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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광역시 유성구 관평동 테크노밸리 공동직장어린이집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뿌리경로당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관평동 테크노밸리 공동직장어린이집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뿌리경로당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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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아버지! 모내기해요~"

한여름 날씨처럼 후텁지근했던 지난 23일 오전, 대전 뿌리와새싹어린이집 해찬이방, 힘찬이방 아이들이 어린이집 옆 뿌리경로당 앞에 앉아있는 할아버지들에게 우르르 달려가 손을 잡아끌었다. "같이 해요, 할아버지"라는 아이들 애교에 3명의 할아버지들은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아이들과 함께 모내기 할 장소로 걸어갔다. 오늘은 아이들과 할아버지들이 함께 어린이집 앞 공터에서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모내기를 하는 날이다.

할아버지가 보육교사와 함께 모내기 할 큰 통을 들어 옮기자, 아이들은 "할아버지 힘내세요"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날렸다. 또 다른 할아버지가 이미 준비한 삽을 이용해 어린이집과 경로당 건물 사이의 흙 밭에서 흙을 퍼 아이들이 들고 온 플라스틱에 조금씩 담아주자, 아이들은 모내기 할 통에 흙과 물, 거름까지 골고루 붓기 시작했다. 그리고 할아버지들과 함께 팔을 걷고 흙과 물을 걸쭉하게 섞었다.

모내기 할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춰지자 미리 준비된 모를 통에 심는 아이들. 할아버지들은 모가 잘 심어졌는지 살피고 삐뚤게 심어진 모를 정갈하게 정리하느라 여념이 없다. 별명이 '키다리할아버지'인 할아버지는 "이렇게, 여기다가 세우는 거야"라며 아이들에게 모내기 법을 알려줬다. 모내기하는 동안 아이들과 할아버지들의 손과 옷은 흙 범벅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재밌는지 연신 신난 모습이었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로 함께 키우자

대전 유성구 관평동 대덕테크노밸리 내에 있는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은 대전 대덕테크노밸리 인근 업체들이 참여하는 공동직장보육시설로 공동육아의 이념과 철학을 바탕에 두고 운영되고 있다. '내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로 함께 키우자는 이념 하에 아이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을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드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도 노인세대와 아이들의 다양한 활동을 통해 즐거움을 함께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이다.

대전 테크노밸리 공동직장어린이집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모내기를 할 때 필요한 흙을 담기 위해 그릇을 내밀자, 할아버지가 삽으로 흙을 퍼주고 있다.
 대전 테크노밸리 공동직장어린이집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모내기를 할 때 필요한 흙을 담기 위해 그릇을 내밀자, 할아버지가 삽으로 흙을 퍼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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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내기를 마친 아이들은 어린이집 마당에서 기르는 토끼에게 줄 토끼풀을 뜯기 위해 '키다리할아버지', 그리고 '버들피리할아버지'와 함께 인근 관평천 나들이에 나섰다. "할아버지 짝손 해야지~"라는 교사의 말에 아이들은 할아버지 양손을 꼭 잡았다. 키다리할아버지의 손을 잡은 조재민(6·가명)군은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할아버지 손을 높게 흔들고 장난을 치며 깔깔거렸다. 할아버지도 재민 군의 배를 간지럽히며 화답했다.

5분 정도를 걸어 나가자 햇살 가득한 관평천이 펼쳐지고 아이들과 할아버지들은 준비한 봉지에 토끼풀을 뜯어 모았다. "저기 다리 밑에 토끼풀이 더 많다"는 키다리할아버지의 조언에 아이들도 다리 밑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들이 풀을 뜯어주면 아이들은 봉지 가득 풀을 담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펼쳐진 자유시간. 아이들은 풀줄기를 뜯어 줄넘기를 하고 버들피리로 '삑삑' 연주하며, 흙과 나무토막을 이용해 고기요리를 만들었다. 버들피리할아버지는 신 나게 노는 아이들이 귀여운지 아이들 곁에 앉아 노래 한 자락을 뽑아냈다. 버들피리할아버지 신갑수(79)씨가 아이들과 함께 한 지도 벌써 3년이 넘었다.

신씨는 "봄에 같이 나들이 왔다가 버들피리를 불었더니 아이들이 버들피리할아버지라고 부른다"며 "한 달에 몇 번씩 애들하고 와서 구경하니까 좋다. 뿌리와새싹 어린이들이 있어서 같이 놀 수 있는 거다. 흙 묻은 바지 같은 건 집에 가서 빨면 된다"고 웃어보였다.

현재 뿌리와새싹어린이집에 다니는 아이들은 총 91명. 모집 시기가 아닌 요즘에도 대기인원만 60명이 넘는다. 몇 년 전만 해도 꿈도 못 꿨던 풍경이다.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은 한화그룹 자회사인 (주)대덕테크노밸리가 사회공헌 차원에서 대덕테크노밸리 단지 내 공동육아 및 공동양로가 가능한 노유(老幼)복합시설 '뿌리와새싹'을 설립하면서 만들어졌다.

'뿌리와새싹'은 아동과 노인 세대가 교류하고 지역주민들과 소통하는 커뮤니티센터다. 아동시설과 노인시설이 분리돼 운영되는 기존 사회복지시설과는 달리 아동과 노인 세대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다. 일본에선 흔하지만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는 커뮤니티다.

몇 백 개의 기업체가 들어와 있는 대덕테크노밸리 내 기업체 근로자를 위한 보육시설의 필요성이 제기되면서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은 공동직장보육시설로 윤곽이 잡혔다. 위탁운영에 나선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은 공동육아 교육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등 공동직장보육시설 운영을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기업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 기업들 측에 공동직장보육시설을 안내하는 공문을 돌리며 적극 홍보에 나섰다. 하지만 공동직장보육시설에 대한 기업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뿌리와새싹어린이집에 아이 보내기 위해 인근으로 이사 오기도

'모 심는 아이와 할아버지' 대전 테크노밸리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뿌리경로당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흙과 물, 거름을 넣은 커다란 통에 모를 심고 있는 모습.
 '모 심는 아이와 할아버지' 대전 테크노밸리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뿌리경로당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흙과 물, 거름을 넣은 커다란 통에 모를 심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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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학 (사)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사무국장은 "당시에는 공동직장보육시설이 뭔지, 공동육아가 뭔지 잘 몰랐다. 700곳의 기업들에 공문을 돌렸지만, 기업들은 '근로자 보육을 왜 우리가 하느냐'며 일거리라고 생각했다. 의지도 없고 마인드 자체가 열악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나마 관심을 보인 기업은 10곳도 안 됐다. 결국, 어린이집 관계자들은 전략을 바꿨다. 기업의 CEO나 관리자를 설득하는 대신 지역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열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회사를 설득하도록 했다. 이 전략은 딱 들어맞았다. 2008년 11월 어린이집 개원 당시 18명의 아이들을 시작으로 운영된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은 2009년 후반기, 참여기업도 아이들도 확 늘어났다. 현재는 참여 기업이 55곳에 달한다. 공동육아의 장점까지 입소문이 퍼지면서 개원 만 5년 만에 눈에 띄게 규모가 커진 것이다.

부모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공동육아에 관심 있는 부모들의 열기는 기대 이상이었다. 뿌리와새싹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인근으로 이사를 오는 부모들도 생겼다. 지역주민들도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의 문을 두드렸다. 현재 어린이집의 입소 1순위는 참여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가정, 2순위는 참여기업에 다니는 외벌이 가정, 3순위는 참여 사업장 근로자가 아닌 지역주민(고용보험 사업장 근로자)이다.

첫째 아이를 졸업시키고 현재 6살 둘째 아이를 보내고 있는 손선미(38)씨는 "조금 떨어져서 살았는데 둘째, 셋째 아이까지 보내려고 이쪽 인근으로 이사를 오게 됐다"며 "보육환경 자체가 열려 있어서 아이들 생활하는 것도 볼 수 있고 믿고 맡길 수 있다. 또 기타모임, 독서모임 등 부모끼리 여러 모임이 있어 서로 소통할 수 있고, 아이를 키우면서 어려운 점은 서로 도울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다.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은 여느 공동직장보육시설과는 달리 공동육아를 이념으로 운영되면서 부모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동화책 읽는 모임, 전통놀이연구회, 교육연구모임, 마을만들기 모임은 물론, 아빠들끼리의 캠핑모임도 진행되고 있다. 권영학 사무국장은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와 상호작용을 하면서 잘 키우고 있을까'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많이 느낀다. 그런 걸 해결할 수 있는 건 부모 참여 밖에 없다. 부모 참여를 통해 아이의 생활을 알고 아이와의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부모와 동네 어르신 등 모두가 함께하는 보육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모내기' 대전 테크노밸리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뿌리경로당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흙과 물, 거름을 넣은 커다란 통에 모를 심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이의 손이 인상적이다.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모내기' 대전 테크노밸리 뿌리와새싹어린이집 아이들이 뿌리경로당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모내기를 하고 있다. 흙과 물, 거름을 넣은 커다란 통에 모를 심고 있는 할아버지와 아이의 손이 인상적이다.
ⓒ 이기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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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새싹어린이집은 최근 보건복지부가 선정한 직장어린이집 모범 운영 기업에 선정됐다. '노인-아동통합프로그램'은 2010년 고용부가 뽑은 직장보육시설 우수 프로그램 '우수상'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부모와 동네 어르신 등 모두가 함께하는 보육을 통해 걱정 없이 일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것, 모두의 아이로 성장하는 길을 열어주는 뿌리와새싹어린이집의 운영 방침이 인정을 받는 순간이었다.

박현숙 원장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는 게 의무이지만, 중소기업들은 대기업보다 이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대기업이 아니고는 이런 걸 운영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만 의지가 있다면 충분히 운영할 수 있고 지원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박 원장은 "12시간 보육이 너무나 당연하게 적용되는 직장보육시설은 일하는 부모들이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도록 해준다. 아이들과 부모 모두에게 직장보육시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육아전문지 베이비뉴스(www.ibaby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뿌리와새싹어린이집, #공동육아, #직장어린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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