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서울 강남구의 대치동 학원가는 끊임없이 학생들을 흡수하고 뱉어냈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풍경이지만, 미국 일류대학 하버드 학생 4명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열기의 결과는 곧바로 증명됐다. 학원 고등학생들과의 수학문제 풀기 대결에서 하버드대생들은 '참패'했다. 

KBS 1TV 다큐멘터리 <공부하는 인간>(연출 정현모·남진현 촬영 김경호·최기하) 시사회가 열린 27일 오후 2시 영등포 롯데시네마에서 1부를 미리 볼 수 있었다. 1부 '오래된 욕망'은 스캇임·브라이언 카우더·제니 마틴·릴리 마골린 등 다양한 문화권의 하버드대생 4명이 한국·중국·프랑스·인도·이스라엘·미국 등을 다니며 각국의 '공부'에 대해 알아보는 과정을 담았다. 

학구열로는 세계 최강이라고 할 만한 곳에 살고 있지만, 아시아권 다른 나라의 공부에 대한 욕구 역시 놀랄만했다. 일본 도쿄대 합격자 발표 날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눈물을 흘리던 학생과 한 반의 모든 학생이 한꺼번에 큰 소리로 책을 읽는 중국 어느 학교, 학생들의 토론 열기로 시장 바닥처럼 시끄러운 이스라엘의 도서관 등은 일정 부분 우리와 닮아 있으면서도 생소했다. 연출을 위해 중국을 10번 정도 방문한 남진현 PD는 "(공부 중) 졸거나 딴 짓을 하는 친구들이 없었다"며 "중국인들의 공부법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인간은 결국 배우려고 하는 '호모 아카데미쿠스'라는 점이다. 카스트제도 하에서 공부를 통해 신분을 뛰어넘으려는 인도 불가촉천민의 '생존을 위한 공부'부터 교양인이 되고 싶은 '인문 탐구'까지, 문화적 차이에 따라 다른 공부에 대한 생각과 공부법은 다르지만 '더 나은 삶은 살고 싶다'는 배움의 목적은 비슷하다.  


"당연하게 생각했던 공부, 공부가 아닐 수 있어"

전 세계에서 가장 공부 잘 하는 이들이 모인다는 하버드대생들이 공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이 다큐멘터리의 방식은 다소 역설적이다. 기획의도와 달리, 이 수재들에게서 '공부법'을 얻고 싶은 일부 시청자도 있을 것이다. 연출을 맡은 정현모 PD는 "하버드를 주목한 이유는 다양한 문화가 한 공간에 섞여 있는 학교이기 때문"이라며 "오디션을 통해 유태인, 중동계·아일랜드·한국계 미국인 등 다양한 문화권을 경험한 친구들을 뽑았다"고 전했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시작하는 이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교육 제도를 논하는 것과 궤를 달리 하기 위해 공교육을 다루지 않았다. 정 PD는 "'문화의 차이'를 프로그램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며 "각각의 문화가 만들어낸 공부법 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쁘다고 재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 PD는 "텍스트를 읽고 문제를 풀고 시험 성적을 높이는 것만이 공부일까 의문을 갖고 시작했는데, 다른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라며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공부가 아닐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공부하는 인간>는 동·서양 공부법의 차이에 주목했다. 서양 학생들과 달리 동양 학생들이 '잘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못 하지 않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실험 결과가 주목할 만하다.

KBS 1TV <공부하는 인간>은 1편 '오래된 욕망', 2편 '공자의 후예', 3편 '질문과 암기', 4편 '최고의 공부' 등 4부작으로 이뤄져 있다. 오는 28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밤 10시 방송된다.