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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를 키워드로 2013년 경제정책 방향을 내놓은 이후 박근혜 정부가 첫 세부정책으로 선택한 분야가 부동산이라는 사실은 별로 창조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4월 1일 발표한 부동산 정책의 공식 명칭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주택시장 정상화 종합대책'이다. 제목에서 드러난 것처럼 주거복지정책이 아니라 주택의 공급과 수요 조절을 통한 시장 부양(정부 표현은 시장 '정상화') 정책이다. 발표 세부내용 뒷부분에 하우스푸어와 렌트푸어 대책 그리고 공공임대주택 대책이 있지만, 이는 대선 공약내용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또한 제목에서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대책이라고 표현하고 있지만, 레토릭에 불과할 뿐 진짜 목적이 '부동산 시장 부양을 통한 경기회복 도모'인 것도 명확하다. 3월 28일자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한 '박근혜정부 2013년 경제정책 방향'에서 "내수, 수출 쌍끌이 경제 여건 조성을 위해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문제의식을 이미 분명했기 때문이다.

경기 부양의 첫 수단으로 부동산을 선택한 정부

4.1 부동산 시장 부양 대책은 그런 차원에서 보면 집권 첫해 침체된 경제에서 탈출하기 위한 가장 일차적인 지렛대로서 부동산 경기 부양을 선택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경기가 정말 회복될 수 있는가? 그로인해 치러야 할 비용과 대가가 분명 존재하지 않을까?

4.1 대책의 핵심은 공급 측면에서 공공주택 분양을 다소 조절하면서, 수요 측면에서 과감한 세금 감면과 금융규제 완화를 통해 주택 매매 수요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매매시장을 넘어 (공공임대가 아닌) 민간 임대시장을 키우겠다는 것이며 분양가 상한제 폐지,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개발 부담금 감면,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등 건설업자를 위한 규제 완화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면 이 시점에서 현재 부동산 시장이 정체된 원인과 상태를 확인해보자. 진단이 제대로 되어야 정책 처방이 맞게 제시되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수요 측면을 보자. 우리나라의 주택가격은 수도권 기준으로 소득대비 8배가 넘을 정도로 여전히 높다. 그럼에도 시장거래가 가능했던 것은 대규모로 공급된 주택담보대출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소득이 아니라 부채를 통해서 주택 수요가 지탱되어 온 것이다.

부채기반 주택 수요 붕괴, 미분양 주택 증가 

이러한 부채기반 주택수요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통해 총체적으로 붕괴했다. 그 때문에 위기 이후 미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상당 기간 가계의 채무조정을 겪게 되고 이에 따라 주택가격도 하락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계부채 축소 조정과 주택가격 하락이 어느 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주택시장이 다시 작동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부터 조금씩 주택경기가 살아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이전 상황으로의 복귀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경제위기 가운데에서도 전혀 조정되지 않고 계속 커져 왔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계속된 부동산 경기의 인위적 부양 조치들과 안이한 가계부채 대책 때문이었다. 그 결과 GDP대비 개인 금융부채는 2007년 81.6%에서 지난해 91.1%까지 늘어났고 가처분 소득대비로도 160%를 넘어섰다. 당분간 가계부채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원리금 상환 압력을 완화하는 것이 급선무인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림 1 참조)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세계 경제위기 중에도 전혀 조정되지 않았다. GDP 개인 금융부채는 2007년 81.6%에서 2012년 91.1%까지 늘었다. (자금순환표 상 개인부문 부채 기준)
▲ [그림 1] 우리나라 가계부채 비율 변화 추이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세계 경제위기 중에도 전혀 조정되지 않았다. GDP 개인 금융부채는 2007년 81.6%에서 2012년 91.1%까지 늘었다. (자금순환표 상 개인부문 부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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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 측면은 어떠한가? 가계부채의 조정이 없는 상황에서 공급은 수요 감소에 조응하지 못하고 과거의 관성에 따라 상당한 물량을 지속하고 있다. 여전히 서울 수도권 중심으로 미분양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2008년 16만 채를 넘어가던 미분양 주택이 2012년에는 7만 채 정도로 줄었지만 줄어든 것은 지방일 뿐이었다. 수도권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지난해 말 미분양 주택이 3만 채를 넘어갔고 준공 후 미분양도 빠르게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4.1 대책이 의도한 대로 수요가 늘어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답은 현재의 주택 가격이 서민들이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정도로 적절히 조정되었는가에 달려 있다.

주택 가격 하락 추세이지만 여전히 높아

실제 주택가격은 하락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의 거듭되는 부동산 경기 부양에도 불구하고 수도권 중대형 주택을 중심으로 2008년부터 서서히 하락 중이다. 2010년부터는 중소형까지 하락 추세가 확대되었다. (그림 2 참조) 물론 수도권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 시점에 뒤늦게 급등이 시작되어 그 추세가 2011년 말까지 계속되기도 했지만, 지난해 와서 상승세가 꺾였다. 최근 부산 집값이 인천을 추월했다는 소식을 보면 조만간 지방 가격 추이도 수도권 흐름에 수렴될 것이다.

주택가격이 최고점을 찍기 이전인 2006년 1월의 서울지역 아파트 실거래 가격을 100으로 놓고 보았을 때,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 [그림 2] 서울지역 아파트 실거래 가격 지수 변화 추이 주택가격이 최고점을 찍기 이전인 2006년 1월의 서울지역 아파트 실거래 가격을 100으로 놓고 보았을 때, 서울지역의 아파트 가격은 여전히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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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주택가격이 최고점을 찍기 이전 시점인 2006년 기준으로 보면 대형 아파트 정도만이 대체로 2006년 시점의 가격으로 되돌아왔을 뿐이고 소형의 경우에는 당시에 비해 여전히 30% 이상 높은 수준이다. 공식 실거래 가격 자료가 없지만 만약 주택거품이 본격화되기 이전인 2004년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수준일 것이다.

더욱이 서울과 수도권에서 주택가격이 하락했다고 하지만, 2012년 말 기준으로 서울에서 PIR(중위주택가격/소득)은 9.5배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다. 연간 소득을 9년 이상 모두 모아야 평균 주택을 구매할 수 있다는 뜻이다. 특히 하위 20%의 저소득층의 경우 하위 20% 수준의 주택을 구입한다고 해도 연간 소득의 14.2배를 모아야 하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요약하면 이렇다. 최고점 대비로 평가하면 우리나라 서울의 주택은 상당히 하락했지만, 오르기 전과 비교해보면 크게 떨어진 것이 아니다. 소득과 비교하면 아직 소득으로 감당할 수 있는 집값 수준까지 내려온 것도 아니다. 또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아도 우리나라 수도권 주택가격의 하락폭이 컸다고 할 수는 없다.

즉, 2008년 이후 수도권 대형 →수도권 중소형 → 지방 대형 → 지방 중소형 주택의 순서로 완만하게 가격이 빠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으며, 아직도 우리의 주택 가격은 더 하락해야 적정한 수준에 이를 수 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 흐름을 '정상 시장'이라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며, 이를 반전시켜서 다시 주택가격 상승을 유도하고 싶은 것이다.

4.1 대책, 가계부채 악화와 수요 위축의 악순환 가져올 수도 

사진은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2단지 상가 부동산.
 사진은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 2단지 상가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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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부동산 거래 관련 감세와 금융지원은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가계부채를 늘릴 것이고 가계채무부담을 키울 것이다. 오히려 가계부채위험 가구를 늘리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질 위험도 있다. 이는 부채기반 수요의 한계를 더욱 심화시키면서 수요 동력을 약화시키고 부동산 가격지지 효과는 일시적인 것으로 그칠 것이다. 즉, 경기회복 지속을 위한 동력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다시 부채의 덫에 걸러 수요위축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가계부채조정에 의한 가계 수요기반 회복, 그리고 부동산 가격 조정 완료 후의 부동산 시장 정상화라는 목표는 또다시 지연될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는 가장 늦게 부동산 시장이 정상화되는 나라로 기록될 수도 있다.

사실 전체 경제가 하락하고 있는데 부동산 경기만 좋게 만들 묘수는 없다. 경제성장률이 2011년 3.7%, 2012년 2.0%로 급락한 우리 경제가 올해도 2.3%를 정부 스스로 예측하고 있는 마당에 부동산 경기만 살아날 수 있다는 기대를 하는 것이 오히려 매우 비현실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꾸로 건설과 부동산 경기를 부양시켜 국민경제 회복에 기여하도록 하자는 것이 '창조경제'를 주장하는 정부 생각이고, 건설업자와 금융계의 생각이며 일부 언론의 생각이다. 부동산 시장을 살리고 고용도 늘리고 내수도 좀 살려 보자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 부양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근거를 들이댄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전 IMF 수석경제학자이자 금융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인 라구람 라잔(Raghuram Rajan) 교수가 최근 글로벌 경기 부양책이 실패하는 이유를 분석하면서 지적하고 있는 대목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적인 주택거품이, 중·저소득층 가구들로 하여금 막대한 부채를 동원하여 담보가 용이한 주택이나 자동차 같은 특정 상품 수요를 과도하게 일으킨 결과라고 진단한다.

거품이 붕괴하고 경기가 침체한 상황에서 정부가 재정지출을 통해 수요를 자극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누구에게 어떤 수요를 일으킬 것인지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의 요지다. 이번 거품 붕괴는 일반적인 경기 사이클이 아니기 때문에 붕괴 이전의 실업자들이 원래 직장으로 돌아오고, 가동을 중단한 기업이 원래 상품을 다시 생산하며 위축되었던 해당 산업이 회복되는 식으로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부채를 동원하여 과잉 팽창했던 건설 산업은 구조 조정되어야 하며 과잉 공급되었던 주택 상품도 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거품 붕괴는 주택 건설시장에서 발생했지만 경기 회복은 다른 산업에서 다른 상품 수요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바람직한 주택 정책의 두 가지 방향, 가계부채 축소와 주거복지 강화

우리나라도 다를 것이 없다. 지속 불가능한 부채 기반의 주택 수요로 떠받쳐진 주택 공급구조 역시 지속 불가능하다. 부채 기반의 주택 수요가 붕괴했으면 당연히 그것으로 지탱되던 공급구조도 조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경기를 살려 전체 경기를 회복시킨다는 발상은 당분간 버릴 필요가 있다. 내수를 진작시키기 위해 차라리 다른 산업 분야를 찾자는 것이다. 부동산 경기를 살린다면서 추가적인 대출을 동원하도록 자극하여 가계부채를 키운다면 이후 더 심각한 파국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 주택정책은 경기부양이라는 차원에서 벗어나 적어도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는 주택정책이 가계부채를 늘리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 스스로 2013년 정책방향을 발표하면서 한국경제의 3대 위험 요인으로 '가계부채 부실', '부동산 시장 침체', '자본 유출입 변동성 확대'를 꼽았다. 그런데 부동산 시장을 살린다면서 가계부채위험을 키우는 정책을 사용하는 것은 정책적 모순이다. 부채기반 주택수요를 창출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을 확고히 가질 필요가 있다.

둘째는 주택정책이 이제는 '시장정책'보다는 '주거복지'차원에 무게를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임대주택 공급계획을 구체화하고, 전·월세 가격 안정화를 위해 가격 상한제와 임대차 기간 연장 등의 제도적 개선을 도모할 필요도 있다. 부동산 관련 취득세나 양도세 등의 감세는 오히려 주거복지재원을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국민에게 부채를 지면서까지 주택매매에 뛰어들게 해서 경기를 활성화하는 시대가 아니다. 부동산으로 성장률을 지탱하는 시대가 지났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가 집권 초부터 다시 부동산에 집착하는 것은, 그만큼 '창조경제'가 내용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잘못된 주택정책과 함께 내용이 부실한 창조경제를 동시에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새사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태그:#4.1 부동산 대책, #주택가격, #가계부채, #주거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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