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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예능 <진짜사나이>가 인기입니다. 그동안 군대 이야기는 환영받는 소재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능에서 '통' 했습니다. 그러나 비판과 문제제기도 많습니다. 대한민국 군대에서는 성폭력 등 각종 폭력이 끊이지 않고 병사들의 사망사고도 자주 벌어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진짜사나이>가 군대를 미화하고 군사문화를 조장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진짜사나이를 논한다'를 통해 군대 문제를 성찰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독자여러분의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MBC <진짜사나이>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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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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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일요일 예능 <진짜사나이> 인기가 뜨겁습니다. 시청률이나 화제성에서 동시간대 타 방송사 예능을 압도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월요일 아침이면 특히 30대 중후반의 남자 직장 동료들은 "어제 진짜사나이 봤어?" "뽀글이(봉지라면)랑 '군대리아' 먹고 싶다" 등의 시청 후기를 나누며 전우애(?)를 다지기도 합니다. 그야말로 <진짜사나이>의 인기를 실감합니다.

저 역시 일요일 저녁이면 뭔가에 홀린 듯 <진짜사나이>를 보면서 낄낄거리고, 때로는 훌쩍입니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러지?'하며 혼자 민망해하기도 합니다. 아내 역시 덩달아 시청을 하며 "군대가 정말 저래?" "오빠도 저렇게 고생했어?"하며 군대에 대한 호기심과 군인에 대한 측은함을 표시하곤 합니다.

<진짜사나이> 보는데, 마음이 찜찜합니다

사람들이 <진짜사나이>를 즐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겁니다. 일단 전역한 남자들은 군대에서 일종의 '성공스토리'를 쓰고 나옵니다. 일반 사병들은 철저한 계급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인 이등병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권력의 정점인 병장까지 올라갑니다.

물론 시간만 가면 다는 게 병장 계급장이지만, 그 과정에서 온갖 수난과 고생을 견뎌냈기에 당사자는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기도 합니다. <진짜사나이>는 그런 남자들의 자전적 이야기를 보여줌으로써 큰 공감과 향수를 자아냅니다.

<진짜사나이>에서 화제가 된 '군대리아'
 <진짜사나이>에서 화제가 된 '군대리아'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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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은 그동안 몰랐고, 알고 싶지도 않았던 군대를 예능으로 알아가면서 재미를 느끼는 듯합니다. 또 방송을 보며 군대에 있거나 제대한 남자친구, 남편, 오빠, 남동생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예능이라는 장르가 가진 캐릭터의 향연과 그들의 성장을 담은 스토리텔링이 마치 연속극을 보는 듯한 재미도 줍니다. 특별한 삶을 살 것 같은 연예인들이 생고생을 하고, 소소한 먹거리에 감탄하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묘한 동질감과 쾌감을 맛보기도 합니다.

이처럼 <진짜사나이>는 세대와 성별을 아우르는 재미와 정서로 시청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재미 이면에는 찜찜함과 불편함이 있습니다.

특히 조직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규율보다는 자율을 원하고, 단결보다는 연대를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국가를 위해 개인의 희생을 강조하고, 임무 완수를 위해 무조건적인 단결을 요구하는 군대의 조직논리에 근본적으로 거부감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저의 군대 시절만 해도 이등병이 취침시간 이외에 침상에 눕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저의 군대 시절만 해도 이등병이 취침시간 이외에 침상에 눕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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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무엇보다도 불편한 건, <진짜사나이>가 보여주는 군대와 대한민국의 많은 남자가 실제 경험하는 군대가 많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제대한 남자들에게 '군대 다시 가는 꿈'은 악몽 중의 악몽입니다. '군대 쪽으로는 오줌도 누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만큼 군 생활이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군대 시절을 생각하면, 좋은 추억보다는 안 좋은 기억이 더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일단 군대하면 '욕'부터 떠오릅니다. 제가 군대에서 들었고, 내뱉었던 소위 '십원짜리' 욕을 모으면, 아마도 전두환씨가 내야 할 추징금에 이자를 더한 금액보다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게 군대는 '계급이 깡패'라고 간부와 사병, 선임과 후임 사이에 억압과 착취가 생활화되어 있는 곳입니다. 행정병으로 근무한 저에게는 꼭 일과 끝나는 시간에 일거리를 잔뜩 주며 "내일까지 다 치워놔라!"는 간부의 명령이 참 고역이었습니다. 새벽까지 수십 장의 문서 작업을 하고, 경계근무까지 서야 하기 때문에 늘 잠이 부족했습니다.

'계급이 깡패'... 억압과 착취가 만연한 군대

이뿐 아닙니다. 종종 주말에는 간부들의 이사나 집안 대소사에 동원돼 온갖 궂은일을 다 해야 했습니다. 간부들이 더욱 얄미운 건, 그렇게 고된 일을 시키면서 고작 짜장면 한 그릇 사주면서 생색을 내기 때문입니다.

사병 간에도 착취의 구조는 있었습니다. 내무반에는 계급마다 고참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마치 몸종처럼 정해져 있습니다. 식사수발, 전투화 손질, 침상 및 관물대 정리 등을 비롯한 온갖 잔심부름을 해야 합니다. 병장을 '오대장성'이라고 하는 것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내무반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군대에서 인권을 찾아보기가 힘듭니다. 한 번은 행정반에 걸려온 대대장의 전화를 늦게 받았다는 이유로 행정병 전원이 팬티만 입고 완전 군장을 한 채 연병장을 돌았던 적도 있습니다.

이처럼 제가 겪은 군대는 <진짜사나이>처럼 멋있고, 아름다운 군대와는 너무나 큰 차이가납니다. 물론 15년 전의 개인적 경험을 일반화해 예능 프로그램을 두고 사실과 진실을 논하는 건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진짜사나이>를 통해 군대가 미화되고, 시청자들에게 알게 모르게 환상이 심어진다는 점입니다. 나아가 방송이 국방, 국가, 군사력 등의 중요성을 과도하게 전달하면서 사람들에게 국가주의적 가치관과 '여차하면 전쟁도 불사한다'는 인식을 퍼뜨리기도 합니다. 

또 군대 예능을 보며 낄낄 웃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에는, 대한민국 군대와 군인의 현실은 무척 처참합니다. 최근에는 연예사병 군기문란이 있었고, 성폭력 사건과 총기 사고도 끊이지 않습니다. 특히 군인의 사망과 자살 문제는 끔찍한 수준입니다.

지난 2월에는 한 여군중위가 임신 7개월에 과로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2012년 국정감사에서 국회 국방위원회 정희수 의원(새누리당, 경북 영천)이 국방부에게 제출받은 '최근 5년간(2008~2012.6월) 군대 사망사고 발생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사망사고는 총 571건으로 이중 368건(64.4%)는 자살이었습니다.

5년 동안 자살사고는 꾸준히 증가추세였습니다. 무려 4일에 한 명 꼴로 군인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셈입니다.

또 최근에는 현역 군인 10명 중 1명 정도가 자살을 생각한다는 분석 결과도 나왔습니다.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국방부에게 받은 '2012 군우울증 유병률(어느 시점에서 조사 대상 인구 중 환자 비율) 조사' 자료에 따르면, 국방부가 1310명을 조사한 결과 자살을 생각해본 군인은 9.3%였습니다.(2012년 9월~2013년 5월까지)

<진짜사나이>가 좋아지고, 군대가 달라졌길...

화생방훈련에서 보여주는 장병들의 '연대'
 화생방훈련에서 보여주는 장병들의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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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진짜사나이>를 마냥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을까요? 물론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게 군대 문화 개혁을 요구하는 건 아닙니다. 무슨 일이든 인기와 화제를 모으면 그에 상응하는 우려도 있게 마련입니다. <진짜사나이> 제작진이 저와 같은 사람들이 가지는 우려를 고려해 더욱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길 바랍니다.

<진짜사나이>가 불편하지만 여전히 보는 이유는 연예인과 장병들이 보여주는 인간적인 정과 나눔 때문입니다.

막내 후임에게 휴가장을 양보하는 선임의 모습에 진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막내 후임에게 휴가장을 양보하는 선임의 모습에 진한 '배려'가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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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화생방훈련이라는 극한의 고통과 공포 속에서 장병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힘을 내고 견디는 모습에서 저는 연대의 힘과 의미를 깨닫습니다. 배우 장혁이 팔굽혀펴기 왕에 등극해 받은 휴가증을 선임들이 흔쾌히 막내 후임에게 양보하는 모습에서 약자에 대한 배려를 봅니다.

어쩌면 <진짜사나이>를 통해 우리가 정말 봐야 할 게 있다면 군사훈련의 스펙타클, 연예인의 개고생, 군대리아 먹방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출연자들의 마음일 겁니다. 시청자로서 바람이 있다면 앞으로 <진짜사나이>가 '군대'의 중심에서 '사람'을 외치는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그런 프로그램이 됐으면 합니다.

더불어 지금의 대한민국 군대가, 팬티만 입혀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 돌리는 15년 전의 군대와 확연히 다르길 소망합니다.


태그:#진짜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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