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제주4·3 항쟁 65주기를 맞았다. <지슬-끝나지 않은 세월 2>과 <비념>은 각각 픽션과 다큐로 제주 4·3을 다룬다. 관광지화 된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다루기 위해 혹은 맞서기 위해 두 영화는 각각 다른 방식의 색의 미학을 선택한다. <지슬>은 흑백이며 <비념>은 색채를 극대화 한다. 두 감독 모두 미술을 전공했다.
제주말로 대사가 진행되는 <지슬>에는 표준어 자막이 있다. 오멸 감독의 전작인 <어이그 저 귀것>에서도 자막을 보고, 표준말 독점 한국 영화계에 진정한 지역 영화가 탄생했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제주 출신의 오멸 감독이 다루는 <지슬>은 항쟁이나 이념보다는 한 마을 사람들이 동굴로 도피하고, 생활하고 집단 죽음을 맞는 과정을 통해 국가 폭력의 어이없는 행사를 드러낸다.
1943년 11월, 해안선 5킬로 밖 모든 사람을 폭도로 여긴다는 소문이 돌자 임산부와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피했던 마을 사람들은 근심하고 갑갑해하면서도 지슬(감자)로 연명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일제 때 부역한 것에 대한 언급부터 소소한 일까지 동굴 속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는 정겹다. 동굴은 실재 피난 장소를 넘어 마치 60여년 전 억울하게 간 영혼들이 돌아온 듯 웅성거린다.
그러나 동굴 밖은 잔혹하다. 어린 군인은 민간인을 죽이지 못했다고 엄동설한에 발가벗겨진 채 벌을 서고, 아들을 동굴로 보내고 남은 할머니는 학살당하며, 말처럼 잘 뛰던 토박이 청년은 토방에 갇힌 뒤 밀고자가 된다.
동굴로 가지 못한 순덕은 군인들에게 잡혀 집단 강간을 당한다. <지슬>은 다른 폭력이나 살상은 사실적 재현을 피하는 대신 그 결과를 보여주거나 암시하는데 반해 성폭력은 순덕의 벗겨진 가슴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 그 과정을 보여주고 그녀의 육체에 관한 여러 차례의 언급이 행사되는 등 다른 폭력 묘사에 비해 대안적 재현 방식을 찾지 못한다. 이 영화에서 벌거벗은 생명은 예의 어린 군인, 순덕 그리고 돼지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슬>은 감싸 안는 듯 아름다우면서도 혹독한 제주의 자연과 역사의 잔혹함을 절묘하게 겹쳐낸다. 집단 학살당한 뒤 냉전 때문에 오래 동안 정치적으로 상징적 학살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을 현재로 불러내 이야기를 나누게 하고, 부조리한 민간인 "폭도" 사냥을 보여준다.
이라크 전쟁 이후 전쟁 영화를 게임 장르로 축소시켜 민간인마저 스펙터클하게 살해하는 <모던 워페어 modern warfare> 같은 게임이 산업적으로 대세인 지금 <지슬>은 비상, 위기 시 공동체의 정과 웃음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너트리는 국가 폭력을 바라본다.
임흥순 감독의 <비념>은 사려 깊은 영화다. 이 다큐에는 두 겹의 시선이 있다. 관광객의 시선으로 보는 제주도 그리고 문득 그 시선의 소유자인 관광객들 마저도 부지불식간에 눈치 채게 되는 제주의 과거, 4·3 . 그래서 두 번째 발견의 시선은 첫 번째 시선위에 그 겹 공간을 짓는다. 4.3을 잘 모르는 현재의 관객들에게 효과적인 호소 방식이 될 수 있다.
이 영화 프로듀서의 할머니인 강상희씨는 4·3으로 남편을 잃었고 <비념>은 이 할머니와 오사카로 떠나야했던 4·3의 피해자들 그리고 오늘의 강정 해군 기지 사건을 영화적 공간 위에 함께 불러 모은다. 집단 학살과 상징적 학살을 거친 4·3 민중항쟁의 피해자들에게 이 영화가 증여하고자 하는 것은 비념이다.
<비념>은 현재 시간에서 이미지와 사운드를 통해 과거를 새롭게 생성시킨다. 비념의 공명 속에 4·3은 망각과 기억의 변증법을 잠시 유예시킨다. 마을의 집단 제사를 넘어서는 애도와 추모와 해원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