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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남북 고위급 접촉 회의 전 남북이 악수하는 모습.
 14일 남북 고위급 접촉 회의 전 남북이 악수하는 모습.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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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분.

남의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북의 원동연 조선노동당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각각 수석대표로 나선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남북한은 총 5시간이 넘게 대화를 나눴다.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남북의 고위급이 공식자리에서 만난 시간은 총 113분이었다.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조문차 방남한 김기남 조선노동당 비서가 이명박 대통령과 현인택 장관을 만났을 때다. 그에 비하면 박근혜 정부 출범 1년 만에 이뤄진 첫 만남 치고는 꽤 길게 만난 셈이다.

12일 접촉을 마친 뒤 인사도 나누지 않고 헤어졌다가 14일 다시 만난 남북은 이틀 동안 전체회의 4회와 수석 대표 접촉 3회를 통해 단기적으로는 이산가족 상봉 성사, 장기적으로는 '박근혜-김정은 직통라인' 구축이라는 성과를 만들었다.

남은 이산가족 상봉 얻고, 북은 비방·중상 중단 성과

남북 고위급 접촉이 12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회담장 로비에서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북측 단장인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남북 고위급 접촉이 12일 판문점 우리측 지역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회담장 로비에서 우리 측 수석대표인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과 북측 단장인 원동연 통일전선부 부부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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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의안 1번은 '이산가족 상봉 예정대로 진행', 2번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 중단'이다. 1번은 남이, 2번은 북이 그동안 강하게 원해온 것이었다는 점에서 이번 접촉은 일단 '윈윈'이라고 평가를 받고 있다.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정성장 박사는 "북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관련해 남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했다"고 평가했다. 12일 첫 접촉 때는 24일 시작되는 한미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을 이산가족 상봉행사(20~25일) 이후로 연기하라고 요구했던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과 한미군사훈련은 별개"라는 박근혜 정부의 주장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그동안 한미 훈련 시기에 고강도 비판을 가하면서, 실무수준의 접촉도 피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수용'은 대단히 이례적이다.

정 박사는 "반면 북한은 (지난 1월 16일 국방위원회 명의의) '중대제안'에서 요구한 상호 비방·중상 중단이라는 성과를 얻었는데,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라는 '최고 존엄'에 대해 예민한 북한에게는 대단히 중요한 부분"이라며 "언론은 어찌할 수 없지만, 군의 대북 심리전이나 탈북자 단체들의 전단 살포는 박근혜 정부가 막아 줄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에 대해 북한 내부에 선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편리한 날짜에 고위급 접촉"...박근혜-김정은 직통 라인 구축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적극 노력하고, 편리한 날짜에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했다'는 합의안 3항은,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 사이에 직통라인이 구축됐다는 점이다.

이번 접촉 자체가 북한이 남북 관계 분야 2인자인 원동연 부부장을 내세우면서 처음부터 대화 상대로 청와대를 지목하고, 청와대가 이에 응하면서 성사된 것이었다.

정성장 박사는 "북한으로서는 이번에 청와대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직접 채널을 구축했다는 것이 최대성과"라며 "'이석기 사건' 등과 관련해 국가정보원에 대한 적대감이 극심하고, 통일부는 무력한 부서로 인식하고 있는 북한이 장기적으로 정상회담까지 가는 교두보를 확보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도 "이번 접촉에서 가장 주목할 것은 '편리한 시기에 고위급 접촉'을 갖기로 했다'는 점"이라며 "이번에 만들어진 최고지도자간의 대화 채널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 등의 현안 해결과 함께 더 나아가 한반도 위기관리를 해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이날 접촉 결과를 보도하면서 자신들의  대표단을 '국방위원회 대표단'이라고 처음 표현한 것도 이 부분과 연결된다. 국방위가 북한 헌법상 최고 권력기구라는 점에서 북한도 이번 접촉이 남북의 최고 결정기구간의 만남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손 내미는 북, 아직은 팔짱 낀 남

그렇다면 이번 합의가 파국 상태인 남북관계를 진전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유보적인 답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일단 북한은 매우 적극적이다. 12일과 이날 접촉 자체가 북한이 먼저 제안한 것이었다. 김규현 차장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접촉에서도 한미 군사훈련 기간 중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많은 양보를 했음을 강조하기 위해 "박근혜 정부가 신뢰를 그렇게 강조하니 우리가 '통큰 용단'을 내려 믿어보겠다"고 말했다.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하고 있는 북한은 대중, 대미 관계 개선을 위해 우선 대남 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아직은 지켜보겠다는 태도가 강하다. 12일 접촉이 '사실상 결렬'로 끝난 뒤에도 먼저 손을 내밀지 않은 것이 이를 보여준다.

결정적인 장애물은 역시 북한 핵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초부터 계속된 북한의 '북남관계 개선 요구'를 '위장평화공세'라고 일축하면서, '비핵화'를 통해 그 진정성을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12일 접촉에서도 우리 대표단은 "비핵화 의지를 행동으로 나타내라"고 북한을 몰아붙였고, 북한은 이에 대해 "핵문제는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김규현 차장이 브리핑에서 "북측도 우리측이 설명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취지에는 이해를 표했다"면서 "이 과정에서 현안문제에 대해 남북 상호간의 입장 차를 확인하기도 했다"고 밝힌 대목도 비핵화 관련 논쟁으로 보인다.

정성장 박사는 "우리 정부는 주도적으로 북한과의 협상을 이끌어가려 하는 게 아니라 북한이 제안하면 그에 응하는 수동적 대응 태세를 보이고 있다"며 "실리적 차원을 넘어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태그:#고위급 접촉, #김규현, #원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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