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유불급(過猶不及). '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아래 어메이징)>을 본 제 소감입니다. 비평가로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을 남의 작품을 너무 간단한 한 마디 말로 정리해 버리는 태도는 지양해야 함을 알지만, 저 사자성어만큼 이 영화를 잘 설명할 말을 찾을 수가 없군요.

전편은 물론 샘 레이미가 감독한 스파이더맨 3부작까지 다 통틀어 어디에도 이렇게 일에 부대끼는 스파이더맨은 없었어요. 관객들은 두 시간 삼십 분 가까운 결코 짧지 않은 상영시간 동안 주인공이 죽은 부모와의 오해를 풀고 여자친구를 되찾고 악당을 둘이나 깨부수고 사춘기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갈등을 겪는, 그 모든 과정들을 지켜봐야 합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포스터 ‘과유불급(過猶不及).’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하 어메이징)〉을 본 제 소감입니다.

▲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포스터 ‘과유불급(過猶不及).’영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이하 어메이징)〉을 본 제 소감입니다. ⓒ 소니


즐거운 구경거리면 누가 뭐랍니까. 정신사납고 지루하기 이를 데 없으니 문제죠. 이 영화의 영웅은 관객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자기 일상이 얼마나 바쁜지를 보여주려고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바쁜 게 뭐가 문제냐고요? 바쁜 건 샘 레이미가 감독한 <스파이더맨3>의 스파이더맨이 더 하지 않았냐고요? 맞습니다. <스파이더맨3>엔 악당만 네 명이 등장합니다. 게다가 등장하는 악당 중 한 놈은 한때 친구였던 자이고, 한 놈은 연적이고,한 놈은 자기 자신의 표상이에요. 갈등 구조 자체는 <어메이징>보다도 더 복잡했죠. 그러나 할 일이 많은 것과 허우적대는 것은 다릅니다. 도입에 <어메이징>의 스파이더맨을 '할 일이 많은 스파이더맨'이 아닌 '일에 부대끼는' 스파이더맨이라 부른 것도 그 이유입니다.

문제는 편집입니다. 정신 사나워도 모든 게 제 자리에 있었던 <스파이더맨3>와 달리,<어메이징>은 여러 개의 플롯을 동시에 운영할 때 쓸 수 있는 최악의 편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 하다 갑자기 다른 이야기 하기'요. 죽은 부모와의 화해, 여자친구 그웬과의 감동적인 이야기, 어느 '어른 아이'의 성장기, 악당과 맞서는 영웅의 이야기까지.

한 편의 영화에 흘러가는 네다섯 편의 이야기는 그 어느 것 하나 서로 유려히 섞여들지 않아요. 피터 파커는 악당 일렉트로와 '싸우다 말고' 죽은 부모의 비밀 연구실을 발견해 내고, 자신을 키워준 숙모와 '갈등하다 말고' 여자친구와 사랑을 속삭입니다. 이러다 보니 네다섯 개의 이야기 모두 이야기가 가진 가능성의 정점에 이르긴커녕 도리어 서로가 서로를 끌어내리는 모양새가 돼 버립니다. 심지어 대단히 중요한 이야기 한 개는 제대로 끝내지도 않았습니다. 피터 파커의 부모 이야기 말예요. 그래서, 그렇게 우리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구나 하는 사실을 피터가 깨달아서 뭐가 어쨌다는 건가요?

악당 일렉트로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겠군요. 영화는 스파이더맨의 옷 색깔이 '성조기 색'이란 사실을 새삼 강조하고,그의 적수로 일렉트로라는 가공할 힘의 악당을 세웁니다. 그리곤 일렉트로가 가진 가공할 힘은 본인이 원한 것이 아니고, 그를 악당으로 만든 건 '우리 모두의 무관심과 조롱'이었다는 이야길 하죠. 네, 이때부터 스파이더맨과 일렉트로의 대결은 미국과 반미 국가의 힘싸움에 대한 은유로 그 해석의 범위가 확장됩니다.

문제는 이 설정이,<아이언맨3>에서 수많은 비평가들이 박수를 보낸 바로 그 설정과 거의 같다는 겁니다. 유사성 자체야 문제일 건 없습니다. 그러나 설정은 같되 그 설정이 주는 감흥의 깊이가 다르다면, 그건 문제가 돼죠.

<아이언맨3>가 이 민감한 이야기를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풀어가는 동안, <어메이징>은 '스파이더맨은 미국,일렉트로는 불쌍한 적국'이라는 방정맞은 등식을 던지곤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관객들은 '그래서 어쩌란 건지'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죠. 일렉트로라는 자가 (반미 국가들이 그렇듯) 대단히 불쌍한 인물임을 설명하는 데 적잖은 시간을 들였음에도, 관객들이 그의 최후에 '악당이 죽었다'는 데 대한 통쾌함 이외의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것은 <어메이징>의 각본이 소재가 가진 가능성의 깊이를 조금도 끌어내지 못했다는 노골적인 증거입니다.

결국 남는 건,뻔하디 뻔한 블록버스터의 '뉴욕 파괴' 장면입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이야기는,상영 종료 30분 전 항공기와 초고층 빌딩,시계탑 등으로 무대를 바꾸어가며 모든 것을 때려부수고 폭파시켜요. 흥이 안 날래야 안 날 수가 없습니다. 내내 삐딱한 눈으로 영화를 본 저조차도 마지막 30분은 꽤나 즐겼으니까요.

블록버스터에 대한 기대의 수위가 정확히 그 지점, 그러니까 '마지막 삼십 분 때려부수기'에 있는 관객이라면 관람을 굳이 만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한 철 장사 블록버스터'를 넘어서는 뭔가 복잡한 이야기를 해보려다 마구잡이로 꼬여버린 이 영화가 '좋은 영화'로 불러도 좋냐고 물으신다면,저는 그다지 좋은 답변을 드리긴 어려울 것 같군요. 크나큰 야심만큼이나 아쉬움이 큰 영화,<어메이징 스파이더맨2>였습니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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