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한솔뮤지엄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한솔뮤지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강원도 원주에 있는 한솔박물관이 볼만 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5월 16일 개관했으니 6개월도 안 된 박물관인데 말이다. 그 이유를 살펴보니 첫째가 한솔박물관을 지은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이기 때문이다. 콘크리이트를 이용하면서도 자연을 잘 활용해 어울림의 미학을 추구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다. 둘째 한국 현대미술의 대가인 박수근, 김환기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대작 커뮤니케이션 타워(Communication Tower)도 있다.
 
셋째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의 작품을 보기 위해 한솔박물관을 찾는 사람도 있다. 제임스 터렐은 빛의 마술사, 빛과 공간의 예술가로 불린다. 그는 예술에 있어 항상 조연에 머물던 빛을 주연으로 끌어올린 아트 디렉터 또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Creative Director)다. 우리가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빛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는 공간 개념의 빛을, 시간 개념을 포함하는 4차원의 세계로 인도한다.

한솔뮤지엄의 가을
 한솔뮤지엄의 가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그 한솔박물관을 보기 위해 원주시 지정면으로 차를 몰았다. 지정면은 섬강과 간현유원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렇지만 한솔박물관이 있는 월송리는 지정면에서도 가장 깊은 산 속에 있다. 이곳에 한솔 오크밸리 CC가 만들어졌고, 골프장 안에 박물관이 들어선 것이다. 옛날 같으면 아무도 찾지 않을 완전 산골에 골프장이 만들어졌고, 그 후 이곳이 레저와 예술의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플라워 가든에서 만난 꽃과 예술

한솔뮤지엄 표지석
 한솔뮤지엄 표지석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골프장을 통해 한솔박물관으로 들어서니, 입구의 돌로 만든 벽에 Hansol Museum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벅 주변에는 자작나무 등을 심어 자연과의 조화를 꾀했다. 그 뒤 담 안쪽으로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담을 통해 현대문명의 이기인 차가 보이지 않도록 배려했다. 주차장은 이미 승용차로 가득하다. 우리는 차를 세우고 입구 매표소로 가서 표를 끊는다. 주차장과 매표지역을 이들은 웰컴 센터(Welcome Center)라고 부른다.

그런데 입장료가 만만치 않다. 일반인은 1만2000원이고 학생은 7000원이다. 제임스 터렐관까지 보려면 일반인 2만5000원, 학생 2만 원이다. 박물관은 오전 10시 30분부터 문을 연다. 그리고 오전 11시와 오후 2시에 도슨트 투어가 있다. 아내와 나는 자유 관람을 위해 플라워 가든(Flower Garden)으로 이동한다. 박물관으로 가는 곳에 있는 꽃 정원이라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모든 이름이 영어로 되어 있다. 사실 박물관의 이름도 한솔뮤지엄이다.

플라워 가든과 조형물
 플라워 가든과 조형물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한솔뮤지엄은 웰컴 센터, 플라워 가든, 워터 가든, 페이퍼 갤러리, 청조 갤러리, 스톤 가든, 제임스 터렐관으로 동선이 이어진다. 플라워 가든은 패랭이꽃 정원과 자작나무 가로수길로 이루어져 있다. 가을이어선지 흐드러진 꽃을 볼 수 없다. 정원 한가운데 마크 디 수베로(Mark di Suvero)의 '제라드 맨리 홉킨스를 위하여'라는 철제 조각품이 눈에 띈다. 시인 홉킨스의 소네트 '황조롱이(The Windhover)'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일종의 정크 아트다.

정크 아트는 버려지는 재료를 활용해 만드는 현대 예술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커다란 강철 빔과 붉은색이 오히려 예술적인 감동을 저해한다. 그리고 강철 빔도 재활용한 것이 아니어서 정크 아트라고 말할 수도 없다. 설명에 의하면 이 작품은 황조롱이라는 느낌을 줄뿐 아니라, 바람에 따라 조금씩 움직이는 키네틱 아트이기도 하다. '황조롱이'라는 시를 찾아보니 '우리 주 그리스도에게 바치는'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바람을 조절할 줄 아는 황조롱이를 인간을 이끌어가는 그리스도에 비유한 것이다.

콘크리트가 물과 숲을 만나니

한솔뮤지엄 입구의 반영
 한솔뮤지엄 입구의 반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정원의 끝에는 자작나무 가로수길이 있다. 시간이 지나 자작나무가 무성해지면 더 멋진 모습을 보여줄 것 같다. 자작나무 길을 지나면 워터 가든이 나온다. 박물관 앞에 물을 채우고 그곳에 박물관으로 인도하는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입구에 서서 잠시 반영을 살펴본다. 돌을 활용한 벽이 물에 비쳐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벽 너머로 절반만 보이는 예술품이 분위기를 더해 준다.

사람들은 이곳을 천천히 지나간다.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지나가는 부부, 명품으로 치장을 하고 색까지 맞춰 입은 중년의 부부, 즐거운 표정으로 깔깔거리며 지나가는 젊은이 등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서 뭔가 포스가 느껴진다. 한쪽 끝에서는 시간을 멈추게 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전문 사진사도 있다. 길 중간에서 물에 비치는 박물관을 스케치하는 외국인도 보인다. 데생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물 속에 들어온 가을
 물 속에 들어온 가을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박물관에 들어가 우리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재료가 이미 다 떨어져 음식 주문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요즘 한솔뮤지엄의 인기가 그렇게나 대단하다. 우리는 단팥죽에 빵으로 점심을 때운다. 그리고 레스토랑 밖에 마련된 수변 의자에 앉아 잠시 물과 숲이 어우러진 가을의 자연을 감상한다. 가을빛이 물에 들어와 있다.

페이퍼 갤러리에서 만난 종이의 역사

우리는 먼저 한솔박물관의 존재 이유인 페이퍼 갤러리를 둘러본다. 한솔박물관은 모기업인 한솔제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1997년 전주에서 한솔종이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이것이 한솔뮤지엄으로 확대되면서 이곳 페이퍼 갤러리로 옮겨온 것이다. 한솔뮤지엄은 현재 골프, 콘도, 스키, 레저, 서비스업을 하는 한솔개발의 오크밸리 컨트리 클럽 안에 위치하고 있다.

페이퍼 갤러리의 파피루스
 페이퍼 갤러리의 파피루스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페이퍼 갤러리에서 우리는 파피루스 식물을 볼 수 있었다. 파피루스는 이집트에서 종이를 만드는 원료로 사용된다. 그 파피루스를 유리 온실에서 재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종이 발명가 채륜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한지가 전시되고 있었다. 그 옆에는 채륜의 종이가 동서로 전파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지도가 걸려 있다. 이곳에는 또한 종이 만드는 기계들이 놓여 있다. 종이는 처음 수작업으로 만들어졌지만, 대량생산의 필요에 의해 기계화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페이퍼 갤러리의 다음 전시실에는 종이로 만든 생활용품이 진열되어 있다. 종이를 꽈서 노끈을 만든 다음 그것으로 다래끼를 만들었다. 종이로 만든 사자도 보인다. 종이를 물에 푼 다음 그것을 뭉쳐 사자 형상을 만들었다. 의식용이나 장식용으로 보인다. 나무와 종이로 만든 편지 걸이도 보인다. 종이에 그려진 별자리 지도는 우리 조상들의 천문관을 엿볼 수 있게 한다. 이곳에는 그 외에도 바구니, 자루, 그릇 등 선조들의 손때가 묻은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다.

페이퍼 갤러리
 페이퍼 갤러리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다음 전시공간에서 우리는 종이를 사용한 문화유산을 본다. 대표적인 것이 목판본 불경이다. 불경의 내용을 목판에 새긴 다음 종이에 찍어낸 것이다. 두루마리 형태로 된 초조본 화엄경으로 고려 초기 불경이다. 마지막 공간은 종이가 도달한(至) 대량생산 현장을 보여준다. 제목이 'Breeze'로 종이가 바람에 날려 차곡차곡 쌓이는 모습이다. 현대 문화의 상징인 대량생산된 종이의 모습이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종이 체험실로 가 종이에 동식물 스탬프를 찍어 본다.

페이퍼 갤러리를 보고 나면 동선은 자연스럽게 청조 갤러리로 이어진다. 그런데 중간 복도에 현대 디자인의 역사를 보여주는 의자가 전시되어 있다. 하나 같이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이다. 매킨토시(Charles Rennie Mackintosh)가 1902년 만든 Hill House Chair, 로에(Mies van der Rohe)가 1929년에 만든 Barcelona Chair, 이메스 부부(Charles & Ray Eames)가 1948년에 만든 Plastic Armchair 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외 코르브지에(Le Corbusier)가 디자인한 의자도 있다. 

청조 갤러리에서 한국 현대회화의 맥을 느끼다

이중섭의 그림
 이중섭의 그림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청조 갤러리는 20세기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서양의 회화 기법을 한국의 전통적인 주제와 접목시킨 대가들의 작품이다. 후기 인상파에서 표현주의에 이르는 서양화풍을 보여주는 이중섭, 서양화를 통해 한국적인 정서를 보여준 박수근, 파리와 뉴욕이라는 서양화의 성지에서 활동한 김환기, 삶의 단순성과 여백의 미를 강조한 장욱진, 표현주의적 색채를 띤 윤중식의 그림이 이곳에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곳에는 대(표)작이 별로 없다. 이중섭의 것도 그렇고 김환기의 것도 그렇다. 그리고 작품수도 많지 않아 회화 갤러리로는 아쉬움이 좀 있다. 회화 갤러리를 지나면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커뮤니케이션 타워'가 있는 독립공간으로 가게 된다. 커뮤니케이션 타워는 1995년 조선일보 미술관에 처음 전시되었던 대형 작품이다. 5.2m 높이의 통신선으로 4각뿔 형태의 산을 만들고, 그 중간 중간에 현대문명의 상징인 TV를 설치했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우리의 전통 탈을 설치했다. 정말 누구도 생각해내기 어려운 특이한 발상이다.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
 백남준의 커뮤니케이션 타워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백남준은 이 작품을 통해 과거와 현재, 문명과 예술의 결합을 보여주고 있다. 90년대 중반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는 절정에 달했고,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그는 그 후 10년간 작품 활동을 하다 2006년 세상을 떠났다. 커뮤니케이션 타워를 지나 있는 갤러리 4에는 조각과 공예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권진규, 문신, 존배의 작품이 있는데, 그들은 전혀 다른 조각 기법을 보여준다. 권진규가 구상이라면, 문신은 추상이고, 존배는 선으로 공간을 창조하는 비구상이다. 이들의 작품을 통해 현대 조각의 역사를 짐작할 수 있다.

존배의 철사조각
 존배의 철사조각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권진규의 조각은 테라코타 형태로 만든 여인의 흉상이다. 여인으로서의 숙명을 타고난 듯 우수에 찬 얼굴이다. 문신의 작품은 추상성이 돋보인다. 기하학적인 곡선과 원형이 입체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비대칭적 대칭성을 통해 화합과 조화의 이미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존배의 철사조각이 좋다. 철사를 꼬고 용접해서 하나의 예술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그는 차가운 금속성 물질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에 탄생, 자궁, 신화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다.    

스톤 가든에서 느끼는 또 다른 즐거움

'벤치 위의 커플' 사이에 끼어 든 아내
 '벤치 위의 커플' 사이에 끼어 든 아내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돌 정원을 뜻하는 스톤 가든은 뮤지엄 밖에 있다. 언덕을 평평하게 만들고 그 위에 9개의 돌무덤을 쌓았다. 그런데 이 돌무덤이 경주의 오릉이나 삼릉을 연상시킨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낮은 봉분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그 봉분으로 올라가려고 한다. 봉분 사이로는 길을 내 산책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돌을 이용해 가든을 만든 특이한 예로 삶과 죽음의 공존을 보여주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상당히 선(禪)적이다. 이 돌 정원으로 가을의 햇살이 떨어진다.

그 햇살을 받으며 하얀 석고로 만든 부부가 벤치 위에 앉아 있다. 조지 시걸(George Segal)이 만든 '두 벤치 위의 커플'이다. 중년의 부부가 등을 맞댄 의자에 앉아 팔을 서로 걸치고 다른 곳을 쳐다본다. 중간에 다른 남자 또는 여자가 끼어들 여지를 보여준다. 나는 장난삼아 아내를 그곳에 앉힌다. 그러자 오히려 더 멋진 그림이 된다. 그렇다면 중년의 위기를 표현하는 조각 작품이다.

스톤 가든
 스톤 가든
ⓒ 이상기

관련사진보기


이곳 스톤 가든에는 그 외에도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의 '부정형의 선', 토니 스미스(Tony Smith)의 '윌리(Willy)', 헨리 무어(Henry Moore)의 '누워있는 인체'가 있다. 브네와 스미스의 작품은 금속 구조물로, 던져주는 메시지를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에 비해 무어의 인체는 돌로 만들었고, 뭔가 던져주는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 누워있는 인체가 부활하고자 욕망을 보여준다고나 할까?

이처럼 무색무취한 돌 정원이 우리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은 주변 자연과의 어우러짐 때문이다. 그리고 또 중간에 놓인 조각품이 우리를 심심치 않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건축 그리고 예술은 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그 아름다움을 드러내게 된다. 골프 클럽 속에 들어 있는 뮤지엄, 정말 안 맞아 보이는 조합 같은데 기가 막히게 성공하고 있다. 하루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평일에는 300~400명, 주말에는 800~900명이나 되고 있으니 말이다. 모든 일에 있어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태그:#한솔뮤지엄, #안도 다다오, #페이퍼 갤러리, #청조 갤러리, #스톤 가든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