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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승리했다. 이집트가 승리했다."

지난 2011년 2월 11일 이집트를 30년 동안 철권통치한 호스니 무바라크가 '하야'했을 때 인민들의 외침이다. 1981년부터 이집트를 통치한 독재자 무바라크는 시민혁명 앞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민주주는 사람이 만든 가장 위대한 체제이며, 민주주의 핵심은 시민이 주인이다. 지도자는 시민의 머슴일 뿐이다. 이를 거역하면 시민은 그를 끌어내릴 수밖에 없다.

2011년 2월 이집트 인민, 30년 철권통치자 무바라크 끌어내려

무바라크는 30년 철권통치 동안 인민을 탄압하고, 자유를 박탈했으며 민주주의 근간인 언론자유를 탄압했다.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하게 하였고, 부자는 더 부자되게 하였다. 겉으로는 아랍국가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것 같았지만 안으로는 종교차별을 했다. 무바라크가 30년 동안 700억 달러를 축재했다. 무바라크는 축출 후 시위자 학살 혐의로 사형을 구형받았지만, 2012년 6월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지금 카이로 인근 한 병원에서 입원해 있다.

무바라크를 끌어내린 이집트 인민들은 지난 2012년 6월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았다. 그가 무하마드 무르시다. 하지만 딱 1년 만에 이집트 인민들은 끌어내렸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국방장관은 지난 3일(현지시간) 국영TV 생방송을 통해 무르시 대통령 권한을 박탈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임시 대통령으로 아들리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이 취임했다.

무바라크를 끌어내릴 때처럼 이집트 인민들은 다시 환호했다. 하지만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1년 만에 끌어내린 이집트 인민들 선택은 과연 옳은가? 30년 철권통치자 무바라크 만큼 무르시가 독재자였고, 철권통치자였나.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다.

물론 무르시는 대통령 권한 강화와 이슬람주의 표방하는 개헌을 무리하게 추진해, 세속주의자들과 야당 등 반대세력의 저항을 자초했다. 그 결과 올해 초 충돌로 50여명이 숨졌다. 그리고 무르시 축출 계기가 된 대규모 인민봉기가 일어났다.

이집트 인민, 1년 만에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 끌여내려

카이로 시내를 가로 질러 흐르는 나일강. 이집트 민주주의는 과연 유유히 흐를 수 있을까? 지난 1996년 6월 이집트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카이로 시내를 가로 질러 흐르는 나일강. 이집트 민주주의는 과연 유유히 흐를 수 있을까? 지난 1996년 6월 이집트에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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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독재자 무바라크가 물러나면 '살림살이'가 조금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무르시 정부는 무능했고, 물가는 치솟았다. <한겨레>에 따르면, 현재 이집트 9000만명 인구의 절반이 하루 2달러 이하의 돈으로 연명한다. 유엔 보고서는 식량난을 겪는 이집트 국민의 비율이 2009년 14%에서 3년 만에 17%로 늘어났다고 추산했다.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내린 국가도 정권교체는 대부분 '먹고 사는 것'때문에 일어난다. 하물며 30년 만에 자유를 만끽한 후 '살림살이'까지 정부가 책임져 주기를 바랐는데 무르시 정부는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 민주주의가 뿌리내리지 못한 이집트는 또 다시 인민봉기를 했고, 군부는 인민들 힘을 빌여 무르시를 축출한 것이다. 국방장관 대통령을 축출하는 장면은 민주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쿠데타'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이집트 전문가 미셸 던은 4일(현지 시각) 워싱턴포스트(WP)에 기고한 글에서 "합법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을 군부가 축출한 명백한 '쿠데타'인 이번 이집트 사태를 미국이 쿠데타로 규정하지 않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무르시 대통령의 과오는 과오이고, 쿠데타는 쿠데타다"라고 말했다고 <조선일보>는 6일 보도했다.

2011년 이집트 인민 '선택'은 옳았지만, 2013년 선택은 동의할 수 없어

맞다. 무르시가 무리하게 개헌을 추진하고, 경제를 살리지 못한 것은 비판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대통령에서 물러날 사안은 아니다. 대통령이 헌법과 법을 명백하게 어기지 않았는 데 축출시키는 것은 쿠데타다. 다른 단어가 없다. 지난 2003년 3월 한나라당과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을 때 '의회쿠데타'라는 거센 비판을 받은 이유다. 1972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하야 한 이유는 불법도청과 수사 과정에서 권한을 남용했기 때문이다.

무르시는 대통령으로서는 무능하고, 과오를 범한 것은 있지만, '불법' 대통령은 아니다. 경제를 살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직접 선출된 대통령을 끌어내리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2011년 2월 이집트 인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를 끌어내린 선택은 옳았지만, 2013년 6월 무르시를 끌어내린 선택은 동의할 수 없는 이유다. 이것이 반복되면 다음 대통령도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집트 민주주의에 도움될 리가 없다.

무엇보다 무르시 축출 과정에서 인민봉기를 빌여 쿠데타를 '혁명'처럼 교묘히 꾸민 군부는 비록 무바라크는 없지만 기득권층이다. 지난 2011년 2월 무바라크가 하야하자 <다음> 누리꾼 '마루나무'는 이런 댓글을 남겼다. 선견지명이 있다.

"무라바크는 퇴진만 했을 뿐 이집트의 민주주의는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무라바크의 권력 야욕만 저지했지…. 이게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집트 국민들이 진정으로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 거면 무바라크를 외국으로 내쫓고 퇴진시키고 할 게 아니라 그를 처벌하거나 아니면 모든 재산을 몰수하고 그지로 만들어서 외국으로 쫓아낸 뒤 국민을 무시한 죄값을 당당하게 치르게 해야합니다."

이집트 인민들, '봉기'가 아닌 선거를 통해 권력자 교체하는 성숙함 길러야

이집트 인민들은 30년 독재자는 완전히 축출시키지 못하고, 자신들이 뽑은 대통령을 내몰았다. 이집트 군부가 무력으로 인민들을 탄압하지 않지만, 자신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교묘한 쿠데타를 저질렀을 뿐이다. 군부는 자신들 권력을 내려놓지 않았다. 군부가 권력에 손길을 내미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이집트 카이로 근교 무덤들이다. 지난 5일 이집트에서는 30명이 사망해 '피의 금요일'이었다.
 이집트 카이로 근교 무덤들이다. 지난 5일 이집트에서는 30명이 사망해 '피의 금요일'이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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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진보지 <가디언>은 사설에서 "투표함을 창밖으로 내던진 이집트는 2년 전으로 후퇴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집트 인민들은 지금 당장은 무르시 축출을 환호할지 모른다. 하지만 <가디언> 비판처럼 시간을 2년 전으로 되돌렸다. 아니, 무바라크 통치때보다 이집트는 더 심각한 비극으로 빠져들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금요 휴무일인 5일은 수도 카이로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에서 양 지지세력이 유혈 충돌해 모두 30명 사망하고 320명이 부상하는 등 '피의 금요일'로 얼룩졌다. 무르시를 끌어내린 대가가 30명 생명이다.

앞으로 더 많은 고귀한 생명이 잃을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피로 얻어진다고 하지만, 이런 피는 흘리지 말아야 한다. 이집트 인민들이 '봉기'가 아닌, 선거를 통해 권력자를 심판하는 날이 하루 속히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군부를 비롯한 기득권을 제대로 심판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태그:#이집트, #무르시, #무바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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