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시픽 림 퍼시픽 림

▲ 퍼시픽 림 퍼시픽 림 ⓒ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주)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퍼시픽림>은 못 만든 축에 속하는 영화라 생각합니다.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의 명성이 무색할 만큼 단순하고 얕은 이야기 구조에 때깔에 비해 투박한 주먹질만 하고 있습니다.(사실 카이주의 피가 환경오염을 야기 시켜서 때려잡는 다는 설정.)

거기다 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예거 지구방위대' 코스프레를 하지만, 러시아(예거 이름 : 체르노 알파)와 중국(예거 이름 : 크림슨 타이푼)이 아무런 활약 없이 부서지는 것을 보며 알맹이는 미국(예거 이름 : 집시 데인져)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한 영화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러시아와 중국이란 설정을 보니 이상하게 사회주의를 상징하는 국가들이네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놓고 '오리엔탈리즘'(서양이 동양을 바라보는 그릇된 인식)을 풍겨대는 연출들은 인상을 찡그리게 만들었습니다. 조연급인 중국 파일럿들의 소림사 헤어스타일와 농구공까진 참는다고 해도 주인공인 마코 모리(키쿠치 린코 분)는 영화 속에 들어가서 한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입니다. '퍼시픽 림'이 남성의 욕망을 반영했다는 평이 있지만, 정말로 남자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걸 보면 한심스럽다고 생각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퍼시픽 림>에 담긴 오타쿠의 향기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을 무색해지게 만드는 이 영화의 힘은 좁게는 '오타쿠 문화'에서 나오며 넓게 보면 제패니메이션(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모든 남성들의 욕망실현입니다. 마치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아이돌 팬클럽, 서울코믹월드에 뭉쳐있던 '야오녀(やお女)'(남성의 동성애를 그린 소설이나 만화를 좋아하는 여성)들 극장가로 불러 모으며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던 것처럼 '한심한' 남자들이 극장에 가는 이유입니다.

<고지라> <가메라> 같은 괴수영화부터 <울트라맨> <후뢰시맨> <마스크맨> <바이오맨> 같은 전대 '특촬물'을 거쳐 '90년대 키즈'의 메시아인 <에반게리온>까지. <퍼시픽 림>엔 사람이 괴수인형을 입고 카메라 위에서 "쿠와앙!" 하고 손을 흔들고, 건물 미니어쳐에서 화약이 터져대던 그 추억을 현실화하려는 욕망들이 담겨있습니다. 제패니메이션의 오마주로 도배된 이 영화는 '덕(오타쿠를 희화화한 단어) 중의 덕은 (서)양덕'이라는 진리를 확인시켜줍니다. 결국 영화의 재미는 나이만큼, '덕력'만큼 보이는 오마주입니다.   

나아가 이런 생각에 도달했습니다. 과연 '<퍼시픽 림>은 길예르모 델 토로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개성적이지 않은 팝콘무비다'라는 일반적인 평에 동의할 수 있는가. 짧은 사견으론 <퍼시픽 림>은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가장 길예르모 델 토로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수놓는 오마주가 이야기 하듯 <퍼시픽 림>은 유년기의 두근거림을 잃지 않은 서양 '오타쿠 감독'의 원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의 <고지라>를 북미대륙에 상륙시킨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고질라>와는 달리 <퍼시픽림>은 멍청하리만큼 노골적인 오리엔탈리즘을 감행하면서까지 이야기 무대를 동북아시아로 잡습니다. 그리고 그 왜곡된 동북아시아가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세계관입니다. 이 영화는 얼추 40년(?) 가까이 쌓은 '덕력'의 소유자인 감독의 '덕질'이기에 어려서부터 주입된 왜곡된 동양의 시선과 태평양 건너 온 섬나라 문화의 동경이 담길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몰입이 방해될 정도로 진상부리는 마코 모리는 감독 눈엔 아야나미 레이(<에반게리온> 히로인) 코스프레로 시각화된 '당연한' 일본인이며, <트랜스포머>같은 헐리웃 결말이 아닌 어쩐지 '가미가제'를 떠올 수밖에 없는 결말은 제패니메이션에 담겨진 '잇쇼켄메이'(一生懸命: 목숨 걸고 일하기)정신을 향한 동경입니다.

 영화 <퍼시픽 림>의 한 장면.

영화 <퍼시픽 림>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콘텐츠의 보고는 일본? 유독 기반이 취약한 한국

<월드워Z>를 보면서도 들었지만 마블 사를 필두로 영화화, 리메이크, 리부트로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할리우드가 이젠 B급 문화를 인양시키려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퍼시픽 림>을 통해 그 B급 문화를 아시아에서 찾았을 때, 일본이 문화적 보고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킹콩>을 보고 탄생한 특촬물 <고지라>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고질라>가 되었습니다. 타카라 사의 '다이아클론'이라는 변신로봇 완구는 미국에서 <트랜스포머>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그 <트랜스포머>가 일본으로 돌아와 선라이즈 사의 <용자시리즈>가 되어 변신로봇사조를 만들어내더니, 마이클 베이의 <트랜스포머>를 만드는 힘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타쿠'문화의 토템인 프라 모델과, 피규어 그리고 코스프레 역시 전부 태평양 건너 일본으로 온 문화들입니다. 이처럼 당연히 '일본 B급 문화'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은 로컬라이제이션(Localization, 지역화)된 문화들이며 그 문화들이 역설적으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메커니즘을 구동하는 원동력은 '오타쿠'에게 있을 겁니다. 그들에겐 하위문화의 덩어리를 키우고, 전문화, 세분화 시키는 열정과 창의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재배된 문화를 대중문화로 인양시킬 때 요구되는 소비주체까지 됩니다. <퍼시픽 림>은 그 오타쿠들이 키워낸 열매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계로 문제를 한정지어볼 때, 우리에겐 일본과 같은 문화적 자원이 없습니다. 여전히 김지운, 박찬욱, 봉준호처럼 감독 개인적의 능력 차원에만 머물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한국극장가는 거대 배급사의 '스크린 독점'으로 강제적인 스코어 불리기 중이고 '배우의 티켓파워'와 '월메이드 영화'라는 강박관념은 개성 있는 감독들을 강제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에 눕힙니다. 다양성이 상실된 토양에서 누가 새로운 농사를 지으려 할 것이며, 또 어떤 씨앗이 발아하겠습니까.

 영화 <퍼시픽 림>의 한 장면.

영화 <퍼시픽 림>의 한 장면. ⓒ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퍼시픽 림 길예르모 델 토로 오타쿠 카이주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