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수천 km를 이동하는 철새들은 별자리, 태양, 지형지물을 이용하고 머리가 자석과 유사한 기능을 할 수 있어 남쪽과 북쪽을 인식하여 이동한다. 철새들은 매년 정확하게 태어난 곳으로 찾아오고, 매년 다시 같은 곳으로 월동을 떠난다. 이렇게 철마다 이동하는 철새들의 신비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 많다.

정확한 이동경로를 자랑하는 새들이 만약 길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상황이 발생할까? 본의 아니게 태풍에 휩쓸려 이상한 곳에 도래하기도 하고, 번식지지만 같은 다른 종에 섞여서 전혀 모르는 곳에 가 있는 개체도 종종 나타난다. 이렇게 길을 잘못 찾은 새들을 '미조'라고 부른다. 태풍 등에 쓸려온 종은 다시 자신의 서식처로 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다른 종에 섞여 도래한 종은 대부분 현지에서도 잘 적응하고 다시 번식지로 올라간다.

미조들의 발생은 오히려 탐조인들에게 무척 행복한 소식이다. 새로운 새를 볼 수 있는 기쁨 때문이다. 탐조인들에게 처음 보는 새, 즉 '신종'을 보는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탐조인에겐 우리나라에 도래하는 500여 종의 새를 모두 직접 눈으로 관찰하는 것 꿈이지만, 멸종위기종의 증가로 인해 모두 볼 수 없는 환경이 되고 있다. 거기에 길 잃은 종들인 미조를 우리나라에서 다시 확인하는 것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

이런 신종을 대도시인 대전에서 만나는 것은 더 큰 의미가 있다. 도시는 새들이 살기 척박하기 때문에 다른 철새도래지에 비해 신종의 발견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신종이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미조라면 이것은 탐조인에게 '로또'나 다름 없다. 때문에 국내에서 발견하기 힘든 희귀종이 출현하면, 많은 탐조인과 사진가들이 모여든다.

붉은 원기준 좌측 : 홍머리오리 /  우측아래 : 아메리카홍머리오리 / 우측상단 : 교잡종(홍머리오리에 비해 뺨이 희고 눈에 청색이 더 많이 지나간다)
▲ 대전천에 나타난 희귀조 아메리카 홍머리오리 붉은 원기준 좌측 : 홍머리오리 / 우측아래 : 아메리카홍머리오리 / 우측상단 : 교잡종(홍머리오리에 비해 뺨이 희고 눈에 청색이 더 많이 지나간다)
ⓒ 대전환경운동연합

관련사진보기


대전환경운동연합은 지난 3월 13일 아메리카홍머리오리를 대전천에 최초로 확인했다. 2011년 갑천에서 발견된 이후 대전에서는 두 번째 관찰된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아메리카홍머리오리는 1개체이며, 홍머리오리와 아메리카홍머리오리 교잡종 1개체가 관찰되었다.

국내에서도 보기 힘든 아메리카홍머리오리가 대전천에 나타난 것 자체가 기이한 일이며, 그것을 확인한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이다. 아메리카홍머리오리는 북미에서 번식하고 캘리포니아와 맥시코 등지에서 겨울을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무튼, 이렇게 관찰된 아메리카홍머리오리는 지난 28일 대전을 떠났다. 약 2주일간 대전천에 머물다가 다시 북상한 것이다. 이 짧은 기간에 입소문을 타고 대전천을 찾아온 탐조인들이 있었다. 아메리카홍머리오리의 보호를 위해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고, 일부 함께 답사한 사람들만이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인 터라, 아메리카홍머리오리를 보러 온 탐조객의 정보력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이렇게 탐조인들의 신종에 대한 집착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

대전천에 관찰 소식을 듣고 찾아온 탐조객
 대전천에 관찰 소식을 듣고 찾아온 탐조객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2년 전 갑천에서 관찰된 이후 다시 나타난 아메리카홍머리오리. 대전을 찾은 아메리카홍머리오리 중에 교잡종이 1마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봐서, 한 가족이 대전을 찾아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홍머리오리와 함께 대전에 지속적으로 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잡종 자체가 홍머리오리와 이루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홍머리오리 무리와 함께 이동할 가성이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미조'였던 아메리카홍머리오리가 매년 찾아오는 철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유영을 하고 있는 아메리카 홍머리오리
 유영을 하고 있는 아메리카 홍머리오리
ⓒ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이런 기쁨을 단순히 즐기기에 대전천의 서식상황은 그리 좋지 않다. 주변에 높은 고층건물과 하상도로, 거기에 매년 하천 정비작업도 진행되고 있어 겨울철 서식지로서 위협을 받고 있다.

아메리카홍머리오리가 찾아온 대전천과 대동천의 합류지역은 대전 3대하천에서도 중요한 철새도래지다. 이밖에도 하천내 중요철새도래지역인 탑립돌보, 한밭대교, 월평공원갑천 지역까지 낚시행위 등이 이뤄져 아메리카홍머리오리 서식을 위협하고 있다. 도시하천이긴 하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겨울철새들이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주요 겨울철새도래지에서는 낚시행위 등을 제한 할 필요성이 있다.

* 참조 대전에서 올해 최초 고니 확인

낚시를 위해 사람이 접근하자 아메리카홍머리오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조류서식처 보호를 위해서 낚시 행위가 가능한 지역과 불가능지역을 구분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
▲ 아메리카홍머리오리가 관찰된 지점에서 낚시중인 모습 낚시를 위해 사람이 접근하자 아메리카홍머리오리는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조류서식처 보호를 위해서 낚시 행위가 가능한 지역과 불가능지역을 구분하여 관리할 필요가 있다.
ⓒ 대전환경운동연합 이경호

관련사진보기


대전환경운동연합의 조류조사결과에 따르면 2012년 총 44종 2,210개의 개체가 관찰됐다. 이는 2011년 총 46종 2704개체, 2010년 45종 3615개체에 비해 종수와 개체 수 모두가 크게 감소한 결과로 조류서식환경의 악화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조'인 아메리카홍머리오리를 내년에 다시 볼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미조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아메리카홍머리오리가 내년에도 길을 잃고 대전천을 찾을 가능성은 그야말로 로또 맞을 확율보다 낮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짐작대로 가족이 구성되었다면 다시 관찰될 확률은 훨씬 높아진다. 이런 높아진 확률만큼 대전천의 서식상황이 더 좋아질 수 있도록 대전시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전천의 아메리카홍머리오리의 기록이 계속이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허황된 꿈이 아니기를 바래본다.

덧붙이는 글 | 대전지역 문화잡지 토마토에 실은 글을 수정해서 다시 올려봅니다.



태그:#아메리카홍머리오리, #미조, #대전환경운동연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날로 파괴되어지는 강산을 보며 눈물만 흘리고 계시지 않으신가요? 자연을 위한 활동이 필요하시면 연락주세요! 대전환경운동연합 회원이 되시면 함께 눈물을 흘리고 치유 받을 수 있습니다. 회원가입하기! https://online.mrm.or.kr/FZeRvcn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