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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간판과 삼색등이 반갑고 정겹다.
 오래된 간판과 삼색등이 반갑고 정겹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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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맞아 집안 대청소와 함께 이발을 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미용실이 아닌 이발관에서 머리를 깎았다. 내가 사는 동네에선 사라진 곳이다 보니 찾아간 곳이 영화 <효자동 이발사>가 연상되는 '형제 이발관'.

남자들이라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처음 이발관에 가거나,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에 갔다가 이발소에 들렀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서울에 남아있는 이발관을 보면 참 반갑고 새록새록 옛 추억이 떠올라 볼일이 없어도 그냥 들어가 보고 싶다. 

지금이야 남녀노소 누구나 자연스럽게 미용실 가서 머리카락을 다듬지만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남자는 이발소, 여자는 미용실로 구분 지어졌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남자들도 미용실에 가기 시작하면서 동네에 성행하던 이발소는 시대에 밀려 하나둘씩 사라져갔다.

늘 웃음을 머금고 일을 하신다는 이발사 아저씨.
 늘 웃음을 머금고 일을 하신다는 이발사 아저씨.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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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효자동 이발소'라고 불리는 형제 이발관은 옛날 모습 그대로의 모습으로 운영 중이라 더 반가운 곳이다. 이젠 지방의 소읍 동네나 서울 역사박물관이나 가야지 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손님들로 북적이며 동네 아저씨들의 사랑방 역할로 생동감 넘치는 이발소를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푹신한 소파에 앉아 진한 커피 믹스를 마시며 같이 기다리는 동네 아저씨, 어르신들과 얘기를 나누는 시간도 흥미로웠다.

형제 이발관은 한 60년 정도 되었고, 지금의 김재호 이발사가 운영한 지는 25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손님 머릴 깎을 때도 늘 미소를 짓는 주인 아저씨는 원래 다른 곳에서 일하셨는데 자꾸만 이발소가 이상한 아가씨들이 나오는 곳으로 변해가는 것이 싫어서 이곳으로 옮기셨단다.

키작은 어린이 시절 올라 앉아 머릴 깎았던 나무 판대기가 아직도 있다니.
 키작은 어린이 시절 올라 앉아 머릴 깎았던 나무 판대기가 아직도 있다니.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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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만에 들른 형제 이발관은 놀랍게도 추억속의 이발관 그대로였다. 따듯한 온기를 불어주는 난로, 오래된 금고, 날 면도기, 머리감는 세면대... 어린이 손님들도 없을 텐데 아이들이 올라앉아 머리를 깎는 나무 받침대도 보관하고 있었다. 이발관 바깥에 있는 삼색등과 그 옆 "BARBERSHOP 친절히 모시겠습니다"라고 써있는 간판도 처음 그대로란다. 주인 아저씨의 그런 노력 덕분에 형제 이발관은 다행히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다.

특히 냄새에 대한 기억도 머리속에 오래 남는 구나 깨닫게 해준 '쾌남' 스킨향은 절로 향수에 빠지게 했다. 잊고 살았던, 이곳에 오지 않았음 영원히 잊고 지냈을 어릴 적 추억들이 고스란히 깨어나는 것 같아 머릴 깎이는 동안에도 실실 웃음이 새어 나왔다.

머릴 다 깍고 나면 중년의 아주머니가 푸근한 손길로 머리를 감겨 주신다.
 머릴 다 깍고 나면 중년의 아주머니가 푸근한 손길로 머리를 감겨 주신다.
ⓒ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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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이발관은 청와대에서 가까운 덕택에 청와대 직원들이 단골손님 중 하나란다. 청와대에서 가깝기도 하지만 청와대 직원들 특유의 8:2 가르마의 단정하고 깔끔한 이발이 아저씨 전문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형제 이발관 대신 동네 이름을 따서 '효자동 이발소'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청와대 직원들이 자주 오다보니 소문이 나서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들어왔을 때 대통령 전속 이발사로 오라고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아저씨는 깨끗이 거절하셨는데 이유는 지금의 가게와 단골손님들을 버릴 수가 없어서였다고. 그렇게 입소문을 타서 그런지 영화 <효자동 이발사> 제작진들이 찾아와 장소 제공 및 주연을 맡은 배우 송강호씨에게 이발하고 면도하는 것 좀 가르쳐달라고 했지만 아저씨는 바쁘다며 거절했다고 한다. 이후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연이었지만 주인 아저씨는 굳이 그럴 필요를 못 느껴 사양했단다.

열때마다 '띵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나는 오래된 돈통.
 열때마다 '띵 ♬'하고 경쾌한 소리가 나는 오래된 돈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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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단골손님들이 많아 그런 일로 부수입을 얻거나 홍보를 할 이유가 없었던 듯하다. 아닌게 아니라 주말을 맞아 기다리는 손님들이 많고 와서 예약까지 하는 분들도 있었다. 다들 자기 집처럼 커피를 들고 돌아다니며 얘기하는 편안한 모습이 정겨웠다. 청와대가 가까워서 그런지 정치 이야기도 많이 오간다. 머리를 감겨주는 중년의 아주머니가 통속에서 뜨거운 물을 받자 이발관 안이 따듯한 수증기로 촉촉해진다. 이곳은 단순히 머리를 자르는 곳이 아니라 한 동네 아저씨들이 모여 세상살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사랑방이었다.

덧붙이는 글 | ㅇ 형제 이발관 찾아가기 ;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 자하문로 17길, 청운효자동 자치회관 건너편, 이발료는 만원



태그:#형제 이발관, #효자동 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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