담담하고 잔잔하게 진행된다. 필자는 영화를 보고 몇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영남은 왜 도희에게 지나친 관심을 가지는가?

 영화 <도희야> 한 장면.

영화 <도희야> 한 장면. ⓒ 파인하우스필림


영남은 도희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같이 살 정도로 잘해준다. 처음에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도희에 대한 동정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동정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영남은 도희에게서 동정심뿐만이 아닌 자신을 보는 기분이 들어서 더 도희에게 애착을 가지고 잘해주는 것이라 생각되었다.

영남이 마을을 떠나기 전, 권순오 경감은 영남에게 도희가 '어린 괴물'같다고 말한다. 전 여친이 찾아와도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와 주위 시선 때문에 사랑을 선택하지 못하는 영남과 달리, 잘못한 게 없으면 맞지 말라는 영남의 말에 적극적으로 저항하는 도희.

도희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런 행동을 하지만 사람들은 도희를 괴물이라 말한다. 아마 어린 괴물이라는 그 말에서 영남은 도희와 자신을 완벽히 동일시하며 함께 마을을 떠나야겠다는 확신을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영화 속 괴물은 도희 뿐인가?

영화 속에서 직접적으로 괴물이라 언급되는 인물은 도희뿐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괴물은 도희만이 아니다. 도희, 영남, 집에 가고 싶어 난동을 피우던 불법체류자. 모두가 괴물이다. 그리고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가 만든 괴물이라는 점이다.

도희는 왕따와 가정폭력에 시달리지만, 마을 분위기는 그런 도희에게 냉담하기만 하다. 오히려 거둬주고 학교에 보내주는 것에 감사하라고 한다. 영남은 평등과 정의로 상징되는 경찰로 나온다. 하지만 자신도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차별받고 배제된 사람 중 한 명에 불과하다.

사회가 영남을 바라보는 시선은 성추행범으로 오해받은 영남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 느낄 수 있다. 술 없이는 잠이 들지 못하는 영남은 아마 자신을 이미 괴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주변 소재로 나오는 불법체류자 또한 마을 사람들은 좋지 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람 취급도 해주지 않는다. 즉, 도희야는 사회에서 배제 된 외롭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도희야>를 보고 나서 비슷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영화인 <화이>가 생각났다. 두 영화를 보고 '괴물은 탄생되는 것인가, 만들어 지는 것인가'를 고민해 보았다. 답은 두 영화 모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가?

영화 속에서 용하는 사회적인 힘으로 대변된다. 마을 사람들은 불법체류자들에게 온갖 폭력을 행세하고 심지어 딸까지 때리는 용하의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자신들과 관련이 없고, 마을에 도움이 되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쉬쉬하며 넘어간다. 이런 마을의 모습이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우리 사회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얼마 전, 김조광수가 결혼하며 한창 이슈가 되었던 동성애. 축복받아야 할 결혼식에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반동성애자가 난동을 부리는 소동이 일어났다. 오랫동안 사회적 이슈가 돼 온 불법체류자나 학교폭력, 가정폭력 문제에 우리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소수만이 관심을 가질 뿐 다수는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외면한다. 

하지만 이 모두가 사회에 속한 개인의 문제, 즉 사회의 문제이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들이다. 우리가 계속해서 이들을 외면하고 소외시킨다면 우리 또한 용하와 다를 바 없다.

우리 사회는 우리와 조금 다른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나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다정하게 그 사람을 바라봐 주자.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구절이 있다.

우리도 그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주자. 그들을 나와는 조금 다른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준다면 그들도 우리에게 다가와 한송이의 아름다운 꽃이 될 것이다.

도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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