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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11월 인도네시아 가룻 영웅 묘지에 세 명의 일본인이 인도네시아 독립영웅으로 추대되어 재매장되었다. 이들은 모두 1949년 인도네시아가 네덜란드를 상대로 독립전쟁을 벌일 때 네덜란드 군에 의하여 총살된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 중 한 명의 분골용 관은 인수할 사람조차 없었다. 아무도 유족들에게 연락을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일본의 유족들에게만 연락을 취했다. 한국 정부는 무심했다.

그의 이름은 양칠성. 고향은 완주 삼례. 일본식 이름은 야나가와 시체에이, 인도네시아 이름은 코마르딘이었다. 인도네시아 이름이 독특하다. 코마르딘, 그 의미는 '인도네시아를 비추는 달'이라고 한다. 인도네시아 주민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그의 묘비는 1995년이 되어서야 한국인 양칠성으로 바뀌게 된다.

조선과 인도네시아 독립을 위해 싸우고 네덜란드군에 총살당하다

그의 인생은 살아서나 죽어서나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는 일제하 군무원으로 인도네시아에 배치되어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했다. 당시 조선인 군무원들은 인도네시아에서 고려독립청년당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양칠성도 필시 관여했을 것이다. 고려독립청년당원들 중 12명이 2008년부터 순차적으로 한국 정부에 의하여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양칠성의 죽음을 가족들에게 알려준 것은 한국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 1975년 독립영웅 추대식에 참석했던 우쓰이 아이모, 무라이 요시노리씨가 1978년 여동생에게 전한다. 어머니는 이미 1966년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매일같이 아들이 귀향열차를 타고 돌아올지 모른다고 하면서 전주역에 나가셨다고 한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우쓰이 아이모, 무라이 요시노리씨는 이 이야기를 1980년 <도하 조선인의 반란>라는 이름으로 출판했다. 한국어판은 <적도에 묻히다>라는 제목으로 2012년에 나오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독립영웅 양칠성, 그리고 한국의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고려독립청년당 당원들. 이들은 전쟁과 식민의 시대, 독립과 해방의 시대에 우리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민족해방, 인간해방이라는 인류의 대의를 위해 목숨을 바쳤다.

이들이 겪은 개인적인 고민의 뿌리는 정체성일 것이다. 민족적 정체성이 이들을 가장 괴롭혔을 것이다. 이들은 조선인이었다.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할 정도로 조선의 독립을 원했던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다른 한편 일본군 군무원으로서 연합군 포로를 감시했다. 연합국의 입장에서 보면 전범이다. 이런 이유로 이들 중 일부는 실제로 B,C급 전범으로 처벌받는다.

민족적 정체성을 넘어 민족·인간해방이란 인류 보편의 가치로

한편,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서는 일본인, 인도네시아인과 함께 네덜란드 군대와 전투를 벌인다. 인도네시아를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 군인, 식민지 피압박민중인 인도네시아인, 조선인이 함께 군대를 조직한 것이다. 독립전쟁의 상대방인 네덜란드는 일본을 상대로 전쟁을 하여 승리한 반파시즘 연합전선의 일원이다.

한마디로 미국, 영국, 프랑스, 중국의 편이었다. 그런데 조선의 독립을 위해 일본과 싸웠던 조선인 청년이 일본인과 손잡고 네덜란드와 싸우게 된다. 이쯤 되면 누가 옳고 누가 정의인지 알 수가 없다. 좁은 편가르기 시각, 좁은 민족적 시각으로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다.

문제 해결의 유일한 방법은 바로 인류 보편의 가치에 있다. 인류 보편의 가치는 착취와 억압이 없는 세상,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운 상태인 민족해방, 인간해방이다. 이러한 국제적인 시각이 없었다면 양칠성은, 그리고 고려독립청년당원들은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그리고 인도네시아의 독립을 위해서 총을 들고 싸우지 못했을 것이다. 이러한 대의 앞에서는 민족적, 인종적, 문화적, 종교적, 계급적 차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과거의 식민과 독립의 아픈 역사는 이러한 인류 보편의 가치를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 좁은 민족적 시간, 좁은 경제적 이해관계로는 해결할 수 없다. 너무 단기적이고 너무 투쟁적이고 너무 계산적이기 때문이다. 민족해방, 인간해방을 위해 싸웠던 이들, 인류의 자유와 인권, 평등과 평화를 위해 싸웠던 진정한 국제주의자들이 소중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물론 가해자의 철저한 반성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국가권력 피해자의 번역- 역사(歷史)는 역자(譯者)를 통해서도 이어진다

조선인 군무원 이야기를 추적한 일본 책 '적도에 묻히다'는 김종익씨가 번역했다. 김종익씨가 누구인가? 그 역시 국가권력의 피해자이다. 그는 2008년 KB한마음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중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불법사찰을 당했다. 그로 인하여 대표이사직을 강제 사임하고  지분을 강제로 이전했다.

개인적으로는 문재인 의원과 함께 진행한 검찰개혁 콘서트에 나와 검찰의 피해자로 증언해 주신 인연이 있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밤을 새울 정도로 풍부한 교양을 가지고 있다. 그는 민간인 사찰의 피해자가 된 이후 몹시 괴로운 인생을 보냈다.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였다고 스스로 말한 적이 있다.

정리해야 할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피해자가 번역했다는 것은 우연일 수 없다. 김종익씨의 풍부한 인문학 소양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필시 인류 보편의 가치, 인류의 자유와 인권, 평등과 평화가 이들을 이어주는 것이리라. 또한 좋은 역사(歷史)는 좋은 역자(譯者)를 통해서 이어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린다.

덧붙이는 글 | * 이 칼럼은 한국미래발전연구원 홈페이지(www.futurekorea.org)에 동시 게재합니다.
*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민주화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사법위원장, 참여정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등을 지냈으며 <문재인 김인회의 검찰을 생각한다>(2011) 등의 저서를 냈습니다.



태그:#양칠성, #코마르딘, #민족해방, #김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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