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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4일) 아침, 삼도봉 아래의 작은 산골마을의 동네 스피커에서 방송이 흘렀습니다.

"동네 어르신들께서는 마을회관으로 아침 식사하시러 나오시기 바랍니다."

동네의 연락은 여전히 동네어귀에 달린 스피커입니다.
 동네의 연락은 여전히 동네어귀에 달린 스피커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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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실, 숫골 등 이웃 마을을 합해서 부르는 희곡리라는 행정명보다 외골이라는 부락명이 더 익숙한 동네입니다. 지금은 마을 중간 중간에 빈집이나 집터만 남아서 10여 가구에만 사람이 살고 있지요.

마당 한 쪽을 텃밭으로 만들어 감자을 심은 가장자리의 상추가 마치 화초처럼 자유롭게 자랍니다.
 마당 한 쪽을 텃밭으로 만들어 감자을 심은 가장자리의 상추가 마치 화초처럼 자유롭게 자랍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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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은 6~70년대부터 고향을 떠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노인만 남아 빈집은 허물어지고 허물어진 자리는 다시 텃밭이 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6~70년대부터 고향을 떠나기 시작해서 지금은 노인만 남아 빈집은 허물어지고 허물어진 자리는 다시 텃밭이 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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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키고 계신 분들은 대부분 노인들이고 아들, 딸들은 모두 대처로 나가 각자의 생계를 꾸리고 있습니다.

장년이 되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의 얘기는 끝날 줄을 모릅니다.
 장년이 되어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온 사람의 얘기는 끝날 줄을 모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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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을에서는 매년 5월 초 객지로 나간 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어 잔칫상을 차리고 하루 동안 어른들을 모십니다. 

하루 전에 귀향한 젊은 사람들이 돼지를 잡고 물고기를 잡아 그 음식들을 준비합니다.

도회지에서도 세월은 한 순간도 멈춤이 없었으니 어른들을 모시기 위해 귀향한 젊은이들도 이제는 대부분 나이 쉰을 넘겼고 손자손녀를 둔 이도 있습니다.

하루 전에 고향에 집합한 젊은 사람들은 돼지를 잡고 물고기를 잡아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 경로잔치는 객지에 흩어져서는 젊은 사람들을 1년에 한번이라도 서로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고향에 남은 사람은 깊은 산에 들어가 뜯은 큰산나물을 데쳐서 그들을 맞습니다.
 하루 전에 고향에 집합한 젊은 사람들은 돼지를 잡고 물고기를 잡아 음식을 준비합니다. 이 경로잔치는 객지에 흩어져서는 젊은 사람들을 1년에 한번이라도 서로 대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줍니다. 고향에 남은 사람은 깊은 산에 들어가 뜯은 큰산나물을 데쳐서 그들을 맞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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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동네의 노인들은 들로 나가는 대신 마을회관으로 모여 함께 상을 받습니다.
 
마을회관으로 모이라는 방송에 어르신들은 집을 나섰습니다.
 마을회관으로 모이라는 방송에 어르신들은 집을 나섰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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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어른들은 객지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넵니다.
 굽은 허리를 펴지 못한 채 어른들은 객지에서 돌아온 이들에게 반가운 인사를 건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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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앉아서 상을 받는 어른들은 제가 어릴 때 모두 청년이었던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앉아서 상을 받는 어른들은 제가 어릴 때 모두 청년이었던 사람들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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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에 주름이 가득하고 백발이 성성한 젊은이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상을 차리는 모습을 보면 노래자(老萊子)의 휴희(노래지희 老萊之戱)가 생각납니다.

어제 잡은 돼지를 하룻밤 내내 삶았습니다.
 어제 잡은 돼지를 하룻밤 내내 삶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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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은 고기를 건져 온 동네어른들이 먹기 좋을 크기로 잘라 편육을 만듭니다.
 잘 익은 고기를 건져 온 동네어른들이 먹기 좋을 크기로 잘라 편육을 만듭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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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초나라의 효자인 나이 칠십의 노래자처럼 어린아이의 옷을 입진 않았어도 각자의 방식으로 어린애의 재롱같은 부드러운 익살을 곁들여 음식을 권하는 모습들은 노래자의 그 마음과 변함이 없는 모습들입니다.

오랜만에 마을회관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오랜만에 마을회관은 사람들로 북적입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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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국민학교 4학년 때 대처의 유학으로 고향을 떠났습니다. 연로한 부모를 두고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은 항상 고향에 대해서 죄인 같은 마음이 됩니다.
 
고향집의 사진액자에는 제가 고향을 떠나기 전의 흔적이 아직 걸려있습니다.
 고향집의 사진액자에는 제가 고향을 떠나기 전의 흔적이 아직 걸려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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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 등의 연휴를 활용한 고향의 이 효도잔치에 한번 다녀오는 것만으로도 불효의 강박이 어느 정도 경감되는 위약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다행이도 저의 아버님과 어머님은 91세로 고령이시지만 아직 두 분이 함께 독립적인 생활을 하실 수 있을 만합니다. 물론 치아는 모두 의치이고 청력이 급격하게 저하되었지만 말입니다.

동네 이장님의 마을회관초대에 저희 부모님도 함께했습니다. 어른들께 '많이 드시라'인사를 드리는 중에 나란히 앉은 두 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모님과 어머님! 박종성, 박종시. 두 분은 친자매입니다. 이모님은 98세, 어머님과는 7살 차이의 언니입니다.

박종성, 박종시 자매. 98세, 91세의 두 분은 한 마을로 시집와서 평생을 이웃으로 살았습니다.
 박종성, 박종시 자매. 98세, 91세의 두 분은 한 마을로 시집와서 평생을 이웃으로 살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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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항댐 건설로 지금은 물에 잠겨버린 용촌에서 먼저 외골로 시집와서 오랫동안 지켜본, 가난하지만 부지런하고 성실한 농사꾼의 아버지에게 동생을 소개해서 저의 어머님이 될 수 있었습니다.

두 분은 평생 한동네에 사시면서 짙은 여자형제간의 우정을 나누었습니다. 고깃국을 끓여도 냄비에 서로 퍼 날랐고 아들딸들도 형제의 예를 이어갔습니다. 먼저 세상을 버린 이모부를 대신해 그 집의 지게가 망가져도 솜씨 좋은 아버지가 달려가서 고쳐드리곤 했습니다.

동네 분들은 두 분 모두 백수를 하실 거란 말씀을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들이 단순히 덕담이 아닐 거라 믿습니다.

한때 부모님을 제가 사는 파주로 모셔온 적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고향집의 골목길도 포장이 되었습니다.
 고향집의 골목길도 포장이 되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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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아래채의 방문은 문창살만 남았고 마루에는 어머니께서 뜯어말린 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지 않는 아래채의 방문은 문창살만 남았고 마루에는 어머니께서 뜯어말린 쑥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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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로 이사와 사시면서 그토록 향수에 못이겨 하셨던 이유 중의 하나도 바로 만만한 혈육과 떨어져 지내는 외로움도 컸으리라는 추측입니다. 누구에게나 딱히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다시 점심을 비빔밥으로 나누어 먹고 객지에서 왔던 사람들이 한 두사람씩 되돌아가면서 이 동네잔치는 돼지고기를 삶았던 아궁이속의 숯불처럼 천천히 끝이 났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빔밥을 나누어먹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다시 대처로 떠난 마을 초입에 다시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빔밥을 나누어먹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다시 대처로 떠난 마을 초입에 다시 노인들만 남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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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을 끓였던 솥의 장작불은 시나브로 꺼졌습니다.
 국을 끓였던 솥의 장작불은 시나브로 꺼졌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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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고향을 떠나온 지금, 여전히 참담한 한국의 현실이지만 햇살은 천국의 그것처럼 찬란합니다. 이 극한 대비가 혼란스럽습니다.

어머님은 다시 고향을 떠나는 아들을 보내기위해 마을 정자나무 어귀로 나왔습니다.
 어머님은 다시 고향을 떠나는 아들을 보내기위해 마을 정자나무 어귀로 나왔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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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motif.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경로잔치, #고향, #외골, #희곡리, #김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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