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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의 이미지 중 하나는 '달콤함'이다. 하지만 사탕은 달지언정 사탕의 역사는 결코 달지 않다.
 사탕의 이미지 중 하나는 '달콤함'이다. 하지만 사탕은 달지언정 사탕의 역사는 결코 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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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화이트데이면 많이들 주고받는 사탕. 이 사탕의 이미지 중 하나는 '달콤함'이다. 하지만 사탕은 달지언정 사탕의 역사는 결코 달지 않다. 왜냐하면, 사탕에는 세계 피압박 민족들의 슬픈 역사가 묻어 있기 때문이다. 

사탕은 설탕으로 이루어져 있고, 설탕에는 당분이 들어 있다. 원시시대 이래, 인간은 당분을 열렬히 추구했다. 다른 영양소와 비교할 때, 당분은 매우 신속히 에너지로 전환된다. 오늘날처럼 주거 공간도 확보되지 않고 인간의 집단방어체제도 확립되지 않은 시절에, 인간이 맹수의 접근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오로지 '36계 줄행랑'이었다. 그러자면 빨리 달려야 했고, 몸에 당분도 많아야 했다.

사탕수수에서는 설탕이 추출된다. 인간이 이 비밀을 알게 된 것은 기원전 400년 이전의 어느 시점이었다. 이 시기에 인도에서 처음으로 사탕수수 재배가 시작됐다. 그 전에 인간은 주로 과일이나 꿀에서 당분을 섭취했다. 사탕수수는 인간에게 좀더 쉽게 당분을 얻는 방법을 제공해 주었다.

하지만 사탕수수 재배는 신속히 확산되지 못했다. 사탕수수 재배와 설탕 추출에는 대규모 집단노동이 필요했다. 고대에는 노예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대규모 집단노동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탕수수 재배는 일부 지역에서 제한된 규모로만 이루어졌다. 설탕을 주재료로 하는 사탕의 생산도 매우 한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끝내 사탕을 맛보지 못하고 죽은 소헌왕후

이로 인해 고대에는 사탕이 매우 귀했다. 왕이나 귀족 같은 특권층만 사탕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였다. 고대의 특권층은 이것을 주로 의약품으로 활용했다. 사탕이 차와 더불어 의약품으로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은 오늘날처럼 질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인간의 건강 상태가 지금과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다.

유럽인들의 감독 하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하는 아프리카인 노예들. 19세기 때 나온, 테오도르 브래이의 석판화.
 유럽인들의 감독 하에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하는 아프리카인 노예들. 19세기 때 나온, 테오도르 브래이의 석판화.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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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탕수수는 연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이거나 연평균 강우량이 1200~2000㎜인 지역에서 재배된다. 우리 민족의 영역인 만주나 한반도에서는 이런 기후조건이 등장한 적이 없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대외무역을 통해 사탕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옛날 한국에서 사탕이 얼마나 귀했는지는 역사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조선 세종 때인 1446년에 소헌왕후가 병에 걸렸다. 훗날의 기록인 문종 2년 5월 14일자(양력 1452년 6월 1일자) <문종실록>에 따르면, 소헌왕후의 아들인 세자 이향(훗날의 문종)은 어머니를 열심히 간호했다. 병중의 소헌왕후는 사탕을 맛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문종은 끝내 구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로 소헌왕후는 죽었다.

소헌왕후의 삼년상이 아직 안 끝났을 때였다. 삼년상은 윤달을 제외한 25개월 동안이었다. 어머니를 상실한 슬픔이 아직 가시지 않은 이때, 누군가가 문종에게 사탕을 바쳤다. 사탕을 받고 어머니 생각이 난 문종은 어머니의 혼전(임시 사당)으로 사용되는 창덕궁 휘덕전으로 갔다.

거기서 문종은 어머니의 위패 앞에 사탕을 바치고 눈물을 흘렸다. '왜 이제야 사탕을 구했단 말인가!'하고 애통해 했을 것이다. 이렇게 중국·여진족·오키나와·대마도·일본과 무역이 왕성한 조선의 왕실에서도 구입하기 힘들 정도로, 사탕은 진귀한 상품이었다.

사탕의 희소가치를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가 있다. 조선 제14대 주상 선조는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17일 만인 선조 25년 4월 30일(양력 1592년 6월 9일) 백성들의 야유를 받으며 한양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했다.

그날 저녁, 선조의 일행은 임진강 앞에 당도했다. 강가에 왔지만 곧바로 배를 구하지 못해 오랫동안 대기해야 했다. 급히 피난하는 바람에 음식을 챙기지 못해, 선조는 밤 아홉시가 되도록 저녁식사를 하지 못했다. 허기진 선조는 내시에게 "술과 차라도 가져오라"고 했지만, 그마저도 없었다.

그때, 내의원(왕실 병원)에 근무하는 용운이란 사람이 선조에게 다가갔다. 그는 갓을 벗은 뒤 상투 속에서 사탕을 꺼냈다. 양력 6월에 아침부터 피난하느라 정신이 없었으니, 상투 속의 사탕에는 땀 냄새가 좀 배어 있었을 것이다.

용운은 임진강 강물에 사탕을 씻은 뒤 왕에게 바쳤다. 강물에 씻은 것은 상투 속에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딱딱한 사탕을 허기진 왕에게 곧바로 줄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평소 같으면 이런 행동은 불경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그냥 넘어갔다.

사탕을 먹고 기력을 회복한 선조는 얼마 뒤 임진강을 건넜고, 새벽 1시쯤에야 고대하던 저녁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선조 일행 때문에 강을 건너지 못한 백성들은 그 시각에 선조를 저주하고 있었을 것이다.

선조(재위 1567~1608년)와 비슷한 시기에 영국을 통치한 엘리자베스 1세(재위 1558~1603년)는 비교적 풍부하게 사탕(혹은 설탕)을 맛보았다. 당시의 영국은 조선보다 부유하다고 보기 힘든 나라였지만, 영국왕은 조선왕에 비해 풍부하게 사탕을 맛볼 수 있었다. 어찌나 사탕을 많이 먹었던지 그의 이빨은 거의 다 썩었다. "여왕의 치아는 충치로 새까맣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생겼을 정도다.

사탕 대중화 계기는 유럽의 아프리카·아메리카 침략

지금까지의 등장인물들이 거의 다 지배층인 데서 느낄 수 있듯이, 사탕의 역사는 오랫동안 주로 지배층의 역사였다. 이것이 유럽에서 대중화된 것은 17세기 이후였다. 그 계기는 유럽의 아프리카·아메리카 침략이었다.

콜럼버스·마젤란 등의 활약에 힘입어 글로벌 침략자로 변신한 유럽인들은 아메리카에서 광대한 사탕수수 농장을 확보하고, 아프리카에서 수많은 노예를 확보했다. 이들은 아프리카에서 확보한 노예들을 아메리카의 사탕수수 농장에 배치했다. 아프리카인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조건에서 농장 생활을 했는지는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

사탕수수 농사 및 설탕 채취는 대규모 집단노동을 필요로 했다. 유럽인들은 아프리카·아메리카 침략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산업 부지와 인건비 문제를 거의 공짜로 해결한 것이다. 이렇게, 아메리카인들이 빼앗긴 땅에 아프리카인들이 대거 투입된 상태에서 사탕수수 대량 재배와 설탕의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다. 

벌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인 노예. 프랑스 작가 장 밥티스트 드브레의 작품.
 벌을 받고 있는 아프리카인 노예. 프랑스 작가 장 밥티스트 드브레의 작품.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영문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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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이 아프리카·아메리카에 진출하기 시작한 16세기 때만 해도 설탕이나 사탕은 고가품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해외 개척자들은 두 대륙의 토지 및 노동력을 활용해서 사탕수수 재배에 목숨을 걸었다.

이렇게 해서 사탕수수와 설탕이 대량으로 생산되다 보니, 고가품이던 사탕의 값이 떨어지고 이로 인해 유럽에서 사탕이 대중화될 수 있었다. 아메리카의 땅과 아프리카의 인력이 사탕 가격 하락에 기여했던 것이다.

산업혁명의 상징물과도 같은 증기기관차가 활성화된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생산된 설탕을 전 세계에 신속히 수출할 목적으로 증기기관차를 본격 활용했던 것이다. 덕분에 사탕은 20세기 들어 전 세계적으로 대중화됐다.

사탕의 역사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사탕의 대중화는 땅을 빼앗긴 아메리카인들과 자유를 빼앗긴 아프리카인들의 희생이 낳은 결실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 덕분에 사탕의 단맛을 싼값에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사탕의 대중화 덕분에 유럽인들은 돈을 벌었지만, 아프리카·아메리카인들의 가슴에는 피멍이 들었다. 그래서 사탕의 단맛에는 피압박 민족들의 피와 땀이 묻어 있다. 사탕은 달콤하지만 그 속에 담긴 역사는 이처럼 결코 달콤하지 않다.


태그:#화이트데이, #사탕, #설탕, #사탕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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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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