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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오른쪽), 최경환 원내대표(왼쪽),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대화하는 황우여-최경환-윤상현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오른쪽), 최경환 원내대표(왼쪽),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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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은 여당 대표로서 여야 대표가 함께 대통령을 만나 뵙고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3자회담을 제안한다."

5일 오전 여의도 국회 새누리당 대표실, 황우여 대표의 말이 끝나자, 옆에 있던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해 최고위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듯 놀란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는 참석자도 있었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국정조사를 둘러싼 여야 대치 등 정국 난맥상을 풀기 위해 '여·야·청 3자 회담'을 하자는 황 대표의 주장은 계속 됐고, 회의장 분위기는 싸늘하게 경색됐다.

황우여 홀로 '3자 회담' 제안... 왜?

황우여 대표는 다시 한 번 "(박 대통령과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대승적 결단을 기대한다"는 말로 모두 발언을 마쳤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최경환 원내대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준비된 원고를 보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러나 최경환 원내대표의 발언 내용은 앞서 황 대표의 그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였다.

특히 최 원내대표는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박 대통령 단독 면담 제의에 대해 "의회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여당 내 두 사령탑이 엇박자를 내는 순간이었다. 최 원내대표는 이어 "야당이 여당을 제쳐놓고 대통령과 만나 담판을 지으려는 것은 상대방인 여당과 국회를 무시하는 일"이라며 여야 대표회담이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최경환 원내대표뿐만 아니라 이혜훈·심재철·정우택·유기준 최고위원 등 다른 지도부들도 민주당의 장외투쟁은 물론, 김한길 대표의 박 대통령 단독면담 제안을 거세게 비판했다. 황우여 대표의 '3자 회담' 제안이 무색할 정도였다. 국정원 국정조사 파행 국면에서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는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아예 황우여 대표 쪽으로 가서 직접 항의하는 모습도 보였다. 비공개회의에서도 윤 부대표 등의 거센 항의는 계속됐다.

최경환 원내대표를 비롯해 모든 지도부가 반대하고 있는 '여·야·청 3자 회담'을 황우여 대표 혼자서 제안한 꼴이 됐다. 그것도 수십 명의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목소리를 내야 할 지도부 회의에서 벌어진 일이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어당팔'한테 다들 기습을 당한 거다"... '온건파' 황우여의 강단

폴란드에서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황우여 대표는 휴일인 지난 4일 밤늦게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국가정보원 선거개입 의혹 국정조사 파행과 김한길 대표의 박 대통령 단독 면담 제안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기 위한 회의였다.

이 야간회의는 오후 11시까지 이어졌고, 결론은 김한길 대표와 박 대통령 단독면담 전에 여야 대표회담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황우여 대표가 앞장서서 이 같은 결론을 도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회의의 결론은 분명히 여야 대표회담 먼저 하는 것이었다"며 "황 대표가 그렇게 하자고 제안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3자 회담'을 하려면 청와대와 먼저 논의를 끝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그게 아직 마무리가 안 된 상태였다"고 전했다. 5일 오전 회의에서 황 대표의 '3자 회담' 제안에 최경환 원내대표 등이 뜨악한 표정을 지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특히 황 대표는 전날(4일) 밤늦게 김한길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3자 회담'을 제안했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황 대표가 김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고, 김 대표가 '(3자 회담에 대해)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결국 황 대표는 당내 지도부와는 '여야 대표회담'으로 결론을 내고, 단독으로 '3자 회담'을 추진한 것이다. 4일 밤과 5일 새벽 사이 황 대표가 청와대와 '3자 회담'에 대해 사전 교감을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다른 지도부들의 중론이다.

이 때문에 5일 오전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당 지도부들 사이에서는 "'어당팔'한테 다들 당한 거다" "어제 한밤중에 불려 나와서 고생만 죽 싸게 하고 바보 된 것 아니냐" "황 대표한테 기습을 당했다" 등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어당팔'은 '어수룩해 보여도 당수(가라테)가 팔단'이라는 뜻으로, 황우여 대표의 별명이다. "특유의 온화한 성품과 달리 당찬 면모를 가졌다"는 황 대표의 별명은 그냥 생긴 게 아니다. '홍키호테'라 불렸던 홍준표 전 대표처럼 강경 발언으로 이슈를 부각시키는 대신 시간을 끌면서 내실을 챙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미FTA 비준안을 처리하며 야당의 허를 찌른 게 대표적이다. 당내의 반발은 물론, 보수언론의 강압적 반대에도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킨 것도 황 대표의 강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까지도 새누리당 일각에서는 "황 대표가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키는 바람에 야당에 발목이 잡혀 여당이 일을 제대로 못한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주로 당내 강경파들 사이에서 황 대표의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새누리당이 장외투쟁에 나선 민주당을 향해 연일 "당 지도부가 친노강경파에 휘둘리고 있다"며 내분을 조장하고 있지만, 사실 온건파인 황우여 대표 역시 강경파에 밀려 리더십과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완구 새누리당 의원은 최근 라디오 인터뷰에서 "당 대표의 입지가 너무 좁아서 큰일이다, 강경파에게 많이 밀리고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최경환·윤상현 의원 등 원내지도부가 각종 현안을 주도하는 동안, 황 대표의 존재감은 그만큼 사라지고 있는 셈이다.

특히 국정원 국정조사를 둘러싼 논쟁에 이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논란,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및 사초 실종 논란 등이 겹치면서 여야 강경파들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분출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옆집인 민주당 김한길 대표 체제가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 같은데, 불이 났는데 수수방관하거나 부채질한다면 내 집으로 옮겨 붙을 수 있다"며 "통 큰 스탠스(자세)를 가지고 야당을 껴안아 양보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누리당내 강경 흐름은 원내전략을 주도하는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7월 31일 김한길 대표의 '장외투쟁' 선언 당시, 황우여 대표나 최경환 원내대표를 제치고 윤 수석부대표가 반박 기자회견을 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윤 수석부대표는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실종 국면에서도 검찰 단독 고발을 밀어붙이는 등 당내 강경론을 주도했다.

당내에서는 윤 수석부대표가 원내 전략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물론 대변인 역할까지 자임하고 나서자 "새누리당이 아니라 윤상현당"이라는 자조 섞인 말까지 나왔다. 이러한 윤 수석부대표의 '오버'는 그가 친박(근혜)계 핵심 실세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관측도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은 윤상현 수석부대표 등을 '국정농단 세력' 등으로 지칭하며 역공을 펴기도 했다.

황우여 대표가 '3자 회담' 카드를 꺼내들고 단독 플레이를 벌인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당내 강경파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하면서 극한대립으로 치닫고 있는 현 상황을 타개해보겠다는 판단이 깔려있는 셈이다.

청와대 "황 대표 제안 검토할 것"... 남재준 해임-특검 수용 여부가 관건

이제 남은 문제는 '3자 회담' 성사 여부와 그 결과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관계자는 "황 대표가 '3자 회담'을 먼저 제안해버리는 순간 '여야 대표회담' 방안은 사실상 폐기가 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제 어쩔 수 없이 당이나 청와대에서도 '3자 회담'에 대해서 검토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미 새누리당의 패가 나와 버린 상황에서 민주당이 바보가 아닌 이상 '여야 대표회담' 안에 대해 거들떠나 보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청와대에서도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가 참석하는 3자 회담을 하자는 황우여 대표의 제안에 대해 검토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조금 전에 제안을 들었다"며 "일단 황 대표의 제안이 있었으니 검토해보겠고, 여러 가지 정황을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김한길 대표는 "청와대의 공식 제안이 있다면 정국 상황이 엄중한 만큼 형식과 의전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때마침 박 대통령은 이날 두 달 여간 공석이었던 청와대 정무수석을 비롯해 비서실장 등에 대한 인선을 단행했다. 여당 대표의 제안에 청와대가 긍정적 입장을 밝힘에 따라 조만간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3자 회담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설령 '3자 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정국 경색을 풀기 위해서는 여야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야 할 과제가 남는다.

김관영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번 여야 대표회담에서 국정원 개혁을 위해 국회 내에 위원회를 설치하자는 것까지는 합의가 된 상태"라며 "문제는 남재준 국정원장의 해임과 민주당이 제출한 국정원 대선개입 진상조사를 위한 특검이다, 박 대통령이 (3자 회담에서) 두 사안을 수용할 지 여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과연 이번에도 '어당팔 황우여'의 강단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국정원 국정조사,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 #어당팔 황우여, #3자 회담, #새누리당 강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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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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