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가 감독하고 틸다 스윈튼, 톰 히들스턴이 주연을 맡은 뱀파이어 영화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가 누적 관객수 2만7천 명(1월 25일 기준)를 기록했다.

<설국 열차>에 출연했던 틸다 스윈튼, 조 허트와 마블의 토르 시리즈에서 로키를 연기한 톰 히들스턴이 연기하는 작품이라 대중의 관심을 받았고, 짐 자무시 감독의 작품을 오랫동안 보아왔던 이들도 개봉 전부터 기대했었다.

밤과 권태 그리고 욕망

영화는 밤하늘을 비추며 시작한다. 그러다 화면은 시계 방향으로 돌아간다. 톰 히들스턴과 틸다 스윈튼이 각자의 방에서 누워있는 장면들이 밤하늘 풍경과 번갈아가며, 때론 겹쳐서 돌아간다.

이 세 장면은 결국 점점 옅어지고 LP판이 돌아가는 모습으로 모아진다. 이 인상적인 시작은 밤이라는 시간과 권태, 예술이 같은 방향으로 뒤섞이는 것을 보여준다. 이 뒤섞임은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에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톰 히들스턴이 연기하는 아담은 디트로이트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의 음악을 이안을 통해서 세상에 드러내고, 자신은 숨는다. 아담의 아내인 이브는 모로코 탕헤르에서 지낸다. 탕헤르에는 뱀파이어인 맬로우가 살고 있고 그를 통해서 이브는 신선한 피를 공급받는다. 권태와 우울에 빠진 남편 아담을 위해서 이브는 디트로이트로 온다.

어둡고 쇠퇴해가는 도시에서 살아가는 아담은 인간들을 '좀비'라고 부른다. 그들이 세상을 망쳐가는 것에 환멸을 느끼고, 자신은 우울에 빠져간다. 이 모습을 걱정하는 이브는 그냥 즐겁게 지내라고, 그 환멸과 우울을 수 천년 동안 계속 반복하지 않았냐고 떨쳐내라고 말한다. 이 둘은 시종일관 차분하다. 수시로 블랙 유머를 주고 받지만, 우리가 흔히 봐왔던 뱀파이어들과 다르게 자신들의 욕망을 억누르고 가다듬는다.


그들은 21세기를 살고 있고, 시간이 흐른만큼 고상해졌다. 아담은 직접 인간에게서 피를 빨아 마신 애바를 경멸하며 쫓아낸다. 그들에게 주어진 긴 시간은 그들을 더욱 똑똑하고 현명하게 만들었을까. 60년대를 생생하게 떠올리고, 바이런과의 일을 기억하고, 여러 언어를 할 수 있고, 생물들의 학명을 꿰고 있으면 다른 존재가 되는 걸까. 안에 잠들어 있는 거대한 욕망은 다스릴 수 있는 걸까.

때론 욕망은 해소된 순간의 모습으로 어떤 욕망이었는지 명확해진다. 철없는 애바는 물론, 고상한 삶을 살아가는 아담과 이브, 심지어 이들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았을 것처럼 보이는 맬로우까지 피를 마실 때면 강렬한 쾌락에 사로 잡힌다. 이들이 보여주는 표정과 행동은 사람들이 섹스와 마약에 취할 때 보여주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긴 밤을 견디는 힘



긴 시간이 주어진다면 결국 무엇을 하게 될까. 아담은 음악을 하고 맬로우는 글을 쓴다. 그들이 긴 시간을 품위있게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은 예술에 관심을 쏟는 일이다. 오랜 세월을 마주했고 앞으로도 마주해야한다면 결국 아름다움을 친구 삼아야 할 것이다.

돈과 명예는 한시적이고, 그것들이 주는 즐거움은 긴 시간 동안 반복되고 익숙해진다. 하지만 아름다움은 조금씩 다가갈 수 있지만, 결코 닿지 못할 곳에 있다. 그래도 그들은 백년도 채 살지 못하고 수초만에 녹아버릴 수 있는 신체를 가진 '좀비'들 보다 더 멀리까지 나아간다.  맬로우가 죽어갈 때 그들이 주고받은 마지막 이야기는 그의 글에 관한 것이었다.

글쓰기가 그의 긴 삶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보여준다. 어쩌면 고집스럽게 걸었던 짐 자무시 감독, 자기 인생에 대한 태도가 죽어가는 맬로우에게 묻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Only Lovers Left Alive) 수 세기를 산 그들이 보여주는 삶을 지속해야하는 이유는 어떤 가치든, 예술, 사람, 물건이든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 밖에 없다는 것이다.

아담은 장례식 곡을 만들었지만, 음악을 사랑했고 또 나무로 총알을 만들었지만 이브가 온 뒤로 다시는 찾지 않았다. 맬로우는 죽을 때까지 글을 썼고, 그를 돌보던 인간 빌랄은 그를 가족으로 여겼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좀비'인 우리들에게도 적용될지 모르겠다.

우리는 누군가의 사랑 없이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랑없이는 정말 '좀비'처럼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사랑할 때야 우리는 비로소 생기(Alive)를 찾는다.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있을 수 있다.

아름다운 영상과 음악이 보고 싶다면 이 영화는 더 없이 좋은 선택이다. 서양 문화에 관심이 많다면 인물들이 언급하는 이름들을 유심히 들어보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은 문제가 있다. 원 대사의 위트와 의도를 잘 살리지 못했고, 때론 부정확한 번역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하는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