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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예쁘지? OO회사 제품인데 600만 원 정도 한다더라"
"그래 어쩐지 퍼(fur)가 고급스러웠어"

올해부터 옮긴 회사의 여직원들이 휴식시간에 조잘거리는 소리다. 그녀들의 입에 오른 이야기는 15년 만에 TV로 복귀한 여자 연예인이 주인공인 드라마로 요즘 한창 인기몰이다. 판타지한 드라마 내용은 물론 그녀가 입고 나오는 옷들마다 여심을 흔들고 있는 모양이다.

수목 드라마라서 그런지 월요일만 뜸하고 주중 내내 드라마 이야기다. 가만히 듣고 있자면 드라마의 전개보다는 그녀가 입은 옷과 액세서리가 주된 소재거리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아 모르지만 매체를 통해 드라마 주인공 이름을 딴 "OOO 퍼 베스트" "OOO 점퍼" "OOO 부츠" 등등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는 걸 보니 그 연예인은 꽤 성공적으로 복귀했구나 싶다. 인기 드라마 속 PPL(간접광고)이야 익숙하건만 내가 관심을 가진 부분은 여자 연예인이 입고 나오는 옷들의 가격이다.

복실복실한 털이 풍성한 점퍼는 6만 원도 아닌고 60만 원도 아닌 600만 원이라고 한다. 점퍼 한 벌의 가격도 놀라웠지만 회사 여직원들이 그 점퍼의 퀄리티는 응당 600만 원의 값어치가 있다고 하는 말이 참으로 놀라웠다. 600만 원의 점퍼. 강남에서 일하는 그녀들의 입에서는 600만 원 점퍼는 참 괜찮은 가격인 것이다.

강남 그들은 참 멋지게 살고 있다

해가 지나 옮긴 직장은 강남대로에 있는 신축 건물로 번화가가 매우 화려한 중심부에 있다. 들어선 상점 이름 앞에 모두 '고급'이 붙는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 과연 강남에서는 사 마시는 물도 비싸구나 싶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고급'스런 거리에 어울리게 잘 차려 입고, 아침이면 위화감이 들 정도로 규모가 큰 브랜드 커피숍으로 출근을 하고 저녁이며 '고급'이 붙은 주점으로 퇴근을 한다. 강남이 주 활동지인 그들은 참 멋지게 살고 있다.
 
나는 월급쟁이로 일반적인 생활비와 저축, 보험료를 제하고 나면 30여만 원이 안  되게 여웃돈이 남는다. 30만 원이 안 되는 돈으로 경조사비, 바뀌는 계절에 필요한 방한용품이나 낡아진 구두 등을 사고 책 서너 권을 산다. 이렇게 사는 게 불편하지 않고 불만도 없었다.그런데 600만 원 짜리의 점퍼 이야기를 듣고 회사가 위치한 강남대로를 내려다 보니 문득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있다.

'생활의 질.'

디자이너 이름을 딴 브랜드의 옷을 입고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음식점에 들려 밥을 먹고 연예인 누가 입었다던 옷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나보다 벌이가 많고 여웃돈이 넉넉할 것이며 고급이 무엇이지 아는 눈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 과연 내 삶의 질을 높여줄까?

내 수준에 솔직해 지기

턱을 괴고 생활의 질을 생각하던 내게 고소한 빵 냄새가 난다. 고개를 들어보니 수다를 떨던 여직원 중의 한 명이 집 앞에서 사온 샌드위치라며 내 손에 쥐어 준다.

"우리집 앞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인데 정말 맛이 좋아"

600만 원 짜리 야상 점퍼가 대단하지 않은 그녀가 먹는 샌드위치라... 한입 베어 물어보니 내가 사는 지역에 있는 체인점의 그것과 익숙한 맛이다. 포장지에 쓰여 있는 체인점 이름을 보고 나도 모르게 씨익하고 웃음이 난다.

나는 고급 음식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1500원의 감칠맛 도는 샌드위치의 맛은 잘 알고 있다. 600만 원 짜리 야상이 부당하다 보기 보다 서점에 출간된 신작들이 많아 내 씀씀이가 커진 것의 정당함을 생각한다. 삶의 질이란 나의 기준에서 가지를 뻗는다. 나의 뿌리가 튼튼하면 내 가지에 잘 어울리는 열매가 맺힌다.

"600만 원 짜리 야상 점퍼를 입는다고 우리가 그 연예인이 되진 않아."

감칠맛 도는 샌드위치를 먹으며 회사 여직원들 중 누군가 말한다. 이번에는 하하하고 소리 내어 웃어본다. 그래, 내 기준은 나의 수준을 아는 것부터 시작한다. 으쓱. 내 수준은 현재의 나. 내 수준이 어때서?


태그:#강남, #삶,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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