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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일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오두리 역을 맡은 배우 심은경

22일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영화 <수상한 그녀>에서 오두리 역을 맡은 배우 심은경 ⓒ (주)예인플러스


한 생명의 탄생은 한 여인을 '어머니'로 만든다.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어머니를 어머니라 부르며 성장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여자로 살았을 과거를 상상하지 못하고,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어째, 그것이 별 이상할 것 없는, 당연한 세상이 됐다.

그렇게 어머니의 풋풋한 처녀 시절, 혹은 더 나아가 소녀 시절의 이야기는 자식의 탄생과 함께 과거에 봉인된다. 그때 그런 어머니의 과거를 사랑한 아버지라도 가끔씩 자식들에게 '썰'(?)을 풀어주면 좋으련만, 가부장적인 한국 사회에서 아버지의 선택은 보통 위엄을 가장한 침묵이다. 그래서 우리는 간혹 케케묵은 앨범을 꺼내 흑백 사진 속 어머니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가끔 집에 찾아 오는 어머니의 옛 지인 또는 형제자매들의 이야기를 통해 어머니의 과거였을 한 여인의 이야기를 듣는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우리가 간혹 어머니를 추억하며 꺼내보던 그 앨범의 여러 사진들을 이어 붙여 활동사진으로 만든 느낌의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나서야, 난생 처음 '어머니의 과거'가 궁금해졌다. 한 여인의 청춘이 궁금해졌다.

칠순을 넘긴 오말순(나문희 분)은 아들 현철(성동일 분)을 대학교수로 키워냈다는 사실을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인물이다. 입에 밴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와 차진 욕, 잔소리도 아들 하나를 훌륭히 키워내기 위해 갖은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며 어쩔 수 없이 체득한 산물이다. 하지만 며느리 애자(황정민 분)는 이런 시어머니 말순의 말투와 참견, 잔소리 등을 못 견뎌 하고, 결국 화병으로 쓰러진다.

고부간의 갈등으로 괴로운 현철은 명색이 노인문제 전문 교수이면서도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하고, 말순을 요양원으로 보내자는 애자의 제안으로 가족회의를 연다. 말순은 자신을 요양원에 보내는 문제를 두고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엿듣다 충격에 빠진다.

밤길을 방황하던 말순. 말순은 영정사진을 미리 찍어 둘 생각으로 '청춘사진관'이라는 곳에 들러 오랜만에 화장을 한다. 사진을 찍고 다시 거리로 나온 말순. 달리는 버스를 따라잡을 정도로 급(?) 건강해진 몸에 차창에 비친 얼굴은 영락없는 20대의 동안이다. 오말순은 이름을 오드리 헵번에서 딴 '오두리'(심은경 분)로 바꾸고, 지금 이 순간을 신이 자신에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며 마음껏 즐기기로 결심한다.

성실한 코미디에 물 만난 심은경이 만났을 때

 22일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20대의 몸으로 돌아간 오두리가 야한 속옷을 보고 흐뭇해 하는 장면.

22일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20대의 몸으로 돌아간 오두리가 야한 속옷을 보고 흐뭇해 하는 장면. ⓒ (주)예인플러스


영화의 완성도를 따지기 이전에 '매력'이 터지는 영화들이 있다. 아주 빤한 설정의 이야기에 등장인물의 동선과 대사 등이 관객의 예상 안에서 놀아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웃거나 울게 되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그런 영화들이 보통 실패하지 않는 이유는 철저한 기획력 아래 흥행공식을 그대로 따른 시나리오, 안정된 연출, 스타성과 연기력을 겸비한 배우를 캐스팅하는 등의 치밀한 요소들을 갖췄기 때문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요소가 관객의 눈과 귀를 속일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획영화 한 편이 흥행하느냐 실패하느냐의 차이는 속아 넘어가는 관객 수를 넘어 알면서도 속아주는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얼마만큼 끌어들이느냐가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 <수상한 그녀>는 정말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기획영화다. 빤할 것을 알면서도 관객이 이 영화에 기분 좋게 속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완성도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잘 만든 코미디의 흥행 공식을 그대로 답습했다는 전문가들의 평에도 동의한다. 전반적인 이야기 구성이 헐거우며, 결말에 다다를수록 안일한 선택을 반복하는 지점들은 여러 모로 아쉽다. 오두리 역을 제외하고 주변 캐릭터들의 매력이 잘 살아있지 못하며 각 인물과 오두리와의 앙상블도 기대만큼 빼어나지 못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코미디 장르에 최대한 충실하고 있어 예쁘고, 기특하다. 어떻게든 관객을 한 번이라도 더 웃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게 고스란히 보인다. 말 그대로 정말 '성실한' 코미디 영화다. 불성실하고 안일한 이야기의 단점은 이렇게 영화 곳곳에 놓인 성실함이 적잖이 감싸고 있다. 적어도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되니 상업영화로서는 썩 훌륭한 태도를 지닌 셈이다.

영화는 별 지루한 구석 없이 2시간에 달하는 상영 시간을 웃음으로 빼곡하게 채워낸다. 후반부에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감동 코드를 제외하면 가족 코미디 영화로서 정말 손색없는 상품이다.

게다가 예상을 뛰어 넘는 카메오를 가장 마지막에 등장시키며 관객이 놀란 마음에 기립박수를 치게 되는 광경까지 연출하고 있으니, 만약 이 모든 것이 감독의 계산이었다면 이 영화는 정말 잘 기획된 코미디 영화라 할 수 있다. 예측하건대 이번 설날연휴를 기점으로 <수상한 그녀>는 더욱 잘 될 것이다. 그만큼 <수상한 그녀>는 설날을 충분히 풍요롭게 할 수 있는 매력을 갖춘 영화다.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의 기원은 두말할 것 없이 단연, 배우 심은경이다. 갓 스물 한 살이 된 여배우가 70대 할머니의 정신을 탑재한 채 말투와 행동을 고대로 연기하는 것, 참 쉽지 않은 연기였을 테다. 그런데 심은경은 정말 이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만약 이 오두리라는 역할을 연기력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신인 여배우가 스타성만을 앞세워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영화는 콩트의 느낌으로 가볍게 흩뿌려졌을 것이며, 할머니는 개그 프로그램의 콩트 속 할머니처럼 단편적이며 상투적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하지만 심은경은 확실히 달랐다. 영화를 보기 전, 그의 연기가 자칫 콩트 연기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오두리의 등장과 함께 이 우려는 사라져버렸다. 심은경은 자신의 얼굴 근육을 자유롭게 변화시키며 각 상황에 맞는 표정 연기로 70대의 오말순과 20대의 오두리를 번갈아가며 떠올리게 만들었다.

예를 들어 '반지하밴드'의 보컬로 노래를 부를 때나 한PD(이진욱 분)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영락 없는 20대 숙녀의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바탕 박씨(박인환 분)를 소탕해 혼쭐을 낼 때는 흡사 '순악질 여사'가 떠오를 정도로 양 눈썹이 올라갈 대로 올라가 있다. 이렇듯 심은경의 섬세한 연기로 완성된 오두리를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진 매력은 충분해 보인다.

오두리의 청춘, 좀 더 다양하게 즐겼더라면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영화 <수상한 그녀>의 한 장면. ⓒ (주)예인플러스


영화 <수상한 그녀>는 타율이 좋은 코미디에 배우의 매력까지 겸비한 괜찮은 영화다. 다만, 몇 가지 아쉬움은 지적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첫 번째로 오말순이 다시 찾은 20대의 이야기가 가수란 꿈과 애매한 풋사랑에 한정된 점이 아쉽다. 오말순의 실제 20대는 가난한 형편 속에서 아들 현철을 어떻게든 잘 키우려고 발버둥 쳐야했던 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랬던 그녀가 20대의 삶을 다시 살게 되었을 때에는 자신의 과거를 보상하고도 남을 만큼, 다양하고 화려한 방식으로 청춘을 즐겼어야 했다.

하지만 오두리는 가수의 꿈을 이룬 것 외에 자신의 청춘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다. '70대로 노쇠한 정신이 발목을 잡았을 것'이라고 애써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애매한 태도로 인해 영화는 '수상한 그녀'를 진짜 수상하게는 만들지 못했다. 한PD와의 사랑 뿐만이 아니라 영화는 좀 더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오두리의 청춘을 응원할 '꺼리'들을 마련했어야 했다. 비슷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대리만족할 수 있도록 좀 더 발전된 형태로 이야기를 진행했어야 했다.

두 번째로 아쉬운 점은 주변 캐릭터들이 단 한 장면을 위해서, 혹은 단 한 가지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기능적으로 연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성동일과 김슬기다. 극중존재감이 미미하다 못해 허약한 김슬기의 경우 취업재수생 역의 반하나 역으로 등장하면서 밥 먹고 자는 모습 외에 딱히 연기라고 할 만한 장면들이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왜 그를 캐스팅했는지 계속 의구심을 갖게 되는데, 이는 결국 결말까지 가서야 비로소 해소된다.

김슬기가 이 영화에 캐스팅 된 이유는 바로 '노래를 잘 하는 여배우'였기 때문. 성동일도 마찬가지다. 그가 캐스팅된 이유는 마지막 장면에서 잘 울어줄 아버지 느낌의 배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좋은 배우들을 기용해 놓고도 영화는 이들을 제대로 써 먹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수상한 그녀>는 되도록 사람이 꽉 찬 극장에서 볼 것을 권해드린다. 만약 극장 안에 관객 연령층마저 다양하다면 최적의 관람 환경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이 영화의 코미디가 상당부분 군중심리에 기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별로 웃기지 않다고 생각하는 장면인데 주변에서 웃으면 이상하게 웃긴 것 같은 경험, 이 영화에서라면 가능하다.

게다가 영화 마지막에는 관객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지르는 광경도 목격할 수 있을 테니, 영화 제목만큼이나 신기하고 수상한 경험을 극장에서 하게 될 것이다. <수상한 그녀>와 함께라면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jksoulfilm.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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