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을 통과하고, 봉에 매달리며, 심지어 치마를 벗는다. 동작만 놓고 보면 서커스쇼나 스트립쇼에서나 볼 수 있는 장면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이는 각종 음악방송과 쇼케이스를 통해 선보이고 있는 몇몇 걸 그룹의 댄스 동작이다. 바로 씨스타의 '링댄스', 애프터스쿨의 '폴댄스', 그리고 달샤벳의 '먼로춤'이다.

지금 가요계는 여름을 겨냥한 걸그룹의 잇단 컴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볼거리가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컴백 무대를 선보이고 있는 걸그룹의 퍼포먼스가 지나치게 선정적이고 섹시미를 강조한 무대로만 꾸며지고 있다는 사실은 한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걸그룹 간의 경쟁이 마치 누가 더 선정적인 무대를 꾸미는 지로 번져가면서 마치 노출 과열 경쟁으로 흘러가는 양상을 띠기 때문이다.

특히 '폴댄스'를 연습하기 위해 발목을 다치고, 종아리와 무릎, 허벅지에 시퍼런 멍이 들어가면서까지 무대를 꾸며야 하는 애프터스쿨 멤버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움과 동시에  걸그룹의 섹시춤 대결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느껴진다. 대체, 누구를 위한 춤이란 말인가?

 6번째 맥시 싱글 앨범 '첫사랑'을 가지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 애프터스쿨의 이영이 13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슬아슬한 폴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6번째 맥시 싱글 앨범 '첫사랑'을 가지고 팬들 곁으로 돌아온 애프터스쿨의 이영이 13일 오후 서울 서교동의 한 공연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슬아슬한 폴댄스를 선보이고 있다. ⓒ 오마이스타 이정민


걸그룹의 섹시춤 대결, 이대로 괜찮을까?

걸그룹의 무대를 보고 있으면 마치 누가 더 짧은 치마를 입고 무대에 오르고, 누가 더 섹시한 표정을 짓고, 누가 더 자극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경쟁하는 것만 같다. 그 이유는 사실 너무도 단순하다. 수많은 걸그룹 가운데 돋보이기 위해, 자신들만의 개성을 표현하기 위해, 그리고 이 넘쳐나는 아이돌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후크송과 기계음으로 버무려진 음악이야 다 거기서 거기고, 비주얼도 상향 평준화 되었고, 포인트 안무도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으니, 결국은 선정성을 앞세워 언론과 대중의 관심을 끌기 위한 전략을 펼쳐내고 있는 것이다.

'링댄스', '폴댄스' 이전에도 '쩍벌춤'이라 하여 짧은 바지와 치마를 입고 다리를 벌리거나 혹은 성행위 장면을 연상시키는 댄스와 야릇한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자세를 취하는 등 다양한 퍼포먼스가 존재해왔다. 하지만 너도나도 '차별화'라는 명분아래 섹시댄스를 앞세우다보니 이마저도 결국은 식상한 수준에 이르렀다. 자극의 수위는 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치마를 풀어헤치고 속바지를 보여주는 '먼로춤'과 높은 봉위에 올라가 몸을 누이는 '폴댄스'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인조 걸그룹 달샤벳(세리, 아영, 지율, 우희, 가은, 수빈)이 19일 오후 서울 청담동 일지아트홀에서 가진 쇼케이스에서 찍찍이가 붙어있는 치마를 펼치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인조 걸그룹 달샤벳(세리, 아영, 지율, 우희, 가은, 수빈)이 19일 오후 서울 청담동 일지아트홀에서 가진 쇼케이스에서 찍찍이가 붙어있는 치마를 펼치며 화려한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 오마이스타 이정민


하지만 6개월간 피땀 흘리며 연습했다는 애프터스쿨의 '폴댄스' 무대를 보고 있으면, 이들의 섹시함과 개성이 느껴지기 보다는 대체 '걸그룹도 참 피곤하겠구나'하는 안타까움이 먼저 느껴진다. 리지는 '폴댄스'를 연습하는 과정에서 발목 인대 부상을 당해 보호대를 차고 일정을 소화하고 있으며, 레이나 역시 팔을 다쳐 격한 동작을 자제하고 있다. 나나의 경우에는 음악방송 사전녹화 후 무대를 내려오다 발을 헛디뎌 골반 부상을 당했다. 애프터스쿨만의 무대를 보여주기 위해 오랜 시간 준비한 '폴댄스'가 오히려 멤버들을 부상으로 몰아넣으며 무대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것이다.

걸그룹 가운데에서 노래 실력이 출중하다고 평가받는 시스타는 또 어떤가. 내놓는 노래마다 흥행시키는 저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짧은 하의와 몸에 딱 달라붙는 의상을 포기하지 못하며, 상대적으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달샤벳은 "내 다리를 봐"라는 노래 제목을 앞세워 노골적으로 하체를 강조하는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신생 걸그룹이나 이들 이후에 컴백하게 될 걸그룹은 보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무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엔 부상에 대한 위험도 더 커질 것이고, 방송 수위를 넘나들 정도의 민망한 퍼포먼스도 등장하게 될 것이다. 노래와 음악은 실종되고 의상과 춤만 남는 악순환이 되풀이 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폴댄스' 연습으로 인해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든 애프터스클 멤버 나나. <스타킹> 중 한장면.

'폴댄스' 연습으로 인해 다리에 시퍼렇게 멍이든 애프터스클 멤버 나나. <스타킹> 중 한장면. ⓒ SBS


추는 사람들은 부상에 시달리고, 보는 사람들도 민망한 섹시춤 대결은 대체 언제까지 지속돼야 할까? 규제를 통해 막아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퍼포먼스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무대를 즐기고, 굳이 선정적인 의상과 춤이 아니더라도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고자 하는 공감대가 먼저 형성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은 걸그룹 멤버 당사자와 음반 제작자, 그리고 방송과 연예매체, 대중이 모두 하나 되어 풀어나가야 할 숙제다. 섹시댄스도 좋지만,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 시퍼렇게 멍이 들면서까지 '폴댄스'를 연습해야 할 이유는 없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목숨을 걸고 춤을 춰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퍼포먼스도 좋지만, 그 비중이 50%가 넘는다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아무리 그래도 5나 6이었던 비중을 4로 끌어내리고 음악적인 기준을 높이면 음악적으로도 성공일 뿐더러 퍼포먼스도 더 돋보이지 않겠나"라는 가왕 조용필의 조언을 되새겨보아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개인블로그(saintpcw.tistory.com),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애프터스쿨 폴댄스 봉춤 씨스타 달샤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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