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부터 양일간 서울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2013 전국장애인아이스하키 Challnege Cup>대회가 열렸다

지난 21일부터 양일간 서울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2013 전국장애인아이스하키 Challnege Cup>대회가 열렸다 ⓒ 김진수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몄다. 실외온도가 약 영하 5도였지만 경기장 실내는 더 추웠다. 관중석마저 쌀쌀했고, 대회 관계자들은 모두 두터운 겉옷에 목도리를 매고 있었다. 결국 기자도 목도리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링크 위에서는 추위를 녹이는 뜨겁고 격렬한 소리가 연신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썰매 날이 링크를 가르고 스틱이 서로 부딪히는 겨울 스포츠, 바로 아이스슬레지하키(장애인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지난 22일, 고려대 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13 전국장애인아이스하키 Challenge Cup> 대회 현장을 방문했다. 관중석은 일요일을 맞아 썰렁한 고려대 캠퍼스와 비슷했지만, 선수들은 뻘뻘 땀을 흘려가며 투혼을 발휘하고 있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이 대회가 국가대표 최종 선발전을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내년 3월 러시아 소치에서 열리는 동계 패럴림픽(장애인 올림픽) 국가대표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는 레드불스와 스마트라이노의 3·4위전이 한창 치러지고 있었다. 링크 바로 옆에서는 김익환 아이스슬레지하키 국가대표 감독이 매서운 눈으로 선수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국내에 현존하고 있는 아이스슬레지하키 팀은 총6개다. 이 중 실업팀은 강원도청이 유일하다. 나머지(연세이글스, 레드불스, 인천 바로병원, 아산 스마트라이노, 전라북도)는 클럽 팀이다. 이번 대회에는 전라북도는 불참했다. 국가대표는 강원도청에서 11명, 나머지 4개 팀에서 6명의 선수들이 선발된다. 강원도청 선수들이 클럽 팀들에 비해 실력이 월등히 앞서기 때문이다. 강원도청 선수들은 일주일 내내 훈련에 전념이 가능한 반면, 클럽팀 선수들은 평일에는 직장을 다니고 주말에만 훈련을 한다.

 텅 빈 관중석.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들은 이젠 관중이 많이 찾아오는 것이 낯설다. 장애인스포츠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텅 빈 관중석.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들은 이젠 관중이 많이 찾아오는 것이 낯설다. 장애인스포츠의 현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 박지현


"관중이 있는 게 낯설어요...소치 목표는 메달이죠"

전정국 국가대표 및 강원도청 코치는 4년째 팀을 맡고 있다. 아이스하키 국가대표이자 전 실업팀 동원드림스 출신인 그는 "내가 알기로는 세계에서 아이스슬레지하키 실업팀은 강원도청이 유일하다" 고 말하며 "클럽팀에서 실력이 좋은 유망주를 스카우트해서 팀을 운영한다" 고 말했다. 강원도청 팀 환경 및 지원은 일반 프로 아이스하키팀의 70~80% 정도다.

 국가대표 겸 강원도청 전정국 코치는 "이번 소치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 라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국가대표 겸 강원도청 전정국 코치는 "이번 소치에서 반드시 메달을 따겠다" 라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 박지현


초등학교 아이스하키 팀 코치를 하다가 아이스슬레이지로 옮긴 그는 "올림픽이라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보고 싶었고 이 분야를 좀 더 발전시켜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말했다.

한국 아이스슬레이지하키 국가대표팀은 내년 소치 동계 패럴림픽에서 메달권에 도전해 볼만한 상황이다. 국가대표팀의 첫 올림픽이었던 2010 년 벤쿠버 패럴림픽 때는 세계의 벽을 실감하며 예선 3전 전패를 기록, 6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기량이 크게 발전된 대표팀은 작년 3월 노르웨이에서 열린 2012 IPC 아이스슬레지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캐나다, 이탈리아, 체코를 연달아 물리치고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승전에서 강호 미국에게는 1-5로 졌지만 첫 세계선수권대회 결승 진출과 준우승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이후 올해 4월 고양에서 열린 2013 국제패럴림픽 아이스슬레지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 7위라는 부진에 빠지며 5위까지 주어지는 소치 동계 패럴림픽 직행티켓을 놓쳤다. 하지만 절치부심한 대표팀은 지난 10월에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2014 소치 동계 패럴림픽 최종예선에서 5전 전승을 기록하며 우승, 3위까지 주어지는 소치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올림픽 2회 연속 진출이라는 쾌거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국제대회인 2013 월드 아이스슬레지하키 챌린지대회에서는 참가한 네 팀 중 최하위를 차지했으나 강호 미국, 캐나다, 러시아와 막상막하의 경기를 펼쳐 뉴욕타임스로부터 주목받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우승팀인 캐나다 국가대표팀 주장 그렉 웨스트레이크는 "벤쿠버 대회 때만 하더라도 우리가 16-0, 20-0으로 이겼다" 며 "한국은 경쟁력 있는 팀이 되었고, 미국을 넘어설만큼 강해지고 있다" 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관심과 후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전 코치는 "평소에 워낙 관중(가족 및 지인)들이 없다보니, 많이들 찾아오시면 선수들이 긴장하고 낯설어해서 부진하는 경우가 있다" 며 지난 고양 세계선수권대회의 예를 들었다. 오히려 국제대회에 나가면 성적이 더 좋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이어서 그는 "사실 장애인스포츠전체가 비인기인데 그 중에서도 아이스슬레지하키는 더 잘 모른다" 며 "여러 기업과 단체의 후원도 절실한 상황이다" 라고 덧붙였다. 선수수급도 쉽지 않다. 아이스슬레이지하키의 종목 특성상의 어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스케이트를 타고 일어서는 것만 벌써 몇 개월이 걸린다. 그런데 스케이트를 타고 스틱도 써야하니까 더 어렵다. 그러다보니 다른 종목의 스타플레이어 선수들을 스카우트해 와도 3개월이면 포기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장애인들이 사회에 적응하는데 일반인보다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이 걸리는 점도 예로 들었다.

실업팀과 클럽팀의 결승전...스코어는 벌어졌지만

오전 11시, 이번 대회 결승전인 강원도청과 연세 이글스의 경기가 시작됐다. 실업팀과 클럽팀의 경기였기 때문에 경기시작부터 승패는 이미 기울어져 있었지만, 연세 이글스는 2000년 우리나라 최초로 창단된 아이스슬레지하키 클럽팀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일반 아이스하키는 선수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하반신 마비나 절단된 선수들이 주를 이루는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들은 썰매 위에 누운 다음 스틱을 이용해 이동하면서 경기를 치른다. 하지만 속도감이나 박진감이 일반 아이스하키에 비해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초반부터 양 팀 선수들 모두 엄청난 스피드를 자랑하면서 경기를 진행했다. 두 눈으로 선수들이 스틱을 이용해 날리는 퍽을 쫓아가기가 버거울 정도였다.

링크 내에는 썰매날 때문에 생기는 '사각사각' 소리와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들의 함성, 그리고 격렬한 몸싸움 소리가 진동했다. 부상이 염려될 정도였다. 사실 아이스슬레이지하키는 일반 아이스하키와 규칙은 크게 다른 것이 없다. 보통은 백업(대기)선수가 링크 밖에서 대기하지만 아이스슬레지하키 선수들 같은 경우는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경기장 내 한쪽에 위치한다는 것과 한 피리어드당 경기시간이 15분이라는 것 정도다.

경기는 1피리어드 중반까지 양 팀 모두 무득점을 기록하며 겉으로는 팽팽하게 전개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대부분의 공방전은 연세 이글스 진영 내에서 진행됐다. 역시 실력차는 어쩔 수 없는 듯했다. .

결국 7분경에 김영성선수 선취골을 터뜨렸고, 5분 뒤에는 장종호 선수가 추가득점을 하며 2-0으로 강원도청이 앞서나가며 1피리어드를 마쳤다. 이후, 남은 두 피리어드에서 4골을 추가한 강원도청이 6-0으로 완승하며 이번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썰매를 타고 스틱으로 이동을 하는 경기지만, 일반 아이스하키와 마찬가지로 스피드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진행됐다. 연세 이글스의 등번호 44번 이해만 선수가 미끄러지고 있다

썰매를 타고 스틱으로 이동을 하는 경기지만, 일반 아이스하키와 마찬가지로 스피드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진행됐다. 연세 이글스의 등번호 44번 이해만 선수가 미끄러지고 있다 ⓒ 박지현


 결승전이었던 강원도청과 연세 이글스의 경기는 6-0으로 강원도청의 압승으로 끝났다

결승전이었던 강원도청과 연세 이글스의 경기는 6-0으로 강원도청의 압승으로 끝났다 ⓒ 박지현


이 날 가족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본 전석(서울 돈암동)씨는 "오늘 처음인데, 실제로 보니 스피드와 박진감이 넘쳤다" 면서 "장애인스포츠가 재미없다는 편견 때문에 경기를 보러 오지 않는 것 같다" 고 말했다.

이 날 1득점을 기록하며 우승의 일조한 정승환 선수는 "강원도청은 국내 유일의 아이스슬레지하키 실업팀이라 엘리트라 불린다" 며 "그래서 더욱 책임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고 있다" 고 말했다.

5살 때 사고로 왼쪽다리 절단장애를 입은 정승환은 18살이던 지난 2004년에 아이스슬레지하키를 시작했으며 2년 뒤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그는 지난 2009년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로부터 '이달의 선수'로 뽑힐 만큼 팀의 에이스다. 2012 IPC 아이스슬레지하키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공격포지션 최우수 선수상을 받기도 했다.

 인터뷰 중인 정승환 선수. 국가대표팀의 젊은 에이스다.  2009년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로부터 '이달의 선수'로 뽑힌 바 있다.

인터뷰 중인 정승환 선수. 국가대표팀의 젊은 에이스다. 2009년 국제장애인올림픽위원회(IPC)로부터 '이달의 선수'로 뽑힌 바 있다. ⓒ 박지현


최근 홍삼을 먹으면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 그는 "체격이 작기 때문에 스피드를 키워서 측면공격 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중이다" 며 "사실 국내에는 훈련이 가능한 아이스링크가 많지 않고, 대관도 어려워 개인훈련은 사실상 어렵다" 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8월에 병환 중이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제가 올림픽에서 메달 따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아버지를 생각하면서 경기에 열심히 임하겠다" 며 굳게 결심을 다졌다.

"김연아 선수 덕분에 동계 스포츠가 많이 알려져서 고맙죠" 라고 말하는 정승환 선수의 웃는 얼굴을 보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도전하는 그들을 보며 오히려 용기를 얻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번 동계 패럴림픽은 가족을 위해, 사람들의 관심 혹은 자기 자신을 위해 매우 중요한 대회가 될 것이다.

이제 소치 동계 패럴림픽까지는 약 두 달이 남았다. 대표팀은 1월2일부터 전주에서 훈련을 가진 뒤 2월 중순 체코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이후 바로 소치로 입성하게 된다. 과연 이들이 김연아, 이상화, 모태범 선수들처럼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을지 내년 소치를 주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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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청춘기자상' 응모 기사입니다
아이스슬레지하키 장애인 아이스하키 소치 페럴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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