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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하는 사람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게이팝'이란 흔히 게이들이 주로 좋아하는 음악이나 아티스트를 일컫는다. 마돈나와 브리트니 스피어스, 이효리와 보아처럼 게이들은 유독 한 시대를 풍미한 여성 팝스타에 진한 애정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직접 그 가수의 춤과 노래를 따라하거나, 소위 '빙의'되었다고 할 정도로 강한 동일시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런 현상은 이성애자 남자팬이 그녀들을 좋아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심리적 역동이다.

이태원 등지의 게이클럽에 가면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는 기묘한 광경이 펼쳐진다. 바로 20대 초중반의 파릇한 남학생들이 여가수들의 음악에 맞춰서 준전문가 수준의 군무를 떼로 추고 있는 것이다.

여자노래에 맞춰서 춤을 춘다고 해서 다 게이라고 할 수도 없고, 또 게이라고 해서 다 여가수에 동일시 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런 풍경은 게이들만의 문화라고 해도 될 만큼 특이한 풍경이긴 하다.

또한 이런 모습들 때문에 간혹 사람들은 여자춤을 추는 게이와 트렌스젠더 사이에 무슨 차이점이 있는지 헷갈려하기도 한다. 특히나 소위 '끼순이'라고 불리는 게이들의 경우는 말투도 여성스럽고, 그들 사이에서 서로 '언니'하면서 지내는 언니 문화가 있어서 흡사 정말 여자 같아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내 생각에 끼순이와 트렌스젠더가 겉보기에는 비슷해보일지는 몰라도 그 세밀한 역동을 들여다보면 둘은 완전히 다르다고 본다.

트렌스젠더의 경우 소위 자신의 타고난 신체적인 성과 정신적인 성이 반대되어 있는 경우로, 하리수가 여자춤을 추고 여자처럼 행동하는 건 자기 자신을 진정 여성으로 느끼기 때문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반면 끼순이의 춤이나 언니 문화는 이성애 남성중심적인 문화에 대한 반발이나 대안적인 경향이 더 강하다. 즉 남성중심적이고 마초적인 문화권에서 상처를 받았고, 그래서 게이들간의 관계에서는 꼰대처럼 굴지 않고 반대로 하고 싶은 심리 같은 것이 있다. 물론 대다수의 끼순이들이 이런 것을 의식하면서 행동하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인 성향의 문제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런 영향도 적지 않다고 본다.

쉽게 말해 끼순이들은 여자들을 흉내내고 풍자하고 비틀고(그를 통해 전통적 규범에 저항하며), 필요에 따라 잠시 빌려쓰는 가면처럼 쓱 썼다가 빠져나올 뿐, 그들 스스로를 진정 여자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게의 게이들의 경우 사춘기 시절, 그 나이 또래 남자들이면 한창 주먹 싸움을 하고 서열을 정하는 시기에서 소외되어 있다. 왜 그럴까? 아니 그 전에 남자들은 왜 사춘기에 난폭해지고 서로 서열을 정하려고 하는가? 바로 여자 때문이다. 그런 역동에 끼일 이유도 없고, 오히려 연정을 품는 상대가 같은 반 남자애들인 게이들의 경우에는 정서적으로 이성애자 남자 무리에 융화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그들에겐 임재범이나 박완규 등의 강한 마초 뮤지션들의 노래보다는 여성 뮤지션들의 음악이 더 정서적으로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이효리, 보아처럼 멋있고 주체적인 여성 뮤지션의 활약에 대리만족을 느끼기도 하고, 반면에 이소라나 김윤아처럼 마이너리티적인 섬세하고 슬픈 감성을 노래하는 뮤지션에게는 위로와 공감을 받는다. 앞서 이야기한 '끼순이의 춤' 현상은 이러한 정서적 맥락과 더 가까워보인다.

한편으로 이러한 현상에는 한계도 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가오나시'처럼 끼순이들은 그들 자신의 감성을 직접 대변하거나, 혹은 그렇게 해주는 게이 뮤지션이 부재하기 때문에 주로 기존의 여성뮤지션들의 목소리를 빌려서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성적 감수성은 여성을 대변하는 것이기에 게이의 감수성과는 또 미묘한 차이가 있다. 여자들은 이쁘장한 게이가 자기보다 더 예쁘게 여자가수 춤을 추는 것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그들처럼 되고 싶어하진 않는다. 또한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게이들의 경우 그들만의 문화적 정체성이 있다고 본다. 개인의 성향이야 다를 수 있지만, 성적지향으로 인한 공통의 경험과 그에 수반되는 정서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의 대중문화산업 안에서 아직까지는 퀴어정체성을 가지고 자기 노래를 얘기하는 아티스트가 나올 정도로 산업이 무르익지 않았을 뿐이다.

아쉽게도 커밍아웃한 유명 해외 뮤지션들은 많아도, 그들 자신이 '퀴어 정체성'을 가지고 '자기 얘기'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다. 하기야 전체 인구의 5~10% 남짓한 시장을 겨냥해서 노래한다는 게 대중가수로서 어디 쉬운 일이겠나.

얼마 전에 나온 신화의 신곡 안무인 '보깅 댄스'가 게이문화에서 따온 것을 아는지? 보깅댄스는 여성스럽기도 하지만 또한 남성적인 절도도 있고 게이만의 독특한 감성이 잘 나타나는 춤이다. 언제쯤이면 남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고, 게이 스스로 게이팝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태그:#퀴어, #LGBT, #성소수자, #동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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