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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4일 오후 1시 56분]

2011년 2월 이후 2년여 만에, 이집트에서 대통령이 또 다시 쫓겨났다. 이번에는 이집트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다. 30년간 이집트를 철권통치한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나는 데는 18일, 집권 1년을 갓 넘긴 모하메드 무르시가 축출되는 데는 단 나흘이 걸렸다.

3일 오후 9시께(이하 현지시각), 이집트 군부 수장이자 무르시 정부 국방장관인 압델 파타 알시시는 국영TV 생중계를 통해 모하메드 무르시의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박탈했다고 밝혔다. 전국적으로 번진 반정부 시위의 주요 원인이었던 이슬람 율법을 강조한 헌법은 효력 이 정지됐다. 조기 대선이 실시될 때까지 아딜 만수르 이집트 헌법재판소장이 임시대통령직을 맡는다. 무르시는 공화국 경비대에 의해 '가택연금' 당했고, 무르시의 지지기반인 무슬림 형제단의 핵심 멤버들이 체포됐다.

2년여 만에 대통령 또 다시 축출... 무르시 '가택연금'

반정부 시위대는 축제 분위기다.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수백만 명의 시위대가 군부의 발표가 나오자 "신은 위대하다", "이집트여 영원하라"고 외치며 환호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타흐리르 광장은 2011년 무바라크 퇴진 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하다. 하늘에서는 불꽃놀이가 열렸고 시위대는 춤을 추고 깃발을 흔들었다.

무르시 공식 트위터 계정은 군부의 조치를 "쿠데타"라고 맹비난했다. 그는 선거를 통해 선출된 자신의 정통성이 훼손돼서는 안 된다고 반발하면서 자신의 축출이 "이집트의 자유로운 국민들에 의해 절대적으로 거부당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는 인터넷에 공개된 짧은 영상을 통해서도 같은 메시지를 전했다.

무르시의 외교분야 보좌관인 에삼 알 하다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지금 쿠데타가 진행되고 있다"면서 "민중의 거대한 힘 앞에, 군부 쿠데타는 엄청난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군부 쿠데타의 이름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겠다"면서 "이것이 내가 페이스북에 남길 수 있는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군부 발표 이후, 분노한 무르시의 지지자들도 거리로 나와 외쳤다. 

"군부 통치에 반대한다."

이는 무바라크 사퇴 이후 17개월간 이어진 구호이기도 하다. 군부는 지난해 무르시가 선출될 때까지 정부를 임시운영했다. 이에 타흐리르 광장에서는 '민정이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런데 '민주정부' 수립 1년 만에 군부는 다시 돌아왔다. 무르시가 민주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국민들에 의해서.

이집트, 다시 격랑 속으로... '아랍의 봄'은 아직

무르시는 지난해 11월, 대통령 자신에게 초법적 권력을 부여하는 이른바 '현대판 파라오' 헌법선언문을 발표해 강한 반발에 휩싸였고, 이후에도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이슬람주의자들에게 편향된 정책을 펼쳐 이집트 사회를 분열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경기침체 역시 시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무슬림 형제단 계열의 자유정의당에 반대하는 나기브 아바디르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은 쿠데타가 아니라 혁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CNN과 한 인터뷰에서 "국민들은 더 이상 무르시가 합법적인 지도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는 이미 ('파라오 헌법선언문'을 발표한) 지난해 11월 적법성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군부 역시 무르시 대통령 축출이 '쿠데타'라는 해석을 거부했다. 알시시는 군부가 "역사적인 책임"을 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르시가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 나온 반정부 세력과도 권력을 나눠야 한다는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면서 "이집트 국민들의 변화와 개혁에 대한 열망을 따랐다"고 전했다. 알시시는 "군부 권력은 정치에서 거리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부가 이처럼 자신들의 행동이 '쿠데타'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미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은 1년에 15억 달러의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하고 있다. AP통신은 "미국 정부가 이집트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고 본다면 지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집트 사태에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군부에게 "가능한 한 빨리, 포괄적이고 투명한 과정을 통해 모든 권력을 민정에게 이양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위를 주도한 '타마루드'의 대변인 마무드 바디르는 "우리는 모두가 함께하는, 모두를 위한 이집트를 건설할 것"이라며 기대를 나타냈다. 하지만 군부의 개입으로 이집트는 또 한 번 격랑에 휩싸였다. 이미 친무르시와 반무르시 세력의 충돌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아랍의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태그:#이집트, #아랍의 봄, #무르시, #무바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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